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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와 정조의 애니메이션,<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천국의 문>
김현정 2003-11-05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하나의 징후였다. 현실을 살기보다 자신의 내면으로, 잃어버린 기억 속으로 끊임없이 퇴행적인 몸짓을 보이다가 현실의 잔혹한 장벽에 부딪히며 파열음을 내던 상처투성이 소년소녀들의 이야기. ‘에바’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고 어떤 섣부른 희망이나 기대 따위는 더이상 믿지 않기로 결심한 20세기 말 청춘들의 송가가 되었다. 이후 <소녀혁명 우테나> <기동전함 나데시코> <레인> 등이 그 정조를 잇는 일련의 목록들을 채웠고, 드디어 <카우보이 비밥>이 등장했다.

2001년에 등장한 극장판은 26화로 끝난 TV시리즈 <카우보이 비밥>의 전체 이야기 중 중간쯤에 위치할 만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2071년 화성에서 시작한다. 대대적인 할로윈 축제를 앞둔 알파시티에서 끔찍한 탱크차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수백명의 사상자가 속출하지만, 죽음의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미지의 바이러스? 정부는 결국 이 사건에 3만우롱의 상금을 내걸고, 현상금 사냥꾼인 네명의 카우보이(스파이크, 제트, 에도, 페이)가 여기 빠질 리 없다. 이 모든 사건은 새로운 타입의 나노머신의 개발을 둘러싸고 희생된 특수부대 군인 빈센트가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린 세상에 복수하기 위함이 밝혀진다. 빈센트는 할로윈 축제 때 도시를 전멸시키려 하고,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 스파이크는 필사적으로 빈센트의 뒤를 쫓는다.

“연옥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다. 바로 이 세상이지. 옛날에 할로윈은 연옥에 있던 영혼이 기도를 통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날이었어.” ‘천국의 문을 두드리던’ 빈센트는 결국 그 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죽음을 선택한다. 꿈인 줄 알면서도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꿈, 혹은 그 꿈이야말로 진실이고 지금 ‘현실’이라고 강요받고 있는 이 세상이 허구일까? 장자의 호접몽에 덧붙여지는 경계선의 이야기는 사실 그리 새로운 테마가 아니다. 대신 전설적인 남자 영웅의 대명사인 배우 마쓰다 유사쿠를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 스파이크와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알기 위해 세상을 파괴해버리겠다고 결심한 ‘혁명가적인’ 안티 히어로 빈세트의 닮은꼴이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천국의 문>을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이건 누가 봐도 80년대 홍콩누아르에 경도되었던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개인적 취향이 강력하게 발산되는 순간이다. 마치 <첩혈쌍웅>을 보는 듯 뒤엉키고 서로의 피를 받아들이며 함께 지옥의 경계선 위에서 발버둥치는 두 남성의 거울 이미지. 그들의 차이라면 결국 죽음을 받아들인 빈센트가 현실을 인정했고, 살아남은 스파이크가 여전히 꿈같고 환상 같은 비밥의 세계에 머무르기를 선택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그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당신이 사는 세상은 진짜입니까? 진짜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듯 헤드폰을 끼고 여전히 건들거리며 모로코 거리를 쏘다니는 빈센트의 정서는 여전히 경계 위를 떠돌고 있다.

PS. <카우보이 비밥 극장판: 천국의 문>은 무엇보다 분위기와 정조의 애니메이션이다. 대사가 끊기는 순간 음악이 공백을 채운다. <나의 지구를 지켜줘> <마크로스 플러스>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등 90년대 재패니메이션을 장악했던 간노 요코의 매혹적인 음악은 대사나 제스처만으로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는 ‘비밥’의 진정한 앰비언스를 조성하는 당사자이다. 주인공들은 간노 요코의 음악에 사로잡힌 채 마치 로큰롤처럼 혹은 비밥처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용언 mayham@empal.com

Cowboy Bebop: The Movie-Knockin’ On Heaven’s Door | 2001년 |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 목소리 출연 야마데라 고이치, 이시즈카 운쇼, 하야시바라 메구미 | 장르 애니메이션 | DVD 화면포맷 1.85:1 아나모픽 | 오디오 돌비디지털 5.1 | 출시사 콜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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