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인터뷰
<가문의 영광> 제작,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정태원
사진 정진환박은영 2002-12-31

˝평론가의 별보다 관객 한 사람이 더 고맙다˝

정태원 사장은 요즘 표정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 지난 가을 개봉한 <가문의 영광>이 전국 관객 500만명을 훌쩍 넘기며, 올해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는가 싶더니, 수입영화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도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등 엄청난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올 한해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하거나 수입한 영화가 동원한 관객은 이로써 14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1/3 이상이 그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행차를 했다는 뜻이다.

공연 기획으로 시작해 매니지먼트 사업, 외화 수입과 영화 제작으로 차근차근 보폭을 넓혀온 정태원 사장의 충무로 활동경력은 짧지만 화려하다. <할렐루야> <산전수전> <키스할까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비천무> <흑수선> <가문의 영광> 등을 제작해 내놓았고, <스크림> 시리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 등 할리우드의 준메이저 영화사인 뉴라인, 미라맥스의 영화들을 도맡아 수입해 선보였다. 한동안 손뗐던 매니지먼트 사업을 슬슬 재개하는 중이기도 하다.

정태원 사장은 대박임이 확실한 <…두개의 탑>을 개봉하던 날, 극장 앞을 서성이며 축하 인사를 받는 대신, 부산에 머물며 <나비>의 고된 촬영현장을 지켰다고 한다. 충무로에서 얻은 타산지석의 교훈이 바로 “자만하면 바로 가더라(실패하더라)”는 것. 무엇보다 그는 자축할 여유가 없어 보였다. 인터뷰가 끝난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도, 그는 <나비>의 편집실로 직행하고 있었다.

-자타공인 올해 최고의 흥행사가 됐다. 기분이 어떤가.

=기분 좋다. 나는 상업영화 제작자니까, 흥행을 추구한다. 좋은 성과가 있었으니, 너무 기쁘게 생각한다. 이런 성과가 올 한해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반지의 제왕>은 1월1일부로 전국 300만명 동원을 내다보고 있다. 처음 한번 보고는 불안한 구석이 있었는데, 다시 보니 영화 참 재밌더라. (웃음)

-태원에서 올 한해 동원한 관객이 얼마나 될까.

=<반지의 제왕> 1편으로 400만명, <소림축구>랑 <레지던트 이블>로 155만명, <세렌디피티>와 <인썸니아>로 60만명, <가문의 영광>으로 515만명 동원했고, <반지의 제왕> 2편으로 연말까지 280만명 정도 내다본다. 합산하면 아마도…1400만명 정도 될 거다.

-무엇보다 <가문의 영광>의 흥행에 고무됐을 것 같다.

=좀더 진지해지는 것 같다. 관객에 대해 더 열심히 연구하게 되고. 나는 영화는 극장에서 관객과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들도 영화를 잘 안 보는데, 상업 영화 감독은 그러면 안 된다. 관객 반응에 민감해야 한다. 그런 게 현장 공부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감독, 배우, 작가들에게 극장에서 영화 보라고 권하고 얘기도 하고 내기도 하고 그런다.

-그 정도의 흥행을 예상했었나. 흥행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가문의 영광>은 처음부터 잘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투자도 했다. 재밌는 코미디,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감동을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끌어들인 것이 가족애다. <두사부일체>를 보면서 느낀 건데, 관객은 웃기는 것 그 이상을 원하고, 또 잘 받아들이더라. 그래서 엔딩을 그렇게 정한 것이다. 너무 폭력적이라는 얘기들도 있지만, 뒤에 감동을 주기 위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년 기대작으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와 본인이 제작하는 <나비>를 들었다.

=맞다. 내가 대놓고 자신있다고 말하는 영화는 <나비>가 처음이다. 11월25일에 크랭크인해 지금까지 절반을 찍었다. 엄청난 강행군이다. 그런데 팀워크가 최고다. 결과물도 기대 이상이고. 김현성 감독은 신인이지만, 비주얼 감각도 뛰어나고 드라마 이해력도 빠르다. 나와 합이 아주 잘 맞는다. 풀로 카메라 둘을 동시에 돌리고, 그중 하나는 망원을 부착하는 식으로 촬영하고 있는데, 소스가 엄청나서, 편집기사에게 촬영분을 미리 보내고 있다. 이따가 편집실에 가서 순서편집을 해보려고 한다. 물론 본편집은 감독과 함께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이다.

-삼청교육대를 배경으로 한 멜로영화라니, 대중영화치고는 무겁고 어두워 보인다.

=웃긴다. 그런데 슬프다. 슬픔으로 연결지어지는 웃음이랄까. 무거운 이야기지만, 인물들이 밝고, 시작부터 끝까지 웃음이 포진해 있어서,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을 거다. <흑수선>의 시행착오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다. 그땐 관객을 잘 몰랐다. 관객과의 만남에서 미처 계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코드를 조금만 수정했으면, 좋은 작품이 나왔을 텐데. (사무실 벽에 걸린 <흑수선> 포스터 패널을 가리키며) 봐라, 얼마나 아쉬우면 아직도 포스터를 못 떼고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나비>는 시험대에 올린 작품이다. 강우석 감독과도 내기했다. 이 영화 (흥행)되면, 앞으로 내가 하겠다는 영화, 다 투자하기로 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흑수선> 이후로는 신인 감독과의 작업이 부쩍 늘었다. 작품에 개입할 여지가 많아졌겠다.

=우리 회사 시스템에 맞는 사람들과 하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젊은 감독들과 하게 되는 것 같다. 중견 감독들과 영화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뜻이 통하고 이해가 맞으면 안 할 이유가 없다. 단, 우리 시스템에 융화되지 않으면, 서로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올해 영화계를 결산하는 기사들을 보니, 대부분 튜브 김승범 수석을 한국영화에 재앙을 불러온 장본인으로 지목하고 있더라. 제작자가 무슨 잘못이라고 혼자 뒤집어쓰나. 물론 그에게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있을 것이다. 현장을 방치했으니까. 상업영화를 제작하는 건 식당을 운영하는 것과 같다. 돈을 마련하고, 좋은 자리를 잡고, 유능한 주방장을 들이고… 모양은 그럴싸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운영자가 요리를 알아야 한다는 거다. 영화도 그렇다. 제작자가 영화를 알아야 하고, 현장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상업영화 촬영과정에 제작자가 개입하는 건 월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자기 영역을 침해당한다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

-이명세, 배창호 감독 등 함께 작업했던 감독들과의 불화설도 그런 맥락인가.

=대부분 편집과정에서 빚어진 갈등이다. 배 감독님하고는 편집과정에서 의견 차이와 승강이가 있었지만, 심하진 않았다. 이명세 감독님도 편집과정에 내가 개입하는 걸 못 견뎌 하셨다. 보너스 문제로 오해도 있었다. 해외 배급사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편집본을 보내면서 이 감독님 에이전트에게 허락을 받았는데, 내가 일부 장면을 무단으로 삭제한 것으로 오해하셨더라. 그런데 최근에 미국 가서 만났고, 술 마시며 다 풀었다.

-씨네락픽쳐스가 한때 <가문의 영광>의 공동제작 파트너로 알려졌지만, 실제 공동제작 형태로 진행되진 않았다. 어떻게 된 건가.

=<가문의 영광>은 태원에서 2년 동안 기획한 영화다. 씨네락픽쳐스에 현장 프로덕션을 맡기는 식으로 진행해보려고 했다가, 그쪽이 스탭을 짜고 운용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태원쪽에서 제작 전반을 일임하게 된 거다. 물론 그에 합당한 대가는 지불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수익 분배문제를 들고 나와 좀 놀랐다. 이번 일로 배운 게 많다. 살아도 혼자 살고, 죽어도 혼자 살아야지 (웃음) 공동제작은 다시 안 한다.

-<가문의 영광>을 비롯, 태원의 흥행작 대부분은 평단의 냉대를 받았다. 평단도 열광하고 영화제도 환영하는 그런 영화에 대한 결핍감은 없나.

=평단 기준을 맞추지 않으니, 좋은 소리 못 듣는 건 당연하다. 내 경우, 지난 4년 동안 제작한 영화 중에 관객이 100만명 미만이었던 영화는 없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180만명, <비천무> 220만명, <흑수선> 120만명, <가문의 영광> 520만명… 사실 난 평론가가 주는 별 몇개보다는 극장을 찾아주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고맙다. 앞으로 작가영화를 제작하게 될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작가영화 제작하려면, 자기 돈 갖고 해야지, 상이랑 칭찬은 제작자가 독식하고, 돈 댄 사람들한테 그 피해를 돌려선 안 된다. 작가주의영화쪽은 내가 공부도 덜 했고, 준비도 안 돼,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빨리 가는 게 능사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은 월동 준비도 하고, 군량미도 비축하고 해야 한다. 경영에 안정을 기할 때다.

-뉴라인, 미라맥스의 영화를 독점적으로 수입하다시피 해왔는데, 그 영화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초창기에는 뉴라인, 미라맥스와 독점 수입계약을 맺었다. 그땐 비디오 시장도 있고, 회사가 자리도 잡아야 하고, 그런 계약관계가 필요했다. 그런데 <반지의 제왕> 패키지를 마지막으로, 계약을 풀었다. 외화 여러 편을 패키지로 무리하게 구입할 필요가 없어진데다, 그쪽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서로 믿는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뉴라인 사장은 내 대부이고, 개인적인 고민 상담까지 할 만큼 가까운 사이다. <반지의 제왕> 세편을 450만달러에 구매했는데, 독일의 4500만달러, 일본과 영국의 3천만달러에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거래였다.

-2년 전쯤 매니지먼트 사업이 영화제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중단했었다. 최근 매니지먼트 사업(매니지먼트 서비스)을 재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요즘 흐름을 보면서, 할 수 없이 칼을 빼든 것이다. 매니지먼트 서비스는 상업적 수단이 아니라, 배우를 위한 양질의 매니지먼트를 지향한다. 최근 일부 매니지먼트사가 배우들을 패키지로 엮어 제작을 그르치는 사례들을 보면서, 그런 병폐를 막아보자고 시작한 거다. 공동제작이라면서, 무리한 인센티브를 요구하고, 지분을 요구하고, 그건 양아치적인 발상이다. 일단 1년 5억원 적자는 감수하고, 당분간 투자에 주력할 생각이다. 현재 관리하고 있는 배우들로는 차승원, 유지태, 류해진, 강성진, 김효진이 있다.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인가.

=내년 3월에 <국화꽃 향기>, 5월에 <나비>를 개봉하려 한다. 또 김영준 감독의 무협 프로젝트 <무영검>은 지금 시나리오 준비 중이고, 신인 박준영 감독의 코미디 <인도교를 사수하라>와 박기형 감독의 호러 <오렌지>(가제)를 준비 중이다. 갑자기 영화를 많이 제작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다 오래 준비한 영화들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융통성을 발휘해보려고 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