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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부터 국가부도의 날까지, 영화로 정리하는 20세기 대한민국 근현대사 픽션 영화 정리
정재현 남지우 2024-08-15

식민 지배, 내전,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성취, 국제행사 유치와 국가부도. 한 세기에 하나만 발발해도 굵직한 역사 기록으로 남는 위 사건들은 격동의 20세기, 대한민국에서 전부 벌어졌다. 지난 105년간 대한민국 영화는 시대와 공명하며 꾸준히 근현대사를 극영화로 재현해왔고, 각 역사적 사건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을사늑약부터 국가부도의 날까지, 한국영화가 기록해온 20세기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사건별 재현 경향을 정리해보았다.

인물에 집중한 일제강점기 영화들 - <동주> <박열> <항거: 유관순 이야기>

<동주>

<아나키스트> <모던보이> 등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며 한동안 “충무로엔 일제강점기 참패 징크스가 있다”는 설이 돌았지만 2015년 <암살>이 천만 관객을 모은 이후 <동주> <덕혜옹주> 등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이 징크스는 옛말이 됐다. 일제강점기 영화는 대체로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저항한 열사를 조명하거나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징용, 근로정신대 등으로 강제연행된 민초의 고난을 다루는 작품으로 양분된다. 이중 <동주>와 <박열>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일제에 고초를 겪은 인물의 일대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전자의 성격을 갖는다. 세 영화 속 청춘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제에 항거했지만 이들의 거사는 당장 독립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독립운동을 연쇄적으로 지속할 수 있게 하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드높인 목소리가 식민 치하의 폐습을 청산하지 못한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반추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재현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들 - <정의의 진격>부터 <스윙키즈>까지

<돌아오지 않는 해병>

<스윙키즈>

한국영화는 아직 전쟁 중이던 1951년부터 한국전쟁을 기록했다. 해군홍보영화를 제작 중이던 한형모 감독은 전쟁 당시 국방부 정훈국이 제작한 영화 <정의의 진격> 1, 2부를 연출하며 수많은 전투를 영상 기록으로 남겼고, 김기영 감독은 1955년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주검의 상자>로 데뷔했다. 반공성이 강했던 1950년대 한국전쟁 영화와 달리, 1960년대 등장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 마후라> 등은 전쟁의 스펙터클과 멜로 플롯 등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공식을 따르며 흥행몰이에 나섰다. 한편 유신정권 수립 이후 1973년 영화진흥공사가 설립된다. 국가기관이 영화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며 재정 지원이 늘어나 볼거리는 늘었지만 이 시기 전쟁영화의 내용은 권력기관의 입맛에 맞춘 국책 반공영화, 남한 체제의 우수성을 설파하는 선전영화의 성격이 강했다. 1980년대에 이르면 <최후의 증인> <길소뜸> 등 한국 영화사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전쟁영화가 공개됐지만 이 시기 한국전쟁 영화는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에 입각한 작품의 성행으로 이전 같은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킬링필드> <플래툰> 등 전쟁의 광기가 개인과 사회에 남긴 후유증을 적시하는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인기를 구도함에 따라, 한국영화 역시 전쟁영화 제작 열의를 다시 불태웠다. 1990년대 등장한 <남부군> <아름다운 시절> 등은 기존 전쟁영화가 보이던 남북의 선악대립 구도를 벗어나 전쟁 당시 남한이 자행한 일들을 반성하고, 동맹국으로 칭송하기 바빴던 미국의 만행을 서사 내부로 끌어들여 고발하기에 이른다. 전쟁의 규모를 압도적으로 시각화하되 내부적 참회와 외부적 폭로를 동시에 견지하는 태도는 2000년대에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에서 이어졌다. 21세기는 <포화속으로> <인천상륙작전> 등 스펙터클을 과시하는 영화와 <작은연못> <고지전> <스윙키즈> 등 이념의 이분법이 낳은 부조리 속에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영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정재현

1970년대 독재정권의 정치사를 다룬 영화들 - <킹메이커> <남산의 부장들> <서울의 봄>

<킹메이커>

<서울의 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집행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부터 회복의 시간에 돌입한 2020년대엔 1970년대 정치사를 다루는 영화가 매년 개봉하고 있다. 특히 선거, 암살, 쿠데타와 관련된 ‘정치영화’들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증발할 뻔한 극장의 존립에 기여한 바는 상당하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 개봉해 475만 관객을 불러 모은 <남산의 부장들>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을 남성 권력자들의 치정을 중심으로 한 심리극으로 그려냈다. 이를 제작한 하이브미디어코프는 70년대 군부 정치를 인간관계의 역동과 상호영향력의 결과로 재해석하는 기법을 12·12 군사반란에 다시 한번 적용하며 지난해 <서울의 봄>을 최고 흥행작으로 우뚝 세웠다. 근현대사의 다른 구간과 비교해도 이 구간의 인물들은 역사 스토리텔링의 서사적 주체로서 매력이 상당하다. 정서적 모순과 취약함, 그리고 광기가 직조한 독재자와 부역자 캐릭터를 통해 인물, 서사, 장르를 1타 3피로 빌드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를 민주화 진영의 재야 정치인들을 직접 내세우는 최초의 극영화로 만들며 정치영화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다. /남지우 객원기자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들 - <변호인> <택시운전사> <1987>

<택시운전사>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한국영화 흥행작들이 일으킨 착시현상일까.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신임 위원장은 “문화 권력이 좌파”쪽으로 기울었다는 증거로 <변호인>과 <택시운전사>를 언급하며 “좌파 성향의 영화를 만들면 히트친다”고 주장했다. 배우 송강호가 주연한 두편의 천만 영화는 민주화운동 소재의 폭발적인 관객동원력을 상기시킨 중요한 작품들이다. 논쟁과 고발의 단계에서 재현과 기억의 단계로, 나아가 장르화의 단계로 진입하기까지 제5공화국을 무너뜨린 민주화운동 역사는 영화 안팎에서 왜곡과 검열의 위협을 꾸준히 받아왔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2017년은 극장에서 이 시기의 역사를 하나의 콘텐츠이자 테마로 누리는 정서적 안정감을 마련한 해다. 720만 관객을 동원한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기념비적인 스타 멀티캐스팅을 실현하며 민주화영화를 온전한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면서도 준엄한 소재의 스릴러-누아르적 장르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카테고리의 끝판왕 격 영화가 됐다. /남지우 객원기자

1980~90년대 외교, 정치 비사를 액션 장르로 풀어낸 영화들 - <모가디슈> <헌트> <비공식작전>

<모가디슈>

2020년대 한국영화는 1980~90년대 국내외 격동기 해외에서 발생한 정치, 외교 비사를 발굴한 후 상상력을 가미해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었다. <헌트>는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노리고 버마에서 벌어진 대남 테러 사건(아웅산 묘역 폭탄 테러 사건)에 첩보물의 상상력을 더해 만든 액션영화다. 1986년 레바논에서 벌어진 도재승 외교관의 납치 사건을 소재로 한 <비공식작전>, 1991년 당시 한국 외무부가 작성한 외교문서 ‘주소말리아 남·북한 대사관원 동시 철수’의 내용을 영화화한 <모가디슈>는 대규모 총격전, 카 체이싱 등 액션 시퀀스를 동원하며 20세기 후반 외교 비사를 액션 장르로 풀어낸 경우다. 여기에 쉽게 융화하기 어려워 보이는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던 남한과 북한이 결국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연대하여 내전국가로부터 탈출하는 버디무비의 플롯을 더하며 대중성을 기했다. /정재현

영화로 정리하는 20세기 대한민국 근현대사

1905 을사늑약 강제 체결

1907 헤이그 특사 파견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1909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영웅>(2022)

1910 경술국치

1919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유관순>(1948, 1959, 1966) <항거: 유관순 이야기>(2019)

1920 대한독립군과 독립군 연합부대의 봉오동 전투 대승 <봉오동 전투>(2019)

1923 황옥 경부, 의열단 폭탄 밀반입 사건 <밀정>(2016), 불령사 조직 <박열>(2017)

1930 남화한인청년연맹 조직 <유령>(2023)

1942 조선어학회 사건 <말모이>(2019)

1945 윤동주 옥사 <동주>(2016), 대한민국 광복

1948 제주 4·3 사건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2)

1950 한국전쟁 발발 <정의의 진격> 1부, 2부(1951, 1952)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빨간 마후라>(1964) <증언>(1973) <최후의 증인>(1980) <길소뜸>(1985) <남부군>(1990)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아름다운 시절>(1998) <태극기 휘날리며>(2004) <작은연못>(2010) <포화속으로>(2010) <고지전>(2011) <인천상륙작전>(2016) <스윙키즈>(2018)

1953 한국전쟁 휴전

1960 4·19 혁명 <효자동 이발사>(2004)

1961 5·16 군사 쿠데타

1970 전태일 열사 평화시장 분신 사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태일이>(2021)

1971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킹메이커>(2021), 실미도 사건 <실미도>(2003), 베트남전쟁 파병 장병 귀국 <하얀전쟁>(1992)

1979 10.26 사태 <그때 그사람들>(2005) <남산의 부장들>(2020), 12·12 쿠데타 <서울의 봄>(2023) <행복의 나라>(2024)

1980 5·18 민주화운동 <오! 꿈의 나라>(1988) <꽃잎>(1996) <스카우트>(2007) <화려한 휴가>(2007) <택시운전사>(2017)

1981 부림사건 <변호인>(2013)

1983 아웅산 묘역 테러 사건 <헌트>(2022), KBS1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영 <국제시장>(2014)

1985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남영동1985>(2012)

1986 레바논 한국 도재승 외교관 납치 사건 <비공식작전>(2023)

1987 6월 민주항쟁 <1987>(2017), 노동자대투쟁 <파업전야>(1990)

1988 서울올림픽 개최 <서울대작전>(2022)

1991 소말리아 내전 중 남북 공관원 탈출 <모가디슈>(2021)

1997 국제통화기금에 긴급 구제금융 지원 요청 <국가 부도의 날>(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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