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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그 없으면 한국영화 미래없다”
2001-11-16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참석자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고양이를 부탁해> 제작

이은 명필름 이사·<와이키키 브라더스> 제작·영화진흥위원회 위원

최용배 시네마서비스 이사·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 위원장

장소 한겨레신문사 5층 회의실

일시 11월7일 오후 4시

과연 비주류 영화가 시장에서 살아남는 길은 없는가? <고양이를 부탁해>와 <나비>의 흥행참패에 이어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라이방>이 거둔 흥행성적이 냉혹한 시장의 논리를 다시 확인시킨 가운데 <씨네21>은 이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김소영(영상원 교수)씨와 김혜준(영진위 정책실장)씨의 제언을 연재했다. 긴급제언을 통해 김소영 교수는 한국영화 최소상영일수 보장을, 김혜준 실장은 전용관 설립 등 각종 저예산영화 지원책을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를 만든 제작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극장의 이해관계를 누구보다 잘 아는 메이저 영화사의 배급 담당자는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한자리에 모인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제작자 이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제작자 오기민, 시네마서비스의 배급 담당 이사 최용배씨는 작은 영화의 생존법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은 “지금 한국영화는 시장활성화 단계를 지나 다양성의 확보가 절박한 시점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의 국적이 아니라 스펙트럼에 주목해야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

씨네21: <고양이를 부탁해>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일련의 ‘작은’ 영화들이 흥행에 참패한 데 이어 지난 주말에는 <라이방>이 고배를 들었다. 이 자리에서는 <고양이…> <와이키키…>를 제작하면서 경험한 문제점과 함께 비주류 영화들의 유통, 배급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했으면 한다.

⇒ 최용배(이하 최): 일단은 기획단계에서 어떤 흥행 전망을 갖고 착수했는지 궁금하다. 배급도 영화의 목표에 맞춰 조정되는 문제니까.

⇒ 오기민(이하 오): <고양이…>는 창립작품인 만큼 처음부터 시장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기는 어려웠다. 최고로 잘되면 서울 10만 관객까지 봤지만, 7만명 정도가 이치에 닿는 스코어라고 봤고 그렇다면 투자사, 제작사가 반분할 때 그리 큰 부담이 아닌 3억원가량의 손해를 볼 거라는 소박한 생각을 했다. 이런 큰 손해는 차마 예상 못했다.

⇒ 이은(이하 이): <박하사탕> 같은 영화로 드러난 명계남 이스트필름 대표의 이상주의에 내 자신의 이상주의가 자극받은 경우다. <공동경비구역 JSA>도 <해피엔드>도 만들어보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다양하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투자하는 쪽에서는 수익률부터 보겠지만, 감독과 관객의 다양한 요구 안에서 투자자의 수지도 맞추면서 타당한 이야기를 만들어가지 않는다면 제작자의 일이라는 것이 허망하다. 스타가 나오는 장르영화라 풀기 쉬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상주의적인 어려운 작품도 있다. <와이키키…>는 보편적인 삶을 다루는 폭넓은 이야기인 만큼 흥행의 저력도 있으리라 기대했다.

⇒ 오: 그래도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와이키키…>가 일등이다. 근데 그 얘기, 우리 영화는 좁은 이야기라는 말로 들리네. 스케일면에서는 굉장하다. 공항도 나오고. (일동 웃음)

⇒ 이: 임순례 감독을 도와 영화를 힘있게 만들려고 노력했고 <섬> 때 이른 개봉 탓에 홍보에 최선을 못 다한 아쉬움이 있어서 국제영화제 성과들을 기다렸다가 과거 <아름다운 시절>이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같은 성과를 거두어보려는 생각이 있었다. 그냥 헝그리하고 간절히 바라고 각종 프로모션도 열심히 하면 진심이 통해서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한 거다. 그래서 <와이키키…> 개봉 직전 ‘어려운 영화들’ 좌담을 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아니 <와이키키…> 터질지도 모르는데…” 하며 시큰둥했다. 일단 잘되면 미안해서 참석못하고 안 되면 좌절해서 어느 시골에 처박혀 있을 테니 또 못 올 테고. 그런데 막상 성적을 받고 보니 동병상련이더라고. (웃음)

씨네21: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얘기해보자. <아름다운 시절>이나 <박하사탕> 같은 영화가 선전한 때와 비교했을 때 영화시장이 변한 것인가.

⇒ 이: 잘 모르겠다. 얼마 전만 해도 한 영화를 걸면 2주일은 간다는 분위기가 있지 않았나. 최근 경향은 주말 성적이 나쁘면 사흘 만에도 자르고 일주일 지나면 주르륵 떨어지고, 물량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정말 철저하게 수익률 중심으로 가는 것 같다. 실제로 시장이 변한 것인지.

⇒ 최: 스크린 수가 늘어난 까닭도 있지 않을까. 1차적으로 영화를 주류영화와 스타없는 작은 영화들로 구분하면 지난해 영화 중 <박하사탕> <오! 수정>, 같은 범주에 넣기 좀 애매하지만 <자카르타> 같은 영화들이 후자가 될 터다. 이런 부류 영화들의 올해 흥행 성적이 전년도에 비해 더 저조하다는데 내가 볼 땐 그리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상대적 문제일 수도 있다. 예년에 2∼3편에 그쳤다면 올해는 그처럼 호평받는 영화 수가 많아진 것 같다.

⇒ 오: 몇몇 영화를 제외하면 올해는 평단에서 호평받은 영화들이 하반기에 집중됐다. 예전 같으면 100만명 넘는 영화가 한해 한두편이었는데, 올해는 몇백만명 넘는 영화가 몇편씩 쏟아지면서 시장 자체를 포화상태로 몰고 갔다. <고양이…> 같은 영화랑 오락영화 보는 관객이 따로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 보는 인구가 급작스레 기하급수로 늘어날 리 없다면, 즉 일인당 1년에 관람하는 영화가 3, 4편이라면 이미 그 수치가 소화가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 이: 과거 한국영화는 흥행과 비평을 다 잡는 것이 포괄적인 목표였고 그런 가운데 <박하사탕>이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처럼 화제의 성공작이 나왔다. 그런데 올해는 코드 마케팅을 내세운 기획영화들이 주류를 형성하면서 <눈물> <수취인불명> <소름> <나비> <고양이…> <와이키키…> <꽃섬> <라이방> 등 영화제에 초청받고 마니아도 형성된 자신감 있는 영화들이 줄줄이 나왔는데 발디딜 틈이 없는 것이다. 분명한 건 올해 이중 어느 작품도 자금을 회수할 수 없다면, 그래서 투자가 끊기고 라인업에서 이런 영화들이 모조리 빠진다면, 결코 한국영화가 오래 못 간다는 사실이다.

⇒ 오: <라이방>의 주말 이틀 성적이 1600명이라는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실 이런 현상에 대해 평단, 학계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글이 나와야 하는데 산업적 면에서는 너무 굵은 줄기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고 있다. 궤적만 짚을 뿐 현상을 평가하는 논의는 없다. 사실 <고양이…>나 <와이키키…>만한 언론, 평단의 호응이면 예전 같아선 적어도 5만명 정도의 흥행은 담보됐다. 그러나 올해는 그런 보장이 없어졌다. 흥행이 되면 작품성까지 인정받고 모든 것이 칭찬받고 용서받고 화제가 되는 분위기가 오랫동안 있었다. 문학이 그랬듯 영화도 평론이 무덤을 판 게 아닐까.

⇒ 최: 기사와 평론의 영향력이 줄어든 데에는 영화마케팅과 관객이 직접 접촉하는 미디어가 늘어난 탓이 크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기사를 영화선택의 근거로 삼지 않고 직접 판단하는 관객이 늘면서 매체의 중간자 역할이 축소된 거다.

⇒ 이: 매체가 많아지면서 물량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잡지도 잡지 생존을 위해 스타가 나오는 영화에 집중하고, 영화 만드는 사람은 다시 그 매체들에 의존해야 한다. 관객이 돈을 내서 영화산업을 유지시키고 매체는 정당한 리뷰를 하고 제작자는 크리에이티브를 발굴해야 하는데 다른 산업처럼 영화도 자본이 주인이 되고 모두가 소외됐다. 조금 벗어나 보면 할리우드에 다 내줬던 시장을 이제는 한국영화가 점유하게 된 거다. 그러나 우리 편이 60% 차지했다고 철없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한국영화의 총체적 건강상태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주류를 뺀 다양한 외국영화, 우리가 만든 부류의 영화들, 그리고 우리보다 더 작은 예산의 영화들, 단편영화들을 볼 기회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것은 우리가 맞닥뜨린 여러 고민 중 유통문제와 직접 관련된다. 그런 면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씨네21: 아무래도 이야기의 초점은 배급에 집중된다. 작은 영화들이 유통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 최: 일단 전제를 정확히 했으면 좋겠다. 배급이- 투자 결정단계를 뺀 좁은 의미의 배급- 잘될 영화를 망하게 하고 안 될 영화를 잘되게 할 수는 없다. 다만 수익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타인의 취향> 같은 단편적 예를 통해 대안으로 자주 거론되는 단관 개봉, 축소 개봉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이다. 물론 배급에서 시기와 규모의 적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두개관 개봉 등을 말하는 것은 과하다. 우선 <와이키키…>와 <고양이…>의 경우 15억원 이상 투입된 영화다. 축소 개봉했어야 한다는 것은 결과론이고 개봉 앞둔 상황에서는 그런 판단을 하지 않았을 거다. 둘째로 씨네큐브, 하이퍼텍 나다가 단관개봉을 실행하고 있지만 그중 10만명 넘는 영화는 없었고 5만명이 넘는 작품도 일년에 두편 안팎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오: 의견이 좀 다르다. 문화경제적 측면에서 각기 다양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들이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문제이다. 축소 개봉은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지금 만약 누군가 3, 4개관 개봉을 첫 시도한다면 분명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흐르고 몇 작품이 같은 식으로 개봉되면 나름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 최: 기본적인 취지는 동의한다. 구분도 필요하다고 본다.

⇒ 오: <고양이…>는 극장을 줄여서 개봉하려 했다. 그런데 회사 내부에서도 투자사와 배급사에서도 가급적이면 확대를 원했다. “흥행을 누가 알아? 열어봐야 알지” 하는 분위기였다.

⇒ 최: 내 판단으로는 극장을 줄이는 것보다 늘리는 것이 절대 관객 수는 많이 들었을 것이다.

⇒ 오: 스타식스 정동 단관상영을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고양이…>는 지금까지 서울에서 2만2천명이 들었다. 정동은 첫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상영했는데 그 스코어가 7500명이다. 몇몇 영화가 이런 식의 배급을 성공한다면 ‘마이너리그’가 형성될 수 있지 않겠나. 정동의 경우 같은 광화문지역 아트큐브에서 영화를 틀면서 관객을 나눠가졌는데도 좋은 성적이 나왔는데, 만약 서울의 동서남북을 나누어 4개관 정도를 유지한다면 희망이 있다. 극장 이미지가 정립되고 이런 영화는 어느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인지도가 생기면 해볼 만하다.

⇒ 최: 맞다. 만약 스타식스에서 7500명이 들었다면 다음에도 같은 색깔의 영화를 하고자 할 것이다.

⇒ 이: 그런 면에서 차별화된 극장이나 체인을 만드는 방법론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시장조건에서는 무조건 많이 벌여야 관객 수가 많아진다. 현실이 변하려면 시네마서비스 같은 회사가 메이저리그와 함께 마이너리그도 운영하는 일이 가능해야 한다. 최대 문제는 우리에겐 메이저리그 하나뿐이라는 거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 아마추어 동호회가 공존해야 건강한 것 아닌가. 지금 우리는 부담없이 투수하고 포수하다 메이저리그에 가서 최고로 잘하는 선수들과 붙은 거나 마찬가지다.

⇒ 오: 고민스러운 점은 극장도 어차피 수익을 바라고 존재하는 곳인데 아트큐브와 같은 선도적인 예를 젖혀두면 다른 극장과는 어떻게 이야기를 풀 것인가, 이다.

⇒ 이: 옛날에 공상을 일삼을 때는 제작사나 배급사가 이런 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할 수 없을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예술영화 배급을 경험한 이광모 감독과 의논해보니 굉장히 비관적인 반응이었다. 안 그래도 예술영화라는 이미지 때문에 시장경쟁력이 떨어지는데 그것만 전문으로 한다고 내세우면 피해가 클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예술영화하는 사람’이 모여서 배급하고 극장한다는 발상은 거꾸로 된 접근법이다. 메이저 배급사도 씨네큐브 같은 극장이 몇개 존재하고 시장이 있을 때 이런 영화의 배급을 시도할 수 있지 예술영화만 대놓고 배급할 수는 없다.

⇒ 오: 문제는 그 전제가 되는 ‘씨네큐브 같은 몇개의 극장들’을 어떻게 존재하게 할까, 이다.

⇒ 이: 우리가 그 필요를 절박하게 느낀다면 그런 극장이 생기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일단은 해당되는 영화들이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에는 시장에서 풀지 못하고 있는 보석 같은 외화들도 있다. 전부 메이저리그로 가서 일주일 붙고 쓰러지고 있다.

⇒ 오: 그간 단관개봉, 전용관 등의 논의가 잠복해 있다가 <고양이…> <와이키키…>가 기대 이상으로(?) 실패하면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는 다른 대안은 이동로드쇼다. <고양이…> 같은 영화 개봉하면서 전국 관객을 대상으로 “이번주에 개봉하니 다 와서 보라”는 건 비효율적이다. 서울 등 5개 도시에서 개봉을 하고 성과를 보아 확대 개봉을 하는 것이다. <고양이…>는 상영이 하도 일찍 끝나 벌써 극장부금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액수가 어느 지역은 30만원, 어느 지역은 70만원 이런 식이다. 이래서는 프린트 비용도 안 나온다. 전용관, 축소상영, 이동로드쇼, 부금 비율 조절 등의 방안이 좀더 세밀히 조사, 연구돼야 한다. ▶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1)

▶ 비주류 영화만의 배급 시스템 마련 위한 제작 · 배급업자 3인의 난상토론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