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국제영화제 서킷, 그 진실의 문 [1]

국제영화제 서킷에 대한 10가지 오해 - 한국영화를 향한 외국 평론가의 제언

국제영화제 이것이 함정이다

지난 30년 동안 영화제는 비영어권 영화에 배급망을 터주는 도약대가 되어왔다. 그렇지만 영화제란 서양, 특히 유럽에서 창안해낸 것인 만큼, 지난 2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행사들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서구가 여전히 게임의 규칙을 정하고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영화제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은, (서구가 비일본권 동아시아영화를 ‘발견’하게 되면서) 80년대 초 임권택, 이두용 같은 감독들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최근 5년여 동안에야 새로운 영화제작 붐이 일어나면서 한국이 서양의 이목을 다시 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한국 영화계에 이 강력한 메커니즘을 타는 것에 대한 신선한 흥분의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다. 그런데 여느 설레는 여정이 그렇듯, 요령을 익혀가는 과정에서 그만큼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사반세기 동안 기자로서, 그리고 평론가로서 겪어온 관점에서 ‘영화제 서킷’으로 알려진, 제멋대로인데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괴물에 대한 10가지 오해를 소개할까 한다.

오해1. 영화제는 진정한 국제행사다.

대다수 영화제의 공식 명칭에 포함되는 ‘국제’라는 단어에 속지 말길. 외국인 고문과 스카우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선택은 해당지역의 인사들이 하며 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취향보다는 바로 그 나라의 취향을 반영한다. 이 점에서 영화제란 일종의 조심스러운 문화전쟁이다. 지난 6년 동안 칸영화제 공식부문(즉 경쟁부문과 비경쟁 부문 사이드바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한 유일한 한국 감독이 임권택과 홍상수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채로운 전통 문화에 대한 임권택 감독의 탐색(<춘향뎐> <취화선>)은 장식적인 동양 문물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취향에 딱 들어맞았고, 홍상수 감독의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인 영화들(<강원도의 힘> <오! 수정>)은 프랑스 영화계의 감수성과 잘 맞아떨어진다.

오해2. 수상이 가장 중요하다.

절대 아니다. 수상은 당장에는 홍보효과를 제공하고, 때로는 영화제나 감독의 모국으로부터 금일봉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더 길게 보면 상업적으로 영화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심사위원단이란 항상 믿을 수는 없는 것으로, 때로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거나 조정당하기도 하고, 많은 경우 세계영화에 대해 지식이 많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에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이미 정평이 난 감독은 상이 필요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기로 한 지난해 로카르노영화제 심사위원단의 터무니없는 결정은 유쾌하게도 이 영화가 널리 호평을 받는 것도, 배급망을 확보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오해3.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세계영화에 대한 전문가다.

그렇지 않다. 그리고 아시아영화처럼 ‘전문화된’ 영역에 대해서는 각국의 영화진흥기관이나 개인적인 일정이나 사익이 따로 있는 지역고문, 평론가에게 의존하여 연중 현지답사에서 살펴볼 영화들을 미리 선별해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제 서열에 가깝게 지내는 영향력이 있는 지지자가 없다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영화는 대규모 영화제에서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영화제들은 폭을 넓히기보다는 늘 같은 이름들을 선호하기로 악명이 높다.

오해4. 최종 지향점은 칸이다.

꼭 그런 건 아니다. 칸에 매체가 어마어마하게 집중된다는 것과 그 이름이 지닌 마력 덕에 영화인들의 자신감을 치켜세워줄 수 있다. 동시에 그들을 적어도 일시적으로 파멸시킬 수도 있다(기대치가 과중된 감독 작품의 기자시사회나 견본시 상영 뒤 눈물바다가 되는 것에 대한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다른 영화제와 달리, 칸은 기본적으로 공공행사이기보다 산업계 행사이며, 압박감이 강한 분위기에서 평론가들이 취하는 극단적인 입장들로 인해 단기적으로 영화를 망하게 하거나, 항상 중요하게 여겨지는 홍보에 드는 비용을 고려했을 때 돌려받는 것이 적은 돈낭비로 끝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대다수 언론은 칸 경쟁부문에만 관심을 쏟으며, 훨씬 적은 정도로 ‘주목할 만한 시선’에나 관심을 주는 정도다. <해피엔드>는 강하게 인상을 주는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아주 작은 부문인 ‘비평가주간’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상영되었다.

오해5. 칸은 매년 세계 영화계의 최고작들을 조명한다.

그렇지 않다. 칸은 이미 자리잡은 이름의 작품들을 상영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 자본, 프랑스 영화사 또는 프랑스 배급사가 있는 작품들을 선호하며, 대체로 프랑스 중산층의 취향에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칸은 세계 영화계의 발전사항을 살펴보기에 적절한 길잡이가 아닌 것이다. 이 영화제는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을 거부했던 바로 그 영화제이다. 날이 강한 작품들은 베를린에서, 색다른 작품은 베니스에서, 그리고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작품은 토론토에서 선보이는 것이 낫다(그러나 6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