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씨네스코프
디지털 시대,아날로그 멜로 <국화꽃 향기>
2002-12-31

“백기 올리지 말고, 청기 내려.” 한겨울 바닷가에서 남녀 한쌍이 청기백기 게임을 하고 있다. 여자의 구령에 따라 손을 바삐 놀리는 남자는, 일부러 자꾸 틀린다. 그래서 핑계 김에 마주 보고 웃어본다. 쪽빛 바다와 은빛 백사장, 초등학교 건물을 멋스럽게 리노베이션한 그들만의 보금자리. 세상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젊은 연인은 그러나, 자꾸 슬프게 웃는다. 그들에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이것이 <국화꽃 향기>의 연인 희재와 인하의 마지막 밀월여행이다.

통영 용초도.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국화꽃 향기>의 촬영장은 숙연하다. 모두들 희재와 인하의 사랑, 그들의 슬픔과 고통에 감염된 탓일까. 큰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희재 역할을 위해 부쩍 감량했다는 장진영은 병색을 드러내기 위해 식음을 전폐하고 있다. 박해일도 아주 가끔 맑게 웃어 보이긴 했지만, 말과 웃음이 헤프지 않다. 이정욱 감독도 조심스러워 보인다. “만남과 헤어짐이 쉬운 디지털 세상에서 영원하고 운명적인 아날로그적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랑의 참의미를 보여주고 싶다.”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정통 멜로드라마를 지향하는 <국화꽃 향기>는 오는 3월,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할 예정이다. 사진 정진환·글 박은영

(왼쪽부터 차례로)♣ 장진영은 희재 역할을 위해 7kg를 감량해 수척해진 모습이다. “굴곡있는 삶을 살아가는 여자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서투른 게이머를 자처하는 인하 역의 박해일이 청기백기 게임을 하고 있다. <국화꽃 향기>와 판이하게 다른 영화 <살인의 추억> 촬영을 병행한 그는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20분간 들어가야 하는 자그마한 섬 용초도를 발견한 건 헌팅의 승리라 할 만하다. 스탭과 배우들은 이 섬에서 바닷바람과 싸우며 촬영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정욱 감독은 그의 연출 데뷔작 <국화꽃 향기>에 ‘아날로그적 코드’를 듬뿍 넣을 요량이다. <억수탕>에서 스님으로 출연한 배우 출신이라, 일부 독자들에겐 낯이 익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