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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포영화 총정리 [1]
김봉석(영화평론가) 사진 이혜정 정리 이영진 2003-12-19

호러 마니아 4인이 말하는 한국 공포영화의 현재와 미래

<장화, 홍련>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 <거울속으로> <아카시아>. 올해 공포영화의 목록은 유난히 풍성하다. 관객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은 영화도 있고, 평단의 찬반 논란을 가져온 영화도 있다. 2003년은 공포영화 장르가 한국 영화계에 분명하게 자리잡았음을 알리는 해가 되었다.

이런 조짐이 감지된 것은 지난 2000년. 비록 인상적인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가위> <해변으로 가다> <하피> <찍히면 죽는다>가 한꺼번에 나왔다. 이제 여름이면 공포영화 한편 정도, 라는 공식이 가능해졌다. 물론 한국 영화계에서 공포영화의 위치는 여전히 미약하다.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지향하는 감독도 거의 없고 공포영화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공포영화는 비주류 장르이고, 심지어 천박한 싸구려 장르라고 보는 시각도 엄존한다.

그러나 올 한해 한국의 공포영화가 스스로를 확장해나간 폭과 깊이는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장르로서의 공포영화와 위험사회의 반영이라는 점에서의 공포영화가 양립하면서 관객에게 다가갔다는 점 때문이다. <소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적 무의식을 공포라는 형식으로 풀어내는과 <아카시아>가 나온 것이 하나의 예다. 뿐만 아니라 공포영화는 어떤 장르보다도 마니아 집단이 강력하고, 열성적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고 그런 만큼 마니아들의 불만도 많다. 이들 마니아층은 공포영화가 가시적인 부흥을 이룬 올해의 상황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들에게 직접 들어보았다. 마니아들은 올해의 공포영화를 어떻게 맞이했는지, 왜 여전히 한국영화보다는 한국‘사회’에 불만이 많은지를.

김봉석 | 일단 올해 공포영화 중 가장 좋았던 작품이 어떤 영화였는지 궁금하다.

김지환 | 꼽는다면 <장화, 홍련>을 들 수 있겠다. DVD 코멘터리 봤더니 감독은 평론가들한테서 썩 좋은 평가를 못 받았다고 하던데. 그에 앞서 관객한테 호응을 얻은 게 중요하다. 해외쪽 반응도 좋은 것 같다. 해외 호러물이나 컬트 신작들을 10편씩 선정해놓은 사주마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는데, 거기에도 <장화, 홍련>이 끼어 있더라. 개인적으로 호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라는 점이 맘에 든다. <거울속으로>는 장르적으로는 잘되어 있는데 보는 이들을 끌어당기는 부분이 없다. 너무 무난하다고 할까.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계단>은 DVD 보면 감독이 코멘터리에서 자기 변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 디렉터스 컷이 보고 싶다. 은 엽기적인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

김종철 | <장화, 홍련>은 옛이야기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포장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숙련된 장르의 테크닉이라고 하기에 깊이가 부족하다. 기술적인 접근이 아닌가 하는 점은 불만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식의 접근이 대중한테는 잘 먹혀든 것 같다. 물론 여기에는 원작에 대한 친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읽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이종호 | 소설을 쓰다보니 스토리라인을 주의깊게 본다.은 스토리가 탄탄하고 플롯을 꾸려가는 과정이 치밀하다. 그 점을 높이 사고 싶다. 공포라는 것은 사실 은밀하고 개인적인 고립감에서 비롯된 심리다.은 심리학적 기제를 끌어들여 영화 속 인물의 공포에 밀착했고, 그래서 리얼리티를 높일 수 있었다. 이전까지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 전개에만 초점을 맞춘 공포영화들과 명백히 다른 점이다. 그에 비해 <거울속으로>는 이전 공포영화들을 답습한 것 같다. 소재는 신선한데 주변 이야기 없이 그것만으로 영화를 밀어붙이려 했다. 그게 패착의 이유인 듯하다.

김송호 | 난 <거울속으로>와 <장화, 홍련>을 들고 싶다. 무엇보다 만듦새가 충실하다. 좀더 장르를 넓혀서 보면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 등도 좋았다. 등장인물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 관객과 극적 흐름을 공유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내년에 나오는 공포영화들이 이러한 흐름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어쩌면 <장화, 홍련>의 흥행이 마케팅과 같은 영화 외적인 부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김봉석 | 2000년과 다르게 올해 뚜렷하게 부각된 경향이나 상황이 있는가. 있다면 그걸 좀 짚어보자. 이종호 (공포영화에 대한) 관객의 인식이 전환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 <폰>이라는 영화가 기여한 부분이 있다. 그동안 공포영화는 마니아를 위한 것이었는데, <폰>은 스토리는 허술하지만 대중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 공포영화 하면 침침하고 음울한 분위기에 무자비하게 난도질하는 뭐 그런 이미지 아니었나. 그런데 <폰>은 비주얼도 감각적이고, 스토리도 깔끔했다. 이후 영화들에서도 그러한 접근이 엿보인다.

김종철 | <장화, 홍련>의 어떤 장면은 장르적으로 안일하고 허술하다. 두 자매의 다리를 물속에서 보여주는 것이나 귀신의 목이 꺾여 있는 방향이 연결장면에서 다르다거나 하는. 하지만 이 영화에 주목하는 건 무엇보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몇편 정도가 돈을 벌어줘야 장르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질 수 있다.

김송호 | 반면 여전히 상황은 취약하다. 해외 공포영화 걸작들을 보면 오리지널 시나리오에서 발전한 경우도 있지만 소설이나 연극 등 다른 영역에서 원작을 취해서 성공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 호러문학도 호러게임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공포영화만 있는 상황이다. 영화 이외의 영역에서 파생되는 소스가 전무하다. 문화영역에서 호러라는 장르적인 기반 자체가 너무 취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김지환 | 충무로에서 호러는 신인감독들이 하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런데 호러는 신인감독이 하기에 가장 위험한 장르다. 감독의 연출과 편집의 힘이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인데. 잘하면야 피터 잭슨이나 샘 레이미가 나왔다고 하겠지만, 반대로 찍히면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신인감독이다 보니 영화가 특징없는 시스템의 결과물로 나올 확률도 크고. 그러니 <장화, 홍련>처럼 조금만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면 관객이 열광한다. 그런데 이게 기형적이다. 이제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충무로 외부에 있는 인디쪽에서 메이저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이들이 한명씩 나와줘야 한다.

김종철 | 독립영화를 보면 전보다 단편호러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소개할 창구가 없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지환 | 그런 걸 보면 충무로에서 잘 나가는 감독들이 반성 좀 해야 한다. 특히 인디쪽 정서를 아는 분들이 나서서 B급영화가 나올 수 있도록 후배들을 다독여줘야 한다. 어려운 게 아니다. 디지털 프로젝트가 거액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그런 감독들이 나서서 프로듀서를 할 수도 있겠고. 단편영화의 경우 메이저영화와 가장 차이나는 것이 스탭들이다. 아이템은 좋은데 때깔이 떨어진다. 그런데 사실 충무로 인력들이 얼마나 많나.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주류에 들어선 감독들이 연결을 해준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게 없다.

이제는 기본에 충실한 영화를 보고 싶다

김봉석 | 인디에서 뭔가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결국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 <거울속으로>나은 유지태니, 전지현이니 스타가 있어 그나마 관객이 들었다. 반면 스타가 없었던 <아카시아>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스타감독이 뛰어들면 좋겠지만 그것도 어렵고. 잘 만든 인디영화라고 해도 현재 구조라면 묻힐 수밖에 없다.

김지환 | 호러영화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투자사나 제작사가 공포영화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무서우면 된다, 고 했다가 시나리오 나오면 드라마는 어디로 갔니, 그런다. 그걸 맞추다보면 아무래도 드라마 위주의 영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무서운 장면이 몇개 삽입된 형태로. 공포를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것이 아니다. 인디쪽에 기대를 거는 이유도 이런 상황 때문이다.

김봉석 | 주류에서 공포영화를 연출한 감독들은 이 장르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기보다 소재에 걸맞은 형식으로 호러문법을 끌어들었다고들 말한다. 올해 영화를 내놓은 감독들 중에 김지운, 박기형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다. 주류에서도 인디와 다른 어떤 흐름이 필요한 것 아닌가 싶다.

이종호 | 호러 전문 감독, 제작사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호러라는 장르 자체가 꾸준하게 감독도 키우고 아이템도 발굴해야 발전하는 건데. 일회적, 산발적으로 접근하다보면 소재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특히 국내 관객은 잔혹하게 찢어죽이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는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만드는 입장에선 머리 긴 여자귀신이 스멀스멀 나오는 분위기로 갈 수밖에 없는데. 모두 다 엇비슷한 영화가 될 위험이 크다.

김송호 | 소재는 외려 다양하다. 급격한 현실의 변화를 겪어온 사회적 상황을 고려하면 모순된 정서들, 고여 있는 소재들이 널려 있지 않나. 그걸 작품화하려는 시도들이 없어서 그렇지. 이 그런 가능성을 타진해본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