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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2002 영화인들,무엇을 이야기했나 <1>
2002-12-20

2002 Big Issues

축구부터 DVD까지,2002년 도마 위에 오른 뉴스메이커와 트러블메이커

2002년의 영화인들 무엇을, 누구를 이야기했나 취재수첩을 팔락이며 밑줄을 그어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거미인간의 날카로운 키스에 난공불락의 개봉 주말 박스오피스 1억달러 장벽이 무너졌고 스튜디오들은 필립 K. 딕과 아동문학의 환상을 탐독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소박한 살림의 영화들이 골리앗급 블록버스터들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고 <취화선>과 <오아시스> <마리이야기>는 국제영화축제에 나서 ‘가문의 영광’을 뽐냈습니다. 행방불명된 센과 치히로는 세계 관객의 마음속에서 길을 찾았고 스크린에는 축구공과 스파이들이 종횡무진했습니다. 즐거운 서프라이즈 파티가 있었는가 하면, 가슴내려앉는 전갈도 있었습니다. 공과를 안은 채로 2003년에도 영화의 전장을 헤쳐갈 뉴스메이커와 트러블메이커들, 그들을 일별합니다.

● ● ● ● 세계로 가는 한국영화

지난해 시동을 건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됐다. 우선 한국영화의 아이디어가 할리우드에 줄줄이 팔려나갔다. 지난해 <조폭 마누라>에 이어, 올해엔 <엽기적인 그녀> <달마야 놀자> <시월애> <가문의 영광> 등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입했다. <취화선> <집으로…> 등이 프랑스와 미국에서 개봉되는 등, 한국영화의 해외 개봉도 이젠 일상화됐다. 특히 <엽기적인 그녀>는 아시아의 모든 지역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며 전지현을 아시아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오르게 했다. 또한 한국, 홍콩, 타이 등 아시아 3개국 합작영화 <쓰리>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며 해외 합작영화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 충무로는 ‘한국영화’라는 브랜드를 세계 시장에 각인시키는 다음 단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 ● ● ● 복숭아

<복수는 나의 것> <후아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YMCA야구단>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해안선> 등 장르, 스타일이 저마다 다른 작품의 음악을 담당해 영화음악계의 실력자로 부상한 ‘복숭아 Presents’. 달파란, 장영규, 방준석, 이병훈, 장민승 등 5명의 음악가로 이뤄진 이들은 서로 다른 취향과 장점을 존중하면서 각 영화에 맞는 음악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 사운드트랙 위에 덧씌우는 집단. 다양한 영화를 소화할 수 있으며, 각 영화 안에서도 여러 색깔의 음악을 담아낼 수 있다는 ‘비교우위’를 통해 올해만 무려 6편의 음악을 만들었다. <귀여워> <아치와 씨팍> 등이 이미 이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니, 복숭아즙처럼 시원하고 새콤달콤한 사운드는 내년에도 계속 극장에서 울려퍼질 전망이다.

● ● ● ● 호러

2000년 <해변으로 가요> <하피> <가위> 등이 한바탕 휘몰고 간 뒤, 호러영화는 한동안 찬밥 신세였다. 지난해 개봉한 <소름> <여우령> <북 오브 섀도우> 등은 초라한 성적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한국에서 호러영화는 흥행이 안 된다”는 공식이 정립되려는 찰나, 관객을 깨우는 불길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폰>이 전국 2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둔 것. “오직 호러 한길”을 선언한 안병기 감독의 고집과 젊은이들의 필수품인 휴대폰을 소재로 삼았던 기획력이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여름 시즌 끝 무렵에 개봉한 홍콩영화 <디 아이>도 전국 50만 관객을 소름끼치는 어둠 속으로 불러들였다. 비록 <하얀방>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들 영화는 호러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재확인케 해줬다. 하지만 어쩌면 이건 그야말로 불길한 징조일지도 모른다. 미국 70년대처럼 사회적 가치가 혼란스럽고 구성원들의 정체성에 위기가 올 때 호러영화가 많이 만들어졌고 성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러영화가 각광받는 시대는 그리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흠, 내년엔 호러영화가 더 많이 만들어진다는데….

● ● ● ● 마이 빅 팻 그릭 웨딩

이 영화를 거절한 미국의 스튜디오와 배급사들은 지금 조엘 즈윅 감독의 슬리퍼 히트 <마이 빅 팻 그릭 웨딩>을 ‘나의 크고 뚱뚱한 실수’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다. 유명한 원작도 스타도 지참금으로 준비하지 못하고, 단돈 500만달러에 조촐하게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난 4월 개봉 이후 무려 38주간 전미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머물며 2억천만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 비용대비 수익면에서 <블레어윗치>가 보유한 기록을 따돌렸다. 급기야 로체스터의 한 예술전용관은 5개 스크린에서 모두 <마이 빅 팻 웨딩>을 틀어 폐관 위기를 모면하는가 하면 <시카고 선 타임즈>는 실제 그리스식 결혼식을 방문해 영화 속 묘사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취재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호의적인 테스트 시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투자 배급을 사양했던 미라맥스, 폭스 서치라이트는 가슴앓이를 한 반면 ‘예술을 위해’ 투자한 톰 행크스, 리타 윌슨 부부는 할리우드 파워로서 위상을 높였다. 손익을 떠나 관객의 취향은 뻔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마이 빅 팻 그릭 웨딩> 같은 영화는 “일할 맛을 나게 한다”는 것이 할리우드 종사자들의 이구동성이다. 그야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 ● ● ● 트로피(또는 두루마리)

“이젠 멍에를 벗은 기분이다.” <취화선>으로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뒤 임권택 감독은 그동안 자신에게 쌓여왔던 기대와 바람을 풀어냈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사실 임 감독이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 무대에서 영광의 상장을 받은 순간, 한국 영화계의 멍에도 함께 풀렸다. 90년대 중반 이후 작품성이라는 차원에서도 세계 영화계의 중심으로 떠오른 한국영화가 비로소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부터 ‘공식인증’을 받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멍에를 벗고 홀가분해진 한국영화는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또 하나의 수확을 거뒀다. 이성강 감독의 <마리이야기>가 애니메이션의 ‘칸영화제’라 불리는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차지했던 것. 그리고 몇달 뒤 더욱 커다란 희소식이 베니스에서 들려왔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가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신인연기상(문소리)을 받았고, 비공식 상인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과 세계 가톨릭 언론 연맹상까지 휩쓸었기 때문. 시상식 단상에서 은사자상 트로피를 거머쥔 이창동 감독은 “오늘밤 여기가 나의 오아시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결국 2002년은 세계영화제라는 사막을 떠돌던 한국영화란 낙타가 멍에를 벗고 청량한 오아시스를 찾은 한해였다.

● ● ● ● 정태원

2001년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야심작 <흑수선>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를 거뒀고, <무서운 영화2> 등 수입영화들도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동이 트는 순간, 태원은 지난해 부진이 2002년의 일전을 위한 휴지기였음을 알렸다. 1월1일 개봉한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는 400만명 넘는 관객을 끌어들였고, <소림축구> <레지던트 이블> 등 수입작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이 모든 것의 뒤안에는 정태원 대표가 있었다. 무엇보다 제작자로서 그의 능력이 빛을 발한 작품은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는 한물갔다고 판단됐던 ‘조폭코미디’를 가족 이야기로 변주해 500만 넘는 관객을 불러모았다. 2002년 그의 흥행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월19일 개봉하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상업영화 제작자고, 추구하는 게 흥행인데, 이렇게 좋은 성과가 있었다는 게 기쁘다”며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는 정태원 대표의 내년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3월의 <국화꽃 향기>, 5월의 <나비> 등 제작 중인 작품이 속속 개봉할 예정이며, <반지의 제왕> 3편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 등도 공개하게 된다. 그는 내년에도 흥행 반지를 꼭 낀 채 시네마서비스라는 가문에 영광을 가져다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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