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BIFF Daily > 8회(2003) > Todays News
[Talk] 김기영 감독님,부디 천국에서도!
2003-10-07

내가 처음 부산영화제를 찾은 것은 1997년. 그 해에 뉴커런츠상을 받았던 박기용 감독님 <모텔 선인장>의 조감독 시절이었다. 둘째날 밤이었나? 꽤 멋진 레스토랑에서 그 당시 ‘우노필름’이 주최한 <모텔 선인장> 파티가 열렸다. 나는 파티장 한 구석에 뻘쭘하게 숨어 있다가 그것마저도 불편하여 베란다 밖으로 나왔다. 나 같은 파티 부적응자들 몇몇과 어울려 지루함을 달래는 가운데, 창문 안 파티장에는 김성수, 박광수, 임권택 감독님 등등 기라성 같은 감독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당시 조감독 신세였던 나로서는 감독님들이 그렇게 모여있는 광경 자체가 하나의 현란한 스펙터클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곤 숨이 턱 멎고 말았다. 김기영 감독님이었다.

황학동 비디오 도매상을 싸그리 뒤져서 <화녀> <느미> <육식동물>의 테이프를 찾아내고 기뻐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바로 그 김기영 감독님을 실제로 보다니! 슬그머니 파티장 안으로 들어간 나는 조금식 감독님 쪽으로 접근했다. 그해에 있었던 김기영 감독님 회고전 덕분에 부산의 인기스타가 된 감독님은 파란 눈의 기자와 평론가들에게 둘러싸여 계셨다. 나는 감독님께 뭔가 말을 걸거나, 팔뚝에 사인이라도 받겠다는 일념으로 조용히 찬스를 기다렸다. 가까이에서 본 김기영 감독님의 독특한 인상과 육중한 몸집….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감독님은 갑자기 슥 뷔페요리가 있는 쪽으로 가버리시더니 커다란 접시에다가 음식을 마구마구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음식접시를 챙겨들고 구석진 곳으로 가시더니 와구와구 요리를 먹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찌나 박력있게 동물적으로 드시던지…! 그 분이 만드신 영화만큼이나 강렬하고 기괴한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다음해, 98년 2월, 감독님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셨다. 원인모를 혜화동 자택의 화재로 인해…. 결국 그날의 파티장이 나로서는 평새의 딱 한번이었던 김기영 감독님과의 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감독님, 부디 천국에서도 맛있는 것 많이 드셔요!’봉준호/ <살인의 추억>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