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시작한 10년 전 전도연의 이름은 ‘여인2’였다. <접속>(1997)의 수현(전도연)은 학창 시절 연극에서 맡았던 미미한 배역 이름을 컴퓨터 통신 대화명으로 썼다. <접속>의 첫 장면은 혼자 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온 수현(전도연)이 소나기를 만나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카메라는 피카디리극장 앞 보도에 찍힌 스타들의 손도장을 훑어본 다음 수현을 무심히 지나친다. 이어 동현(한석규)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지만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간다. 그날 두 사람이 본 영화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였다. 사랑이 죽음까지 구제하는 그 영화가 예언이었을까. 그 뒤로 줄곧 전도연은 사랑의 신령함을 믿고 전도했다. 웬만하면 먼저 프러포즈하고(<내 마음의 풍금>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약속을 모르는 남자를 약속하게 만들고(<약속>), 냉정하게 불륜을 주도하고(<해피엔드>) 남녀의 정을 옆집 개 이름인 줄 알던 바람둥이를 사랑의 신자로 개종시켰다(<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영화를 떠나서도 연애의 매혹을 서슴없이 예찬해온 배우 전도연은 일용할 사랑에 주리고 사랑이 영화에서 이루어지듯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믿는 사도처럼 보였다.
전도연은 공주를 가슴에 품고 사는 세상 모든 여자를 연기해왔다.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정도를 제외하면, 전도연이 분한 여성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그녀들은 연애로 앓는 동안에도 매일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널고 월급을 위해 바지런히 출퇴근한다. 말단 사무직 유니폼이 이렇게 착 달라붙는 여배우는 달리 없을 것이다. 정확히 말해 전도연은 평범하다고 눈속임할 수 있는 종류의 아름다움을 가졌다. <너는 내 운명>의 작심한 카메라를 통해 보이는 그녀는 눈부시다. 특히 전도연은 자연광이 잘 받는 배우다. 그녀의 복숭아 같은 이마와 기운찬 팔다리 위에서 햇빛은 흐뭇하게 부서진다. 전도연은 동안이지만 그 얼굴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녀는 자기가 소녀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잘 깨우치고 있는 완숙한 여인이다. 호기심과 시샘은 전도연을 밀어가는 두 바퀴다. <너는 내 운명> 개봉 즈음 인터뷰에서 황정민은 정말 사랑에 취한 남자 같았지만 전도연은 “내 연기가 밀리면 안 되는데”라고 농담을 섞곤 했다.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한석규, 황정민, 이병헌, 박해일…. 모종의 컬렉션같이 들리는 이 명단이 그녀가 지기 싫어했을 상대역의 이름임을 상기하면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전도연이 이룬 성장은 납득할 만하다.
<인어공주>가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전도연 연기의 총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는 내 운명>과 <밀양>은 전도연이 지닌 스펙트럼의 왼쪽과 오른쪽에 숨어 있던 한뼘을 들추어냈다. <밀양>의 신애는 한번 박살난 삶을 풀로 붙이고 낯선 도시로 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출발하려는 여자다. 하지만 남은 지푸라기도 곧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밀양>의 전도연은 어느 때보다 메마르고 왜소하다. 웅크려 앉은 신애는 자꾸 작아져 마침내 잃어버린 아들만해진다. <밀양>에서 그녀의 모습은 연기에다, 거기 가해진 가혹한 외압을 포함한다. 거꾸러졌구나 싶은 순간에 신애는 다시금 파닥거린다. “난 너한테 안 져! 절대 안 져!” 하늘에 외친다. 그처럼 전도연이 지닌 끈질긴 탄성은 삶의 하중과 맞서 전선을 형성하고 거대한 압력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밀양에서 돌아온 전도연은 신애와 좋게 헤어진 것처럼 보였다. 자기 안에 더 퍼낼 샘이 있었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고 완성한 영화를 자랑스러워했으며 아직 나타나지 않은 다음 작품의 느린 걸음을 살짝 원망했다. 놀기만 좋아했다는 불과 10여년 전의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알사탕을 입 안에 굴리는 듯한 말투로 전도연이 대답한다. “하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하긴 누가 먼저 옆구리 찔렀는지가 뭐 그리 중요할까. 일이 전도연을 먼저 사랑했고, 그녀는 오는 사랑 막지 않았다면 어떠하랴. 조언 하나. 전도연의 1천 와트짜리 미소를 보고 싶다면 <밀양>을 보고 전도연에게 “최고예요”라고 박수치지 말 것. “당신이란 배우, 아직도 모르겠어요.” 이것이 정답이다.
-언젠가 “처음 가는 장소인데 다음 모퉁이를 돌면 뭐가 나올지 마치 와본 곳처럼 떠올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 않아요? =제 말이 아니라 <약속>의 대사죠. 공상두(박신양)에게 “그때 너를 만나러 오면 어떤 고통이 있을지 눈에 선한데도 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열편 정도 영화를 하다 보면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도 장차 겪을 일이 눈에 선한 경우가 있죠? 이창동 감독님처럼 힘들게 작업한다는 소문이 파다한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고요. 문소리씨한테 슬쩍 물어보진 않았어요? =이창동 감독님 현장에서 배우들이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죠. 그런데 전 무작정 착각을 했어요. “나는 괜찮을 거야. 나는 예외일 거야. 말로써, 애교로써 풀어갈 수 있을 거야.” (웃음) 문소리씨가 “언니, 이번에 이창동 감독님과 하신다면서요? 고생 좀 하시겠어요”라고 인사할 때도 말로는 “응, 고생해야지” 그랬지만, 내심 (깍쟁이 말투로) “넌 고생했지만, 난 달라” 그랬어요. (좌중 웃음) 그런데 다르기는커녕 차라리 <오아시스>의 공주였다면 눈에 보이는 괴로움일 텐데 신애는 티는 안 나고 힘은 힘대로 들고.
-이창동 감독님은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시킬 것 다 시키는 연출자고, 전도연씨는 투덜거려도 할 것 다하는 배우로 알고 있어요. 이런 조합에서는 배우가 확실히 ‘밑지지’ 않습니까?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죠. 그런데 잘한다, 예쁘다 칭찬받으면 은연중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창동 감독님은 (짐짓 토라진 투로) 아예 칭찬을 모르고 사시는 건지는 제가 몰라도, 칭찬에 인색하시고 스스로를 자꾸 괴롭히게 되니 저도 몰랐던 뭔가를 끊임없이 끄집어내는 작업이었어요.
-무대인사 때 유난히 떨린다고 했어요. 지금은 호평이 나온 상태니까 안심하시겠지만, 언론 반응이 있기 전까지 자신만의 직감만 볼 때 <인어공주> <너는 내 운명> 같은 작품과 비교하면 어땠습니까? =<밀양>이 유독 달랐던 건, 전혀 가늠이 안 갔다는 거예요. 강호 오빠에게 말하니 자기도 그렇다면서 이런 경험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떤 신이 잘리고 붙을지 확실히 모른다는 점도 있지만, 이 영화와 신애라는 인물이 가진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서 도무지 짐작이 불가능한 거예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제가 그랬거든요. “신애, 얘 사람이야? 대체 이런 감정이 존재해? 이런 걸 느끼고도 사람이 살 수 있어?” 영화 전체에서도 우리가 뭘 보게 될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알 수 없었어요.
-전도연씨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너는 내 운명>을 같이 만든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는 “영화를 보기 전에 도연이가 이렇게 했겠지 예상했던 것을 뛰어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제 짐작에, 정작 본인은 영화를 찍는 동안 막상 “아, 득음했구나” 하는 식의 후련한 순간을 맛보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한숨) 그건 진짜 제가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에요. <너는 내 운명>도 여태까지 연기와는 다르다는 평을 들었지만 전 대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 거예요. 다만 배우건 감독이건 안주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괴롭히면 그 괴로움이 영화에 드러나는 건 확실해요.
-그럼 영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진심이나 진실이 스크린에 표가 난다고 보세요? =예! 왜냐면 연기하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감정을 다스리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잖아요. 감정으로 거짓말하고 장난하면 마주앉아 눈 맞추고 대화만 않을 뿐 보는 사람은 분명히 알아요. 말 못하는 갓난아기도 자기를 예뻐하고 안 예뻐하는 걸 안다잖아요. 그 확신은 있어요.
“익숙하지 않은 걸 싫어해요, 그래서 빨리 ’내 것’으로 만들죠”
-자기가 욕심 많다는 건 언제부터 알았어요? =전 제가 언제 철이 들었는지, 사춘기가 언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매번 현장을 즐기기도 하고 괴로워도 하면서 만들었을 뿐, 이번 영화에서는 피를 흘리듯 해서 성장했다든가 하는 인식은 없어요. <해피엔드> 때는 눈으로 봐도 분명 한 꺼풀을 벗었다는 느낌이 있으니 배우로서 조금 두려움이 없어졌나보다 싶고 1인2역을 한 <인어공주>는 이제 사람 눈을 보지 않고 점 하나만으로도 연기를 해낼 수 있구나, 생각하는 정도죠.
-일을 떠나서 욕심 많은 건 타고난 성격이잖아요? =내 사람, 내 물건에 애착이 강해요. 집착에 가깝죠. 내가 가진 것 안에서 생기는 욕심들은 많아요. 그러나 남의 것을 탐내는 욕심은 놀랄 만큼 전혀 없어요. 남들이 “에이 설마” 할 정도로.
-형제 중 막내죠? 손님이 찾아오면 앞에서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러지 않았나요? =수줍음이 많아 뒤에 가선 혼자 해보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건 즐기지 않았어요. 국어시간에도 희곡을 배역 나눠 읽으면 속으론 하고 싶다가도 막상 시키면 잘 못했죠. 저를 포함한 아무도 제가 배우가 되리라고 상상 못했어요.
-그럼 친구도 단짝하고만 다니는 편이었나요? =저는 제가 호탕하고 소탈하고 긍정적이고 착해서 세상 살기 힘든 애라는 이미지를 갖고 살아왔거든요. 근데 친구들 회고담을 들으니 왜곡된 기억인지도 몰라요. 대학 때 친구 말로는 어느 날 저와 도서관에서 만나 리포트를 쓰기로 했는데, 발넓은 그 친구가 제가 모르는 아이들과 어울려 있으니까 오자마자 제가 “난 집에 가서 그냥 혼자 할게” 그러고는 가더라는 거예요. 익숙지 않은 걸 참 싫어해요. 물가에 버려진 아이처럼 두렵고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요.
-그래서 거꾸로 낯선 사람과 낯선 환경을 친숙하게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킨 것 아닐까요? (웃음) =맞아요.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빨리 ‘내 것’, ‘내 사람’으로 만드는 거죠. 일할 때는 불가피하니까 빨리 적응해 어울리는데 사적 영역에서는 교류가 적어요. 물론 강호 오빠, 경구 오빠, 최민식씨는 일 이야기를 해도 좋고 사는 이야기를 해도 좋아요. 배우 같지 않고 사람 같아요. 문소리씨는 처음으로 여배우끼리 술잔도 기울이며 대화한 상대예요. 그 얘기 듣고 송강호 선배가 무척 대견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 그럼 내가 머리채라도 잡을 줄 알았어?” (좌중 웃음) 그랬죠.
-입양아 위탁모로 나선 TV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요. =그 프로그램 전까지는 제가 굉장히 비호감이었는데 이후 많은 분이 호감으로 돌아섰다나요. 제가 예쁜 척하고 내숭떠는 가식적인 사람으로 보였나봐요. 신인시절부터 알았던 PD님의 부탁으로 얼떨결에 맡았는데 더럭 겁이 났죠. 제가 집을 공개한 적도 없고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카메라에도 익숙지 않아서요. 프로그램을 마치고는 가족 모두 괜히 했구나 싶었어요. 흥미 위주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쇼’의 형식으로 보여주거나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될 문제인 것 같았거든요. 아이를 보내고 나서 후유증이 너무 심해서 이후로는 그 프로그램을 보기 싫더라고요.
-조카를 돌본 경험도 있다고 들었어요. 오빠, 언니와 터울이 많이 지나요? =언니랑은 열한살, 오빠랑은 열세살 차이나요. 안 낳으려다 낳으셨다는데, 안 낳으면 큰일날 뻔했죠? (웃음) 하지만 귀여움만 받는 처지는 아니었어요. 잔심부름하느라 어릴 때 가만히 앉아 친구들과 논 기 억이 없어요. 아침에 눈떠서부터 잠들 때까지 “도연아, 도연아!” 하는 소리가 집안에 끊이지 않았다니까요. 거의 식구들 몸종이었죠. (웃음) 대학교 때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가 갈 때 한 말이 있어요. “네 얼굴 제대로 빤히 본 게 딱 십분이다.” (좌중 웃음)
-예전 기사 중에 “가족에 묶여 사춘기를 남처럼 보내지 못했다”는 말이 있어서 숨겨진 아픔이 있나 조심스럽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심부름에 시달렸다는 뜻이었어요? (웃음) =사춘기 고민 같은 걸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죠. (웃음) 전 주로 언니가 야단치고 챙겼어요. 언니가 엄마한테 말 잘해주면 그날은 칭찬 듣는 날이었죠.
-겁은 많은데 뭘 배웠다 하면 진도가 빠른 편인 것 같아요. <피도 눈물도 없이>의 수진처럼, 욕설이나 주먹질이 오가면 “어머, 어머” 놀라다가 정작 자기가 더 심한 일을 확 저지를 것 같아요. =겁은 많은데 겁은 그냥 겁으로 끝내요. 겁나서 할 일을 못하는 경우는 없어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정신이 은연중에 몸에 배 있죠. 매니저 언니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제가 떨면 엄살이라고, “저래 놓고 쟤는 결국 너무 잘해” 하는데, 실은 엄살이 아니라 진짜 겁이 나는 거예요. 제가 제 자신을 떠미는 거죠. “한번 해봐!”
“데뷔 초에는 배우를 오래 하리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전도연씨를 처음 본 건 잡지 화보에서였어요. 연기보다 연예계라는 곳이 먼저 와닿았을 텐데 그 세계에 가면 뭐가 있을 것 같았어요? =연예계를 염두에 둔 적이 없는데 우연히 시작한 잡지 일을 제법 해내는 거예요. 전혀 몰랐던 화장도 여기저기서 사 모아서 곧잘 하고. 재미있었어요. 처음 잡지를 찍을 때는 이것만 하면 무조건 스타가 돼서 사람들이 다 알아보는 줄 알았죠. 그러다 점차 “아, 잡지 모델은 잡지 모델일 뿐이고 뭔가가 되는 건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CF모델이 되면 다들 알아볼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그렇게 조금씩 방송, 영화 일을 시작했죠. 미래를 계획한다거나 배우를 오래 하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고 어떤 일을 하건 이게 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서울예대 진학을 선택한 시점은 언제쯤이었죠? =고교 졸업 즈음 모델 일을 시작한 다음 예대 시험을 쳤어요. 대학을 꼭 가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제 실력으로는 욕심만큼 좋은 학교를 못 갈 것 같았고 그럼 포기하고 차라리 딴 길을 찾을까 했죠. 그런데 끼 많은 친구 하나가 같이 시험을 치자고 권했어요. 그 친구는 면접 보고 나오더니 시키는 게 너무 많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전 면접관이 할 줄 아는 게 뭐냐고 물어서 할 줄 아는 거 없다 그랬거든요. (웃음) 결국 저는 붙고 친구는 떨어져서 꿈을 접었어요.
-전도연씨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스타는 아니에요. 이를테면 출연한 미니시리즈가 히트를 쳐서 한달음에 스타덤에 오르진 않았어요. 탤런트 공채에 불합격한 경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든 브레이크가 걸릴 때 의기소침해지거나 다른 길을 궁리하지 않았나요? =꿈이 배우가 아니었으니 시험에 떨어졌다고 좌절하진 않았어요. 뭔지 몰라도 “난 이거 아니어도 돼”라는 당돌한 생각이 있었어요. 뭐 할거냐고 물으면 “시집가면 되지!” 그랬죠. 항상 결혼이 하고 싶었기 때문에 연애할 때마다 결혼을 꿈꿨어요. 크라운제과 모델이었는데, 제가 잘 돼야 과자도 잘 팔리니까 제과회사에서 프로필 사진도 찍어주고 탤런트 시험도 보라 그러고 연기연습도 시키면서 매니저 노릇을 해줬어요. 탤런트 시험에 떨어진 뒤 CF를 본 <우리들의 천국>에서 연락이 와 연기를 시작한 거예요. 하지만 일을 해도 빨리 끝내고 놀 생각뿐이었죠. <구미호> 오디션도 보라고 해서 갔는데 신철 사장님 말씀이-전 기억 안 나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애가 테스트를 해보자니까 “남자친구 만나야 해서 시간 없는데요.” 그러더래요. 그래서 “그럼, 가세요.” 그랬대요. 속으로 저런 애가 잘될 리 없다고 하셨겠죠. (웃음)
-조소혜 선생님이 쓴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하희라씨의 동생 역으로 분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탄광촌의 문학소녀였는데 <광부의 딸>이라는 소설로 작가가 되는 인물이었죠? =NG를 많이 냈어요. 대사가 많은데다가 문학소녀다 보니 말이 어찌나 어려운지! “아, 문학소녀 하기 진짜 어렵다” 그랬죠. (웃음) 하희라 언니는 토씨 하나 안 틀리는데,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싶어 우울했죠. 그런데 같은 시기에 다른 단막극에서는 “잘한다”고 칭찬해주니 제법 해내는 거예요. 그때 알았어요. 칭찬이 사람을, 아니 배우를, 시작하는 미완의 배우를 얼마나 대단하게 만들 수 있는지.
-TV 활동만 했던 시기에 나름대로 자신감을 확보한 시점이 있나요? =출근하듯 나가서 일하고 정시 땡치면 퇴근하듯 연기했어요. 그래도 누가 뭐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런데 <사랑할 때까지>라는 일일연속극에서 제 아버지로 분하신 박근형 선생님한테 연습시간에 엄청나게 혼난 적이 있어요. 네가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린다, 네가 무슨 배우냐 앵무새지, 벼락같이 꾸짖으셨어요. 울면서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녹화해놓은 제 연기를 봤어요. 그때까지는 제 연기를 모니터해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요. 궁금하지도 않았던 거죠. 놀랍죠? 정말 말도 너무 빠르고 혀 짧은 소리도 나고 못 알아듣겠더라고요. 누군가 가르쳐준대로 볼펜을 물고 성경책을 읽었는데 끈기도 없어서 하루 하고 말았죠. 연기에 큰 뜻도 없었을 때니까요. 아무튼 말을 천천히 하는 연습부터 해보자고 평소 대화할 때 스스로 심하다 싶을 만큼 말을 느리게 해봤어요. 그랬더니 그 정도가 남들에겐 보통 속도라고 하더군요. 아무튼 결국은 박근형 선생님한테 칭찬도 받았어요.
-좋은 배우가 되겠다는 야망이 처음엔 크지 않았던 연기자 가운데 연기 레슨을 뒤늦게 받는 경우도 있잖아요. 연극 무대에 서기도 하고요. 전도연씨는 <리타 길들이기>를 공연했죠? =<리타 길들이기> 희곡 리딩을 끝내고 제 첫 질문이 “잠깐만, 사람이 정말 이 대사를 전부 외워서 할 수 있나요?” 였어요. (좌중 폭소) 당시 드라마 <간이역>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연극 대사를 외우지 못해서 더블캐스팅 공연에서 제가 무대에 서는 날을 계속 미뤘죠. 그러다 내일은 빼도 박도 못하고 공연하라는 통보를 받고 펑펑 울면서 연습했어요. 당일에도 “거봐요. 저 못 외우잖아요” 하며 울면서 연습했죠. “대사를 빼먹어도 좋으니 생각나는 것만 지껄이고 들어오라”고 하셨어요. 첫 장면은 리타가 문고리를 덜컹거리다 넘어질 듯 프랭크 교수의 방에 들어가 다짜고짜 대사를 쏟아내는 거였죠. 그런데 스탠바이 상태에서 제가 무서워서 문고리를 붙들고 놓질 않았어요. 문에서 소리는 나는데 등장할 리타는 안 나오고 교수 역 선생님은 혼자 계속 “누구세요? 들어와요! 아니 왜 안 들어와?” 하면서 애드리브를 하고. (웃음) 그러다 연출 선생님이 확 밀어서 우당탕 무대로 넘어졌는데 얼굴을 드니 바로 관객 얼굴이 코앞에 있는 거예요. 그때부터 미친 듯이 대사를 쏟아냈어요. 공연이 끝나고 울면서 “선생님, 죄송해요. 여기선 이걸 빼먹고 저기선 그걸 빼먹었어요.” 사죄했더니 연출자 선생님이 웃으시며 “자기가 빼먹은 대사가 뭔지 다 아는 배우는 없는데 넌 그걸 기억하니 됐다”고 하셨어요.
“’최고’보다, ’더 보여줄 게 많구나’라는 말이 더 큰 칭찬이에요”
-<접속>을 다시 보며 전도연씨는 유니폼이 아주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어요. 대개 여배우들이 제복과 겉돌기 쉬운데 전도연씨는 사무용 빌딩 복도나 엘리베이터, 우체국 창구 앞에 앉아 있어도 위화감이 없어요. 주로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딸, 노동하고 가계를 일부나 전부 책임지는 젊은 여자를 연기하기도 했고요. =자주 듣는 이야기인데 평범해서 그렇겠죠. 그러다 보니 코디네이터 언니가 저한테 비싼 옷 좀 입혀보는 게 소원이었어요. 그래서 <프라하의 연인>을 찍을 때 가장 신난 사람이 코디네이터였어요. (웃음)
-<약속>은 또벅또박한 말씨가 두드러진 작품이라 기묘하게도 사극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연기와 연결해서 보게 되더군요. 특유의 강조하는 억양이 혹시 콤플렉스는 아니었나요? =<약속>은 연극의 대본을 많이 가져온 시나리오라 대사가 잘 입에 붙는 편이 아니었어요. 듣기 힘든 대사는 아닌데 하기에는 힘이 좀 들었어요. 그걸 편하게 소화하고 싶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보기엔 <해피엔드>부터 전도연씨가 많이 달라졌어요. 외모도 부쩍 아름다워지고 연기도 도약했다고 느꼈어요. 혹시 두 가지 자신감에 어떤 관련이 있나요? =<해피엔드>를 통해 “아, 나는 배우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발견하고 인정했어요. 촬영 전 노출장면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어머니께 말씀드리던 중에 “엄마 난 배우고, 딸 시집 잘 보내려고 배우시킨 거 아니잖아” 하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어요. 평소에 준비한 말도 아니고 설득할 요량도 아니었는데 그 이야기하고 내 방에 돌아와 얼마나 대견하던지! <해피엔드>는 전도연이 전도연에게 “넌 이런 배우”라고 말해준 영화예요.
-그동안 작품 선택을 지켜보면서 전도연씨는 인간적으로 호감을 느낄 수 있는 캐릭터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10년간 같이 일하신 싸이더스HQ의 박성혜 이사는 지금까지 전도연씨가 가장 힘들어한 작품이 <해피엔드>라고 봤는데 <밀양>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두 영화에서 힘들었던 까닭은 혹시 <해피엔드>의 보라와 <밀양>의 신애가 쉽게 좋아하거나 친해질 수 없는 여자이기 때문 아닌가요? <인어공주>에서도 배우가 나영보다 연순을 좋아하는 티가 나거든요. =보라도 신애도 처음부터 이해하긴 힘들었어요. 어느 작품도 인물을 다 알고 들어간 적은 없어요. <해피엔드>의 보라는 이 여자 왜 이러나 싶었어요. 전 어려서부터 너무 하고 싶던 일이 결혼이니까. 영화를 만드는 동안 그녀를 이해했어요. 그것도 역시 사랑의 파편이라는 점에서. <밀양>은 읽고 무슨 내용인지 몰라 한참 동안 감독님께 전화도 못 드렸어요. 세상에는 장기자랑하듯 사랑받을 수 있는 모습만 꺼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미움받으려고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데 그들 어딘가에는 보라나 신애 같은 부분이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아픔을 숨기고 그런 열정을 상상만 하며 살죠. 그러니까 그런 사건이 내게 닥쳤을 때 느끼게 될 감정은 나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분명히 내 안에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알고야 마는 사람이 있고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죠.
-시나리오를 ‘덥석’ 받지는 않는 편이죠? <피도 눈물도 없이>도 결과물에 비해 애초 시나리오는 두 여배우에 한층 중심을 맞춘 이야기였다고 들었고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와 <스캔들…>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어떠한 부분이 더 표현되면 좋겠다고 의견을 확실히 제시하신 걸로 아는데요.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인물을 어떻게 고쳐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전체적으로 이런 각도로 생각하니까 인물도 이렇게 갔으면 좋겠다는 식이고 그것이 퇴고에 반영되는 거죠. <피도 눈물도 없이>를 저는 사실 멜로드라마로 봤어요. 수진이와 독불이(정재영)의 징글징글한 관계에 꽂혔거든요. 그런데 워낙 인물 많은 분주한 드라마이다 보니 그 부분이 슬쩍 지나간 것 같아요. 제 생각에, 독불이는 수진이를 때리긴 해도 차마 주먹으로는 안 때릴 것이다 같은 디테일이 있었어요. “내가 그렇게 싫으냐, 씨발년” 하는 죽기 전 대사도 너무 좋아 정재영 오빠한테 “딴 건 모르겠지만 그 대사는 꼭 잘해줘” 부탁도 했었죠. <스캔들…>는 제 예상보다 코믹한 요소가 많아, 한쪽에서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숙부인의 모습이 잘 안 보여 속상했어요.
-영화 보면 참 잘 달리세요. ‘운동 중독’에 가까울 만큼 촬영지에서도 열심이라면서요. 운동이 주는 쾌감은 어떤 건가요? =<해피엔드> 끝난 뒤 남들은 다 있는 취미 대신 운동을 시작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눈떠서 해질 때까지 운동만 했어요. 종일 걷고 뛰고 등산하고 헬스클럽 가고 거의 미친 듯이. 땀 흘리는 게 좋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극복해가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워요. 크리스마스이브고 연말연시고 없었어요. 헬스클럽이 쉬면 공원이나 산이라도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몸이 변해서 “몸매 성형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어요. 살을 뺄 목적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자기관리를 아주 잘한 배우가 됐어요. 잘 됐죠.
-<인어공주> 마치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자신이 소진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특별히 한 거라곤 1인2역뿐인데 어쩐지 그냥 내 전부가 바닥난 것 같았죠. 스스로 “넌 이게 다야”라고 사형선고 내리듯 했어요. 누구 하나 “그렇지 않아. 네 안에는 다른 뭔가가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하지만 영화사를 차려서 영화를 만들지 않는 한 해결책은 기다림뿐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주어진 것 안에서만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애거든요 <밀양> 시사회 끝나고 <접속>을 만든 심보경 언니(보경사 대표)랑 통화했는데 “신애는 극단적 모습이 많은 인물인데도 ‘이게 최고다, 더이상은 전도연이 보여줄 게 없다’는 생각보다 ‘전도연한테 더 보여줄 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에 뭉클했어요. 제게 최고의 찬사는 “최고의 연기다”가 아니에요. 너는 이게 끝이 아니라 더 달릴 수 있다, 많은 에너지가 남아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에요. 그날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뒤풀이 자리에서 심하게 달렸죠. (좌중 웃음)
-박흥식 감독과 두 작품(<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포함해 총 아홉명의 감독과 일했습니다. 그중 불편해서, 아니면 편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 경험이 있나요? =정지우 감독님과 작업할 때 무척 좋았어요. <해피엔드>의 연기는 정지우 감독님이 있어서 해낸 것도 많아요. 감독과 대화하며 연기하는 것이 즐거운 작업이라는 걸 정 감독님 통해서 알았어요.
-현장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을 파악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면서요. 궁금한 것도 많고, 스탭 누가 표정이 안 좋으면 붙들고 왜 그러냐고 꼬치꼬치 묻는다면서요? =호기심이 많아요. “스탠바이” 상태인데 저쪽에서 스탭이 행인과 싸우고 있으면 왜 싸우는지 몹시 궁금한 거예요. (웃음)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인가봐요. <너는 내 운명> 면회실 장면의 클라이맥스(스피커를 뜯어내고 은하와 석중이 손을 잡는 대목)에서 감독과 남자배우만 교감하고 시나리오에 없는 상황을 갑자기 연출한 것을 두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예, 겁나 신경질냈죠. (웃음) 제가 모르는 부분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장면 어려운 신인데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알게 되니까, 화가 났어요. 지금도 불만족스러워요. 관객은 모르실지 몰라도 그 장면에서 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하지가 못했어요. 무늬만 절실해 보이고 절실하지 않은 빈틈이 보여요. 남들은 몰라도 제 눈에는 곳곳에 놀고 있는 손이며 디테일이 보여요.
-종합해보면 전도연씨는 대사와 표정의 타이밍까지 연출자가 언급하는 건 싫어하지만, 아예 알아서 하라는 것도 싫어하는 배우 같아요. 감독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받고 그 안에서 잘 해내고 있는지 계속 확인받길 원하죠? 무엇보다 그런 이유에서 <밀양> 현장은 어려웠을 것 같아요. =맞아요. <밀양>은 처음엔 굉장히 괴로웠지만 버리지 못할 거라면 버텨야 하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조감독님 불러다 불평도 하고 그랬는데 아무리 그래도 ‘소귀에 경 읽기’인 거 있죠? 다음날 되면 현장이 바뀌어야 하는데 똑같아요. (좌중 폭소) 사람을 우습게 아나? 혼자 울분 토하고 토라져서 말 안 하고 그러다가 나중엔 그러려니, 긴장을 풀게 됐고, 급기야 진행이 빠른 날은 “웬일이야?” 놀라는 지경이 됐죠.
-선택한 작품에 언제나 자부심이 있다고 확언해왔습니다. 그러나 온갖 이유로 잘못될 수 있는 게 영화잖아요. 작품의 결과는 끝나기 전에는 모르지 않습니까? =좋은 결과가 뭐죠? 관객이 많이 든 영화? 작품성이 높은 영화? 결과를 논하는 게 모호한 시대가 됐어요. 작품이 좋다고 관객이 들지도 않고 그 반대도 성립하지 않아요. <접속> 때만 해도 좋은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가 분명히 구분됐는데 산업이 커지면서 달라졌어요. 영화 찍는 과정이 싫었는데 결과는 좋다고 만족할 수 있을까? 전 아니에요. 제가 일을 사랑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몇 개월씩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을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거든요. 옛날의 저는 현장보다 대중에게 비친 결과에 연연했고 내 일을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일에 애착이 생기면서 달라진 게 그거예요.
“<밀양>은 멈출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요”
-신애라는 여자가 복잡하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받는 순간은, 첫 시퀀스에서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버린 아들을 보고 있다가 왈칵 성을 내는 장면이에요. 술자리에서 갑자기 종찬(송강호)에게 “김 사장님 같은 사람보고 뭐라 그러는 지 알아요? 속물이오”라고 상처를 입힐 때도 복잡한 이면이 보였어요. =어떻게 보면, 신애가 예술가잖아요? (웃음) 나름대로 길만 막히지 않았으면 예술가가 됐을 테니 괴팍한 건지도 모르죠. 평범한 여자는 아니에요.
-교도소에 유괴범을 용서하기 위해 면회를 갔다가 범인이 하나님의 용서를 이미 받았다고 평온하게 말하자 신애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망가뜨려 신의 세계에 흠집을 내는, ‘자해 공갈’ 같은 악행을 벌이는데요. 그 연기의 톤을 잡기 까다롭지 않았나요? 어찌 보면 미친 여자 연기지만 달리 보면 결의에 찬 복수 같기도 하고 또 유치한 퇴행이기도 하니까요. =하늘을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행동했어요. <밀양>은 단락이 분명해요. 밀양에 간다-산다-유괴당한다-용서한다-미친다. 마지막 단락에 들어가며 처음 찍은 것이 저수지에 빠지는 장면이에요. 영화에서는 결국 편집됐는데 그렇게 센 감정부터 찍고 나니-가슴에 손을 얹으며-여기가 정말 편한 거예요. 한번 끝까지 갔다 오니 감정을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밀양>을 보면서 도대체 어디서 멈출지 알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신애를 과연 누가 구해줄지, 무엇이 구해줄지 막막하니까요. 사실 원안이 된 소설 <벌레이야기>는 아이 엄마의 죽음이 결말인데요. 사과 깎는 장면을 보며 여기서 멈추어도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은 잠시 했습니다. =<밀양>은 멈출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거 같아요. 소설 이야기를 하시며 감독님은 여자가 죽는다고 끝이 아닐 것 같다고, 그걸 넘어선 얘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설령 신애가 죽었다 해도 사람들은 계속 살아야 하잖아요. 삶의 일부를 잘라 보여준 거예요. 결론은 저희 영화랑 안 맞아요.
-그런데 신애도 참 엄청나게 자기중심적인 여자예요.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이 자길 주목하고 있을 거라고 믿잖아요. (웃음) =놀라운 사실이 있어요. 독실한 기독교인인 저희 언니에 따르면 처음으로 하나님을 절실히 믿고 기도를 하면 정말 연애하는 것 같대요. 하나님이 정말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고 바라던 일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것 같고…. 그러다 한 시기가 지나면 연애가 그렇듯 약간 시들해져서 상처도 받고. 신애가 별난 게 아니에요.
-알고 보니 하나님과의 멜로드라마도 있는 거군요.(웃음) <접속>과 <내 마음의 풍금>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에서도 긴 머리를 유지해왔잖아요. 애착이 있어 보이는데, 이번에는 영화에서 머리를 잘라서 변화가 불가피했던 건가요?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예쁘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그런데 <밀양>의 머리 자르는 장면을 이틀에 걸쳐 여러 차례 촬영하면서 붙임머리를 넘어 제 머리칼까지 잘려버린 거예요. 그 길이에 맞추다 보니 본래 계획보다 좀더 짧은 머리가 됐죠.
-살아오는 동안 많이 힘이 들어서 자기를 의도적으로 함부로 해본 적이 있나요? =아뇨. 그런 적 없어요.
-실수를 싫어할 것 같아요. 자신의 실수도, 남의 실수도. =맨 정신에선 싫어해요.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해서 심하게 몰아붙이기도 해요. 하지만 술 마시고 하는 실수에는, 사람만 안 죽이면 된다고 (웃음), 관대해요. 술은 전도연 인생의 중요한 요소예요. 전 아주 피곤하게 사는 편인데 술을 마시면 그나마 자신에게 조금 너그러워져요. 술 때문에 다른 세상을 볼 수도 있고 틀에서 벗어난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아요. 와인이랑 소주 좋아해요. 양주는 다 똑같은 줄 알았는데 최근 남편이 코냑을 가르쳐줬어요.
-살다 보면 누구와도 사랑을 새로 시작하지 못할 때가 찾아올까요? =저는 미쳐야 사랑을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미친 사랑 없이는 결혼도 못한다고 믿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격동이 귀찮아지는 거예요. 옛날에는 어떻게 사랑이 귀찮을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젠 이해하는 거죠. 궁극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면 사랑이 전부가 아니고 사람에 대한 믿음이 기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믿음 없이는 사랑도 무책임한 것 같아요.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특별한 행동으로 내게 증명하지 않아도 조용한 믿음이 가는 사람에게서 다른 식의 사랑을 발견하게 됐어요. 아직도 사랑에 미쳐 날뛰는 것만 추구했다면 결혼 못했을 거예요.
-남편은 어떤 작품 속 모습, 어떤 얼굴을 가장 마음에 들어하나요? =제 영화를 거의 안 봤대요. <접속>을 어렴풋이 본 것도 같다나? (웃음)
-<밀양> 보고 연기 많이 늘었다고 그러셨겠어요. (웃음) =연애할 때 한창 <프라하의 연인>을 재방송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도무지 같이 볼 수가 없었어요. “말이 돼? 외교관이 저런다는 게?” 하며 계속 트집을 잡아서. (웃음)
-두분 성격이 비슷한가봐요. =그쪽이 더 급해요. 남자가 여자 호감을 사기 위해 기본적으로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제가 배우니까 처음 만나면 해주는 말들도 있고. 그런데 남편은 그런 말 모두 생략하고 오래 아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너는 이래” 하는 이야기를 대뜸 했어요. 요즘은 저한테 “야, 사람들이 너더러 한국 최고의 여배우래” 그러면서 놀려요. <밀양>은 제가 아내가 아니면 절대 안 볼 영화인 것 같아요. “이렇게 긴 영화 말고, 옛날 TV 쇼 MC 봤던 그런 재밌는 것 좀 가져와봐.” 그런다니까요. (웃음)
-저희끼리는 전도연씨 인터뷰할 기회가 생기면 남자 기자가 담당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야기하곤 해요. 남자를 더 편하게 대하실 거라는 짐작이 있어서. =남자가 더 편하긴 해요. 여배우를 만나면 저는 꼭 여자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남자처럼 당황해요. (웃음)
-여자들은 성인이 된 뒤에도 오랫동안 소녀처럼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경우가 흔해요. 그건 사회가 여자에게 약하고 사랑스럽기를 기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편이 인간관계를 끌고 나가기가 수월한 점도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전도연씨의 애교는 어딘가 ‘여왕의 애교’ 같아요. 애교를 부리더라도 힘을 지닌 자의 애교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여왕의 애교라니! 징그럽다. 전 여자라서 참 좋아요. 여자는 무기가 아주 많아요. 눈물도 있고 애교도 있고. 여자는 당연히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보호받고 싶어요. 남녀는 분명히 각자의 몫이 있다고 생각해요. 존중해주면 누릴 수 있는 게 많은데 뭐하러 월권을 할까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천생 여자라고 여기고 살아왔는데 두 사람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는 필요해서 애교부릴 땐 여자인데 평상시는 남자다.” 쇼크도 받았지만 생각해보니 수긍도 가요.
-인터뷰를 기다리다 불현듯 든 생각인데 혹시 <밀양>까지 마치고 아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은 한 적 없나요? =자꾸 더, 더, 더를 외치다 보면 끝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했으니, 이젠 한국에선 할 게 없고 해외로 뻗어나가야지’ 하는 식의 생각은 전혀 없어요. 커졌을 때 작은 것으로 돌아갈 줄 알아야 또다시 큰 모습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결혼하고 집에서 드라마도 많이 봤는데, “난 이제 저런 애틋한 사랑을 할 수 없는 건가?” 하는 사뭇 서글퍼지면서 드라마를 해서 대리만족을 느껴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좌중 웃음) 다음엔 더 작품성 높은 것, 큰 것, 대단한 것을 하겠다는 생각 없어요.그런 식이 되면 곧 한계에 부딪힐 것 같아 싫어요. 왜냐면 저는 굉장히 오래하고 싶거든요.
-예전엔 달랐잖아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어요? =그러게요. 결혼하면 일을 왜 하나 했는데. 일이 없으면 내게 뭐가 남을까 생각해보니 많이 힘들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난 사랑과 일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은 일도 사랑도 내 일부인데, 이거 아니면 그거여야 한다고 고집하는 건 내 삶을 깎아먹고 병들게 하는 짓인 것 같아요. 신애처럼 하나의 꿈이 꺾였으니 내 인생은 이제 가정뿐이라고 단정한다면 가정이 무너졌을 때 설 데가 없는 거잖아요. 나는 나대로 존재하고, 다른 모든 건 내 일부에 불과하다고 여기고 싶어요.
-연기보다 사랑보다 살아남고, 살아가는 것이 최고로 중요하다는 말이죠? =그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