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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용] 한국영화 제작은 우리의 핵심 화두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5-06-03

백두대간 최낙용 부사장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 한편이 창출하는 수익이 자동차 수출 수익과 맞먹는다는 이유로 문화 지원 정책이 들썩이던 그해 영화사 백두대간도 창업했다. 창립 작품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유작인 143분짜리 영화 <희생>(1986)이었다. 지구 종말의 가운데,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아이의 이미지를 그린 마지막 장면을 보는 ‘신성한’ 관람 이행을 위해 관객들은 이 생소한 영화를 보고 또 보며 괴로워(?)했다. <희생>을 보지 않고 영화를 말할 수 없었고, 영화를 보지 않고 문화를 말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예술영화라는 말, 그 관객층의 태동을 가져온 상징적 작품 <희생>이 백두대간 21주년 기념 영화제 ‘20+1 Film Festival’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21년 만에 35mm 필름으로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다시 상영된다. 백두대간에서 제작한 <아름다운 시절>(1998)의 조감독으로 초창기인 1997년부터 백두대간에 몸담아온 최낙용 부사장을 만나 백두대간의 지난 21년을 되돌아보았다. 이는 곧 현재의 예술영화 시장의 환경 변화를 짚어내는 인터뷰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21주년 기념 영화제가 내일(5월21일)부터 일주일간 시작된다. 20주년이 아니고 21주년을 강조하게 된 의미는 무엇인가.

=지난해 20주년 영화제를 보류했었다. 지금의 예술영화가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목소리를 낼 만큼 잘해왔나, 자책이 들더라. 미래에 무엇을 할지 정의가 되지 않는데 과거를 돌아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한동안 반성했다. 21주년 영화제는 지난해 가졌던 그런 고민을 토대로 새롭게 출발을 다지는 기념식이다.

-영화제 프로그램 기획에 일반 관객으로 구성된 ‘모모 큐레이터’들이 참여했다.

=모모 큐레이터는 관객이 영화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2010년부터 시작한 우리만의 프로그램이다. 미술관에서 큐레이터가 기획의 주체인 것처럼 관객에게도 그런 이름을 부여해주었다. 영화관을 운영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을 없애준다면 보다 바람직한 극장문화가 확립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매년 15명을 선정해 지금은 30명 정도가 활동하는데, 영화에 관심 있는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대학생, 교수, 디자이너, 공인노무사 등 다양한 이들이 큐레이터로 참여하고 있다. 그들이 이번 영화제 상영작 21편을 선정하고, 상영시간표를 만들었다. 내부 직원들은 그간의 영화제 실무 경험을 공유하는 역할만 했다.

-개막작 <희생>을 시작으로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1998), 베르너 헤어초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1972),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1998) 등 그간 백두대간이 수입•배급해 화제를 모은 주요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워낙 작품이 많아 선정이라기보다는 덜어내는 고통이 컸을 것 같다.

=지난 20년간 230편의 작품을 수입•배급해왔는데 그중 관객에게 가장 사랑받은 작품, 의미 있는 작품이 선정되었다. 개막작 <희생>은 큐레이터들과 바로 의견 일치를 봤다. 키아로스타미,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 등 거의 전작을 수입•배급해온 감독들 같은 경우 그중 하나를 꼽는 일이 정말 힘들더라. 가령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안개 속의 풍경>(1988)은 그 감독의 최고작이 아닐 수 있지만 ‘가장 보고 싶은 영화’라는 기준에는 부합했다. 필름으로 봐야만 살아나는 그 습하고 아련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가장 최근 개봉한 누리 빌게 세일란의 <윈터 슬립>(2014)만 디지털 상영이고 나머지는 필름 상영이다. 관객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자, 이는 지금 영화의 지형도 변화를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창작도 배급도 필름으로 하지 않는 시대다. 선정된 20편은 그 시대의 마스터피스를 필름으로 다시 볼 수 있다는 의미가 크다. 폐막작으로 <윈터 슬립>을 선정한 이유는, 이 작품이 지금 예술영화의 지형도에서 가장 본령에 가까운 영화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래서 ‘+1’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정의하는 예술영화의 근본을 되새김하고 싶었다.

-<희생>이 대한민국 예술영화 시장에서 가지는 상징성은 절대적이었다.<희생>을 시작으로 예술영화 관객이 형성되고, 예술영화라는 개념이 확립됐다.

=1994년 우리가 <희생>을 수입하던 당시, 예술영화는 비디오나 학교에서의 대안상영으로만 소비되던 영역이었다. 예술영화에 대한 인식이나 준비가 되지 않았던 때 백두대간이 그 문화를 소개하는 일정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보면 그 당시의 열풍은 한 시대가 만들어낸 현상이었다. 당시의 <씨네21>도 단순히 ‘잡지’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였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정치가 관심사였다면, ‘소련’이 무너지면서 세계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다. 새로운 것에 대한 대중의 열망이 생겨났고, 그 타깃이 이제 정치가 아닌 문화가 됐다. 그 중심에 예술영화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희생>을 보기 위해 개봉 당시 한국 최초의 예술영화 전용관인 동숭씨네마텍에 몰려든 인파가 기사화됐었다. 영화사적으로 난해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영화인데, 당시 관람객 수가 2만5천명으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희생>을 많이 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지금의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이상 열기다.

=어젯밤 테스트 때문에 극장에서 다시 <희생>을 봤다. 예전에는 우리 모두 <희생>을 보다가 얼마나 잤느냐를 서로 토로하지 않았나. (웃음) 나도 그때는 마찬가지 경험을 한 관객이었는데, 어제는 그리 힘들지 않더라. 20년 전 새롭고 생소했던 <희생>의 영화언어, 담고자 했던 주제들이 이제는 익숙한 언어로 이해되는 게 아닐까 싶다. 당시 나는 입사 전이긴 했지만, 회사에서 공유되는 분위기를 전하자면 <희생>을 수입•배급하는 건 흥행을 떠나 상당히 조심스러운 시도였다고 한다. 한국에서 그만큼 소화하기 어려운 작품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 시절로부터 2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정말 다양한 영화를 만났고 다양한 영화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지금의 <님포매니악>(2013) 시리즈 같은 작품을 당시에 상영한다고 가정한다면, 꽤 힘들지 않았을까. 예상을 뛰어넘어 성공한 <희생>은 결국 백두대간의 향후 행보를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자신감과 전략을 제시해준 운명 같은 영화였다.

-가장 최근 개봉작인 <윈터 슬립>의 흥행 성적이 저조한 편이다. 흥행하는 예술영화는 분명 따로 있다. ‘다양성영화’로 편입된 지난 20년의 예술영화의 변화도 존재한다.

=지금은 영화 배급의 지형도와 마케팅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주류 상업영화 시장이 한계에 봉착하고 다른 틈새시장이 필요해지면서 생긴 변화다. 주류영화 중 규모가 작은 영화가 다양성영화라는 이름으로 극장에 들어와 주류영화와 예술영화의 양쪽 수익을 모두 가져간다. 언론에서는 그걸 ‘아트버스터’라는 이름으로 명명한다. 예술영화의 창작, 배급, 상영에 이같은 분위기가 도움을 주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점검해봐야 한다. 이번 영화제 때 그 일환으로 ‘예술영화, 다양성의 꿈을 꾸는가?’라는 제목의 포럼을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일권(시네마 달 대표),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발제자로 참여한다. <희생>에서 시작해 지난해 개봉한 <비긴 어게인>(2013)의 340만 관객이 형성되기까지, 한국에서 예술영화의 개념과 시장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

-예술영화의 정의와 범위가 이전과 달라진 만큼 그에 따른 대안도 필요할 것 같다. 다양성영화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소규모 수입사들의 수입 과열 경쟁도 심해지고, 수입사간의 정체성도 불분명해지고 있다. 달라진 분위기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할 텐데.

=꾸준히 길을 걸어온 수입사들과 달리 반짝 수익을 위해 몇년에 한 작품만 하는 개인 업체들도 많아졌다. 잠깐 치고 들어와 가격만 올리는 이들이 작품을 가져가는 경우도 많다. 우리만 해도 오랜 해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라면 한계가 있다. 5만달러에 거래되는 영화를 누군가 10만달러를 주고 산다고 하면 어느 누가 거부하겠나. 과열 경쟁으로 수입가가 높아지면 그 투자를 충당하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게 되고 배급도 확장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예술영화를 보는 관객으로는 유지가 턱없이 힘들고 일반 관객도 필요해진다. 결국 예술영화 고유의 시장이 형성되지 않고, 다른 니치마켓이 필요해지는 거다. 일본의 예술영화 수입 업체들의 경우, 그들은 업체들끼리 과도한 경쟁을 하지 않도록 암묵적으로 순서를 정한다고 한다. 예술영화 시장 수익이 일정 이상은 갈 수 없다는 걸 알고 가격이 부풀려지지 않도록 그들끼리 일정의 자정작용을 마련한 것이다. 더불어 영화를 수입하는 전문가들을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위해 물건을 사고파는 ‘업자’들로 지칭하고 바라보는 시선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간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지점에서 행정•정책적 지원이 중요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올 초 ‘예술영화유통배급지원사업’의 일환으로 그들이 선정한 위탁기구에서 연간 26편의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위탁기구가 프로그램을 선정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 위탁기구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있을까. 사전 검열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있지만 아직 답변이 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도 예술영화를 위한 어떤 지원 정책이 필요한지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극장 운영도 백두대간의 주요 사업이다. 씨네큐브에 이어 2008년부터 아트하우스 모모를 운영하고 있다.

=예술영화관 수익 구조는 일반 영화관과 다르다. 티켓 판매 수익 외에도 매점, 광고 등의 수익이 보장되는 상업영화관과 달리 우리는 티켓 판매 수익에 의존하는데 그 수익마저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적절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내느냐가 오랜 고민이었다. 아트하우스 모모로 오면서, 직원 한명이 1인2역을 하는 구조로 운영을 감당해왔다. 회계 담당이 프로그래머로, 영사 담당이 티켓 판매까지 맡는 것이다. 아트나인을 비롯한 작은 극장들의 상황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영화관에 대한 지원정책이 그래서 시급하다. 시설 노후화를 빌미로 지원을 중단할 것이 아니라 운영 노하우와 인프라가 있는 오래된 극장들을 살릴 수 있는 지원을 하도록 정책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

-올해는 영화사 백두대간의 새로운 원년이기도 하다. 한동안 주춤했던 한국영화 제작에 대한 계획도 궁금하다.

=‘백두대간’이 한반도의 혈이다. 회사 이름을 세계에 우뚝 서는 한국영화를 만들자는 의미로 그렇게 지었다. 단순한 상업영화가 아니라 영화적 완성도를 가지고 새로운 영화를 해보자는 의지에서였다. 이런 장기 플랜 아래, 한국에도 완성도 있는 영화를 소비할 관객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수입•배급 사업도 시작했다. 결국 한국영화 제작은 우리의 핵심 화두다. 1998년 <아름다운 시절>이 작품성을 평가받고 시장에 반향을 일으키며 그 계획에 부합했지만, 이후 여러 사안이 겹치면서 제작이 잘 안 됐다. 이제는 더 미루지 못하는 단계다. 내년에는 확실히 들어간다는 목표로 이광모 감독이 제작쪽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콘텐츠진흥원에서 시나리오 대상을 받은 작품이 진행 중이고, 따로 시나리오 개발 중인 작품도 두편 더 있다. 매년 두 작품 이상은 한국영화를 선보이는 게 목표다. 21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가장 큰 과제다. 1990년대,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던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의기투합해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그 목표를 점검하고 반성하면서 발전적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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