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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미학 에세이] 피에타라는 도상에 관하여
진중권(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2-09-28

영화 <피에타>의 포스터 이미지에 붙이는 주석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영화의 포스터는 제목에 충실하게 고전적 피에타의 도상을 반복한다. 아마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498~99)의 시각적 인용이리라.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상태라, ‘피에타’라는 제재가 영화에서 어떻게 재해석되는지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영화에 대한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피에타’라는 기독교 도상에 대해서 살펴보자.

피에타의 역사

우리에게는 ‘피에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기독교 미술에서 이 제재는 원래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의 전통이었다. 독일에서는 이런 조각상을 ‘베스퍼빌트’(Vesperbild)라 불렀다. ‘vesper’가 라틴어로 저녁이라는 뜻이니, 아마도 수도원에서 일몰 기도를 드리는 데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조각상을 가리키는 말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그 앞에서 기도를 할 목적으로 제작한 조각상을 독일에서는 ‘묵도상’(Andachtsbild)이라 부른다.

이 제재가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298년 문헌에 이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13세기경에는 이 장르가 이미 존재했을 것이다. 사실 내게 가장 갚은 인상을 남긴 피에타 역시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의 것이 아니라, 14세기 독일의 어느 지방에서 제작된 피에타였다. 아직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시기라, 현대의 예술작품처럼 성모와 예수의 신체가 표현주의적으로 왜곡돼 있었다.

14~15세기에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베스퍼빌트는 알프스 가도를 통해 이탈리아로 전해진다. 이탈리아에서 베스퍼빌트는 ‘피에타’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동정, 자비, 연민이라는 뜻으로 영어의 ‘pity’에 해당한다. 하지만 15세기 말 미켈란젤로가 이 제재를 택했을 때, 이탈리아에서 피에타는 아직 도상학적으로 낯선 모티브였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라는 거장의 손을 거치면서 ‘피에타’는 종교예술의 대표적 도상으로 떠오른다.

중세인의 상상력

하지만 이 도상에 성서적 근거는 없다. 예수의 시신을 수습한 것은 마리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마태복음 27: 57~61)

다른 복음서들- 마가복음(15:43~47), 누가복음(23:51~53), 요한복음(19:38~42)- 을 뒤져보아도, 성모가 죽은 아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슬퍼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이 모티브는 중세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긴, 그 어떤 어머니라도 제 자식이 죽었다면, 묻기 전에 그 시신을 한번은 안아보지 않을까? 한마디로 그들은 성경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스토리의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웠던 것이다.

수용미학적 독해라고 할까? 수용미학에 따르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이다. 즉 작품은 사건의 얼개만 제시하고, 거기에 살을 붙이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것. 가령 소설에서는 그냥 ‘잔’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것을 영화화할 경우 그 잔의 크기와 모양과 색깔을 구체적으로 표상해야 할 거다. 이를 “현상학적 구체화”라고 한다. 중세인들은 성서에서 예수수난의 대목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한편의 영화를 돌렸을 거다.

“예수의 수난을 묵상합시다.” 교회나 수도원에서 묵상을 할 때 신도나 수도승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그 묵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경에 문자로 기록된 추상적 사실을- 현상학적 구체화를 통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처럼 생생하게 떠올리는 일이었을 거다. 묵도상(Andachtsbild)이 필요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묵상 속에서 신도들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슬픔 속으로 감정이입했을 거다.

기독교 미술에서 성모의 슬픔을 형상화한 도상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서 있는 성모’(stabat mater)다. 이는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 아래 서서 슬퍼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아마도 예수의 십자가형을 다룬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모티브다. 마리아의 맞은편에는 물론 예수가 가장 사랑했으며, 죽어가면서 제 어머니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던 제자, 사도 요한이 서 있다.

둘째는 ‘비애의 성모’(mater dolorosa)다. 가톨릭교회는 성모의 수난을 일곱 가지로 묶어 그 슬픔을 묵상하라고 권한다. 가령 시므온이 아기 예수의 장래를 예언했을 때,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야 했을 때,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잃어버렸을 때,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가는 아들을 만났을 때, 예수의 시신을 받아안았을 때, 그리고 예수의 시신을 무덤에 매장할 때. ‘비애의 승모’는 이를 조형의 수단으로 형상화한 제재다.

셋째는 ‘피에타’(pieta)다. 사실 피에타는 ‘비애의 성모’의 여섯 번째 제재, 즉 성모가 예수의 시신을 받아안은 장면에 해당한다. 하지만 피에타와 비애의 성모 사이에는 조그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조그만 차이가 예술적 효과라는 면에서는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피에타는 주변 인물을 배제하고 오직 예수와 성모만을 고립해 묘사한다. 이는 예술적으로 탁월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때 성모는 훨씬 더 고독해 보이기 때문이다.

도상의 유형

피에타의 도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시신의 자세에 따라, 수평형과 수직형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수평형은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무릎에 수평으로 안은 자세다. 이 경우 예수의 머리와 다리는 성모의 몸 밖으로 벗어나게 된다. 수직형은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수직으로 안은 자세다. 이 경우 예수의 머리가 무릎에 오고, 신체는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가 될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것은 물론 수평형에 속한다.

미켈란젤로의 영향일까? 한때 사라지는 듯했던 이 도상은 화려하게 부활하여 바로크 시대까지 기독교 미술의 대표적 모티브가 된다. 아들을 잃은 어미의 슬픔은 보편적인 것이기에,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잃은 다음에도 이 제재만은 사라지지 않고 세속적 맥락에서 재해석되어 계속 목숨을 이어나간다. 가령 영화 <피에타>의 포스터도 결국 종교와는 전혀 다른 세속적 맥락에서 종교예술의 정서적 호소력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각적 인용 중에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하나는 동성애자들의 삶과 죽음을 전통적 기독교 미술의 도상으로 표현한 어느 북구 사진작가의 연작이다. 가령 게이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고 친구들의 축하를 받는 장면은 동방 박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장면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피에타의 도상은 물론 ‘에이즈로 사망한 아들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어머니’를 표현하는 데에 사용된다.

중세의 그 강렬한 종교적 감정에 필적할 만한 현대의 피에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케테 콜비츠의 <어머니와 죽은 아들>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것과 달리, 그녀의 피에타는 수직형이다. 그녀가 잃은 것은 한 이름과 두 아이. 그녀는 1차대전으로 아들 페터를 잃고, 2차대전에선 그 아들의 이름을 주었던 손자마저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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