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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외하는 만큼 두려워하고 또 사랑하기를, <트위스터스> 정이삭 감독
최현수 사진 최성열 2024-08-16

<미나리>를 통해 이민 1세대 가족의 희망과 고초가 깃든 땅의 이야기를 다뤘던 정이삭 감독의 시선이 하늘로 옮겨졌다. 굉음과 강풍으로 지면을 집어삼키는 토네이도가 그 주인공이다. 얀 드봉 감독이 1996년 발표한 영화 <트위스터>의 속편인 <트위스터스>로 돌아온 정이삭 감독은 “존경과 애정이 없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작을 향한 애정을 강하게 드러냈다. 차기작으로 재난영화를 택한 그의 행보가 새로운 도전처럼 보이겠지만, 허망하게 헛간 속 희망을 모두 태워버린 <미나리>의 화마처럼 그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에 관심을 품고 있다. 짧은 화상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작업기를 두고 “상상했던 일”이나 “좋은 기회”라는 말을 아끼지 않던 정이삭 감독에게서 <트위스터스>가 생성한 흥미로운 궤적에 관해 들어보았다.

- 대학 시절 생물학을 전공했고, <미나리>에는 큰 화재가 등장한다. 차기작으로 재난영화 <트위스터스>를 택한 것이 어색하지 않다.

= <미나리>의 결말인 화재 장면을 계기로 인물과 관계에 지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대격변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자연스러운 출발점이었다. 거대한 불의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새삼 깨달았다. 이번 영화를 통해 토네이도와 극한의 기상 상황 앞에 놓인 인간의 대비되는 감각을 형성하려 했다.

- 블록버스터인 <트위스터스>는 그간 제작한 영화와 다르다. 낯선 제작 환경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어떻게 적용하려 했는가.

= 나는 영화적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이 아니다. (웃음) 오히려 서사와 인물에 집중하는 편이다. 영화의 양식은 서사와 인물에 따라 정해진다. 예술가로서 내게 중요한 과제는 주어진 상황에 걸맞은 양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또한 이전에 시도한 적 없던 다양한 도전을 한 점이 좋았다. 관객이 자신보다 거대한 대상과 스크린으로 직면하는 영화를 꿈꿔왔는데, <트위스터스>를 통해 이전부터 원하던 극장만의 경험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었다.

- 원작이 나온 지 28년이 지났다. <트위스터스>는 얀 드봉의 작품과 무엇이 다른가.

= 당연히 원작을 오마주한 장면도 많지만, 이번 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인물들과 함께한다. 새로운 인물과 이야기가 있다면, 전작과 다른 궤적을 가진 영화가 탄생하는 게 당연하다. <트위스터스>의 서사적 중심은 데이지 에드거존스가 연기하는 케이트 카터다. 케이트 카터라는 영웅적 존재의 이야기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모든 서사적 장치가 그녀와 연계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표였다.

- 인물만큼이나 토네이도가 중요한 영화다. 고도의 과학적 지식이 필요했을 텐데 자문이나 조사는 어떻게 진행했나.

= 기상학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트위스터스>에 도움을 줬다. 특히 국립폭풍연구소(NSSL) 출신 기상학자 케빈 켈러허는 <트위스터>에도 자문으로 참여했었다. 덕분에 기상학적 지식과 더불어 원작의 접근 방식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시각효과에서도 영화 속 물리학 법칙에 대한 다양한 검증을 거쳤다. 토네이도의 작동 방식과 그 여파만큼은 과학적 실증을 기반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트위스터>는 토네이도에 암소가 휩쓸리는 장면으로 유명할 만큼 시각적으로 유의미한 영화다. 이번 작품에서 기술적으로 특별히 집중한 부분이 있다면.

= <트위스터>의 시각효과를 담당했던 벤 스노와 함께했다. 1996년에 비해 VFX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만큼 토네이도의 외형, 파편이 휘날리는 방식, 자연물이 토네이도의 영향을 받는 움직임까지 전부 자세히 묘사할 수 있었다. 얀 드봉의 원작은 시각효과의 한계를 특수효과의 뛰어난 활용으로 극복했다. 그의 영화들이 스턴트 액션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처럼 <트위스터스>도 특수효과만의 질감을 살리고 싶었다. 특수효과는 크리스토퍼 놀런과 오래 작업한 스콧 피셔가 맡았다. 하나의 액션 시퀀스를 두고도 특수효과와 시각효과간 실용적 조화를 모색해 현실적인 장면을 만들려 노력했다.

- <트위스터>에서 화려한 차량 액션을 보여준 램 픽업트럭이 이번 작품에서도 맹활약한다.

= 아버지가 처음 이주했을 때 구매한 픽업트럭이 닷지 픽업트럭이었다. 그래서 유년기부터 닷지 픽업트럭은 내게 큰 의미가 있었다. <트위스터>를 처음 봤을 때 닷지를 이용한 멋진 액션 장면에 눈이 갔다. 따라서 이번에도 램 픽업트럭만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들이 실제로 운전하고 스턴트를 소화하는 등 거친 질감의 장면을 얻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트위스터스>를 촬영하며 가장 어려운 장면 중 하나가 도로 위에서 촬영하는 장면이었다.

- 원작에 이어 <트위스터스>도 오클라호마에서 촬영했다. <미나리>에서도 같은 도시의 풍경을 담은 만큼 오클라호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 나는 오클라호마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랐다. 걸어서도 갈 수 있었다. (웃음) 처음 <트위스터스>의 로케이션은 애틀랜타였다. 하지만 <미나리>를 촬영한 오클라호마의 모습이 계속 맴돌았고, 결국 오클라호마로 로케이션을 변경했다. 풍경을 찍을 때, 오클라호마는 완벽한 도시 중 하나다. <미나리>부터 <트위스터스>를 거치면서 오클라호마를 적재적소에 담아내는 법을 어느 정도 깨달은 것 같다.

- 기존의 재난영화는 인간과 자연을 대립시킨다. 하지만 <트위스터스>의 토네이도는 주인공들에게 경이의 대상이기도 하다.

= “물은 적이 없다.”(water no get enemy) 편집을 맡은 테릴린 A. 슈롭샤이어가 자주 언급한 요루바족의 격언이다. 자연은 이따금 인간에게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일으키지만, 결코 적대적이진 않다.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가 자연을 경외하는 만큼 두려워하고 또 사랑하기를 원했다. 자연은 인간을 압도하는 힘인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기상이변의 시대를 사는 만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작금의 시대에 <트위스터스>는 어떤 의미를 지닌 영화인가.

= 현재 과학계는 지구온난화가 토네이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를 진행 중이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토네이도의 패턴이 점차 예측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토네이도의 발생 기간이 길어지고, 발생 지역의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트위스터스>가 그저 환경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이 땅을 사랑하기에 치열하게 연구를 이어가는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다음 세대가 과학에 영감을 품을수록 미래의 희망은 커진다. 이 영화가 과학 연구에 대한 낙관론을 제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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