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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식 로맨틱코미디 <전투의 매너>
문석 2008-04-16

90년대식 로맨틱코미디의 무기력한 부활

아침밥을 먹을 때 남자는 순댓국을 즐기지만 여자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TV를 틀면 남자는 이종격투기를 뚫어져라 보지만 여자는 <가족의 탄생> 같은 영화를 보고 싶어한다. 이토록 지극히 다른 취향과 지향을 가졌지만 돌발적인 하룻밤 이후 엮이게 된 남과 여는 섹스 하나에서만큼은 통하는 면을 갖고 있다. <전투의 매너>의 주인공인 시각디자이너 지우(서유정)와 가전제품 대리점 직원 재호(강경준)는, 최소한 90년대 초반 이후 한국 로맨틱코미디에선 낯선 존재들이 아니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남녀가 때로는 질펀한 관계를 즐기고, 때로는 티격태격하면서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투의 매너>는 그리 신선하지 않다. 게다가 지우가 재호에게 끌리는 이유는 도무지 종잡기 어렵다. 예술적 감수성을 품고 있는 그녀가 사타구니 가운데를 가리키며 “이 다리는 다리 아닌가?”라고 허접하게 말하는 그에게 애정을 갖게 되는 데는 어떤 설명이 필요할 법한데, 영화는 이런 과정은 무시한 채 서로의 취향과 감성이 뒤섞이는 과정만 보여준다. 상대방에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버린 남녀가 그 뒤에 취하는 행동도 그동안의 로맨틱코미디에서 봐온 것과 비슷하다. 후반부의 섬세한 감성이 가슴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전형적 구도 탓일 게다.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 등에서 3류 인생들의 비루한 꿈을 설득력있게 묘사했던 장항준 감독의 본령이 궁금하다면 비슷한 시기에 연출해 4월25일 OCN을 통해 선보이는 <음란한 사회>를 시청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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