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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3>
2002-12-20

2002 Big Issues

● ● ● ● 소니 픽처스

“이 기록은 그냥 1억달러 플러스 잔돈의 수준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선이 무너진 것이다.” <스파이더 맨>의 현란한 첫주 박스오피스 곡예를 본 할리우드 흥행 관측사들의 평이다. 2002년 여름 시즌은 1번타자의 첫 타석 홈런으로 개막됐다. <미이라> 시리즈와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새로운 대박 주말로 자리매김한 5월 첫 금요일에 개봉한 소니의 <스파이더 맨>은 3일간 1억1480만달러를 벌어 불과 6개월 전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 세운 9천만달러 기록을 가볍게 무너뜨렸다. <스파이더 맨>은 전 연령층에 어필하는 영화와 성공한 마케팅, 배급 파워가 결합했을 때 영화 한편이 하루에 4천만달러 이상 수입을 올릴 수 있음을 입증해 미국 영화산업 역사에 신기원을 열었다. 거미줄을 타고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른 소니는 점유율 하위권을 맴돌던 지난해의 기억을 말끔히 청산했다. 총수익 8억1500만달러의 <스파이더 맨>을 필두로 <맨 인 블랙2>(4억3900만달러), <트리플X>(2억4200만달러), <패닉 룸>(1억9500만달러)이 고루 선전한 소니는 12월2일 현재 총흥행수익 27억5천만 달러로, 1998년 <타이타닉>의 폭스가 세운 26억8천만달러 기록을 뛰어넘었다.

● ● ● ● 정훈탁

이제 그는 더이상 매니저가 아니다. 충무로에서 정훈탁의 존재는 정우성, 전지현, 설경구, 전도연, 김혜수, 차태현, 장혁, 신민아, 조인성 등 쟁쟁한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대표 이상이다. 올해 싸이더스HQ라는 독자적인 회사를 설립한 그는 공동제작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성공적으로 펼쳤다. 영화에 배우를 제공하는 대신, 제작에 참여하는 이 방식이 들어먹힌 작품은 <몽정기>였다. “극심한 캐스팅난을 이용해 작품을 말아먹으려 한다”는 충무로의 비난을 보기좋게 맞받아친 이 작품을 계기로 그는 현재도 여러 작품과 공동제작 협의를 벌이고 있다. 어쨌건 확실한 점은 날로 심각해지는 캐스팅 전쟁 속에서 그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사실. 그럴수록 충무로 제작자들 사이에선 더욱 확실한 ‘공공의 적’이 되리라는 점 또한 안 봐도 짐작이 가지만 말이다.

● ● ●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아무래도 제목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센과 치히로의 행복비명’이라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힘은 갈수록 더 경이롭다. 그의 최근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2001년 7월 도호를 통해 일본에서 개봉했고, 23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 2억4000만달러가량을 벌어들이며 일본 개봉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다. 2억1900만달러로 챔피언 타이틀을 지켜온 <타이타닉>을 침몰시킨 기록이며, 역시 미야자키의 작품이자 전 챔피언이었던 <원령공주>의 1억5400만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수치다.

이 여세를 몰아 2002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블러디 선데이>와 나란히 금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처음 주요 국제영화제의 그랑프리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에서 지난 6월28일 개봉한 <…행방불명>은, 약 두달 만인 8월22일 전국 관객 수 200만명(서울 93만명)을 돌파하면서 국내 일본영화 개봉작 가운데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국내 개봉된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슈렉>(서울 112만명) 다음으로 높은 성적.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의 토토로> 등 국내 극장가에서 기대 이하의 대접을 받았던 미야자키 전작들의 설움을 말끔히 씻어냈음은 물론이다. 미야자키,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 배급 계약을 체결한 월트 디즈니가 미국 내 모든 판권을 갖고, 지난 9월 26개관에 한정적으로 개봉한 뒤 지금껏 장기상영 중이다.

● ● ● ● 나루세 미키오 회고전

2001년부터 활성화된 시네마테크 주최 회고전들은, 정확히 말해 우리에게 회고가 아니라 정식으로 상견례를 나누지 못한 거장들과의 유예된 첫 해후라 해야 옳다. 장 르누아르, 스즈키 세이준, 프랑수아 오종 등 많은 작가를 뒤늦게 초대한 올해 회고전 중 8월 말 서울 시네마테크가 주최한 ‘나루세 미키오 전’은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에드워드 양과 왕가위는 언젠가 최고의 영화로 나루세의 영화를 꼽은 적이 있다. 그리고 두 감독이 2000년에 만든 <하나 그리고 둘>과 <화양연화>는 나루세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구로사와, 미조구치, 오즈의 영화는 어떤 식으로든 알고 있지만 나루세의 영화를 본 사람은 거의 없기에 이 회고전은 관객 동원과 무관하게 중요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회고전을 찾은 손님들의 반응에서 읽을 수 있었다. 두편의 영화에서 오즈와 허우샤오시엔의 메아리를 담은 허진호 감독은 실은 자신이 가고 있는 방향이 나루세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지 모른다. 이재용 감독 역시 나루세에 깊은 감흥을 받은 걸로 보였고 박찬욱 감독은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를 보고 흥분했다. 김지운, 류승완 감독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감독들. 2002년 나루세 회고전에서 미래의 길로 가는 전환점을 발견한 감독도 있지 않을까

● ● ● ● 참외

올해 한국영화에서 유난히 ‘사랑’받았던 과일은 참외였다. <몽정기>와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에서 이 노란빛 과일은 <아메리칸 파이>의 파이처럼, 헐벗고 외로운 남성들의 묵묵하면서도 촉촉한 벗이 돼줬다. 충무로에서 급부상한 것은 참외만이 아니었다. 한국 영화계에서 그리 각광받지 못했던 섹스코미디 또한 주요 장르로 떠올랐다는 얘기. 이들 영화 외에 <색즉시공>이 개봉했으며, <동정없는 세상> 등도 기획되고 있다. 노골적이지만 허물없이 섹스를 다루는 이들 영화는 <아메리칸 파이>가 그랬듯이 일종의 성장영화 모티프를 빌려와 ‘저질’이라는 거부감을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영화가 과연 기존 작품들을 창조적으로 넘어섰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점 또한 사실이다.

● ● ● ● 스파이

2002년 할리우드 여름 영화계의 대부는 본드, 제임스 본드였다. ‘본드 골려먹기’로 독자적 프랜차이즈 가문을 일으킨 <오스틴 파워> 시리즈가 3편을 내면서 <미션 임파서블2>의 이단 헌트 요원(톰 크루즈)까지 들러리로 세운 일이야 그렇다치고 익스트림 스포츠광을 동원한 신세대 첩보물 <트리플X>, 형의 유업을 이어 게토에서 CIA 요원으로 발탁되는 크리스 록의 <배드 컴퍼니>, 오스틴 파워를 할렘으로 보낸 형국의 패러디 <언더커버 브러더> 등에 이르면 예사 유행이 아니다.

거기다 아끼는 후배를 위해 말년 공작을 벌이는 로버트 레드퍼드의 <스파이 게임>, 기억을 잃은 CIA 요원 맷 데이먼의 모험 <본 아이덴티티>, 네 번째 잭 라이언 영화 <썸 오브 올 피어스>, 버디코미디 <아이 스파이>까지 합세해 첩보 장르의 복고적 유행을 굳혔다. 때아닌 스파이영화들이 받은 암호명은 하나. 여름영화 시장의 여전한 최대 고객인 10대 소년들에게는 멋진 여자친구, 최첨단 장비, 고독하고 비장한 남성미가 조합된 100% 판타지를, 불꽃놀이를 좋아하는 감독들에겐 특수효과와 소품, 자동차와 로켓, 폭약을!

● ● ● ● 할리 베리 & 리즈 위더스푼

257초의 환희와 오열. 2002년 오스카 쇼에서 74년 만에 흑인 여배우로서 첫 주연상을 안은 할리 베리의 오페라적 소감은, 아무리 만인이 탐낸다는 오스카지만 베리만큼 지독하게 갈망한 이는 없을 거라는 확신만으로도 청중을 설득했다. 마치 동화의 해피엔딩처럼 곧이어 덴젤 워싱턴이 사상 두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을 받고 워싱턴 이전의 유일한 주연상 수상자 시드니 포이티어가 공로상을 받던 그날 밤 할리 베리는 “이것이 영화산업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나 유색 인종 배우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어도 큰힘이다”라고 말했다. 이름 앞에 오스카 인증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게 “섹시해 보여라”는 우스꽝스러운 연기 지시를 받으며 에 출연한 그녀의 차기작은 <엑스맨2>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영화의 고전 <폭시 브라운>의 리메이크다. 멕 라이언과 샌드라 불럭의 휴식, 줄리아 로버츠의 외도를 틈타 로맨틱코미디계에 안뜰을 확보한 스타는 리즈 위더스푼. 그녀의 <스위트 알라바마>는 첫 주말 3560만달러 성적을 올려 역대 로맨틱코미디 오프닝 여왕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밀어냈다. 위더스푼의 독사진 한장으로 밀어붙인 <스위트 알라바마>의 포스터는 스타 파워가 열쇠인 로맨틱코미디의 히로인 선택에 까다로운 할리우드가 얼마나 이 남부 출신 ‘너무한 금발’ 스타를 신뢰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스위트 알라바마>에서 500만달러를 받은 위더스푼은 스스로 제작하는 <금발이 너무해2>에서 1500만달러의 보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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