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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포맷 통한 스토리텔링을 계속해가겠다”
장영엽 사진 백종헌 2016-04-14

<날, 보러와요> 이철하 감독

한때 충무로의 재능 있는 신인감독으로 주목받았던 이철하 감독은 안타깝게도 꽤 오랫동안 잊혀진 이름이었다. 문근영, 김주혁이 주연을 맡은 <사랑따윈 필요없어>(2006)와 <스토리 오브 와인>(2008), <폐가>(2010) 등을 연출했지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영화감독으로서의 앞날을 고민하던 그는 지난 2010년, 산티아고의 800km 순례길을 걷고 온 뒤 변했다. 한 여자가 백주에 아무도 모르게 납치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사건을 다룬 <날, 보러와요>는 그런 이철하 감독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첫 작품이다.

-시사회 전날 밤, 자비에 돌란의 <마미>를 다시 봤다고.

=잠이 안 와서. 영화를 보며 밤을 새웠다. 글쎄, 왜 <마미>를 다시 보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원래 액션영화, 블록버스터영화보다는 그런 느낌의 작품을 좋아한다. 친한 제작자는 제발 마이너한 느낌의 이야기, 휴머니즘 드라마 그만 좀 좋아하고, 심플하고 직선적인 영화를 해보라고도 하지만. (웃음)

-<폐가> 이후 장편영화로는 6년 만에 복귀하는 거다. 그사이 <안녕?! 오케스트라>(2013)가 있긴 했지만 이 작품은 TV다큐멘터리의 극장판이었으니까.

=사적인 얘기지만, 2010년 당시 생활이 좀 어려워졌었다. ‘BreadFit’란 베이커리를 오픈한 것도 그때였고. 마음이 복잡하더라. 내가 영화감독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생각도 있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가게를 열었지만 과연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때 제작사 오에이엘의 김윤미 대표를 만났다. <폐가> 후반작업 때 나를 찾아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 그래서 헌팅차 산티아고에 갔는데 길이 너무 좋아 800km를 쭉 걸었다. 그 길에서는 걷는 것과 생각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다. 그 길을 걸었던 게 일종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해보자는 결심을 길 위에서 했다.

-그런데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날, 보러와요>를 만들었다.

=그것도 운명인 것 같다. 산티아고 프로젝트로 투자받기가 쉽지 않더라. 그러다가 3, 4년 뒤 김윤미 대표를 다시 만났는데 문득 나에게 <올드룸>이라는 시나리오를 보여주더라. 어떤 여자가 납치, 감금되어 고통받는 이야기였다. 처음에는 이걸 영화화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사람을 함부로 감금하고 납치할 수 있다는 게 놀랍지 않나. 어느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 지금의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는 대표님의 취지에 공감했기에 시작하게 됐다.

-<날, 보러와요>에 당신이 합류하며 가장 달라진 점은.

=도시를 주요 배경으로 하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예전 시나리오는 시골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거든. 도시를 배경으로 할 때 아무도 나를 구해주지 않는다는 게 더 실감날 것 같았다. 바로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도와달라고 외쳐도 휴대폰만 바라보는 세상 아닌가. 물론 큰 예산의 영화였다면 시골 녹차밭에 이상한 사람들이 숨어 있는 설정을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웃음), 타이트한 예산 안에서 고민하다보니 오히려 더 쫀쫀하고 강한 아이디어들이 나온 것 같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만이 가지는 특수성이 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이 공간을 어떻게 구현하고 싶었나.

=기본적으로는 ‘그림’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상황상 큰 욕심을 부릴 수가 없었다. 화재가 나는 공간이라 실제 정신병원을 섭외할 수도 없고, 세트를 짓기에는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광주 가톨릭 회관이 메인 로케이션으로 확정되면서 이 공간에 맞춰 병원의 밑그림을 설계했던 것 같다. 길고 좁은 복도는 환자들이 소통하는 공간이고, 그 끝에 수술실이라 적혀 있는 이름 모를 방에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살아나오지 못한다는 공포감을 느꼈으면 했다.

-정신병원에 대한 취재도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들은 이야기는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다행히 아는 지인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어서 듣기 힘든 부분들까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일어나는 일은 부모를 정신병원에 넣는 거라더라. 보호자의 동의가 있으면 너무나 쉽게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신병원 감금에 있어서는 친족간의 문제가 더 주된 이유가 된다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보통의 정신병원에서는 하지 않는 방식으로 환자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더 강하게 실제 상황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했던 것 같다.

-정신병원 원장 역의 배우 최진호가 인상적이더라.

=진호 형님과 오랫동안 아는 사이다. 예전에 <스토리 오브 와인>을 하며 처음 만났는데 그동안 내가 영화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위로해주고 술도 사주며 친한 형, 동생으로 지냈다. 이 영화를 준비하며 장 원장에 대해 형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더 헌트>의 매즈 미켈슨 같은 느낌이 기본 컨셉이었다. 무표정한 듯 인자한 듯, 하지만 영화 말미에서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악마 같은 심성을 보여주면서 끝까지 등장인물들을 괴롭히는 인물로 보였으면 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콤팩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만 전달하는 구성이 좋더라. 요즘 영화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보니.

=스릴러든 미스터리든 한 시간 반 이내에서 끝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넘어가면 관객이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순간 반전영화는 지는 거다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각색하면서도 대사 분량을 많이 줄였다. <올드룸> 버전의 시나리오에서는 강수아(강예원)가 말이 많다. 하지만 매 맞고, 감금당하고 공포에 질린 사람이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겠나. 대사를 통해 수아를 표현하기보다 손톱으로 벽을 긁는다거나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거나 하는 표정과 행동으로 그녀를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최초의 IPTV영화 <스토리 오브 와인>, 웹드라마 <먹는 존재> 등을 연출했다. 다양한 포맷에 열려 있는 연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늘 새로운 걸 시도하길 즐긴다. 이제는 프로덕션이 마이크로화되면서 다양한 포맷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감성, 철학을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나 역시 이러한 실험들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이야기꾼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커피와 빵 사업을 잘 관리하면서(웃음), 최대한 빨리 다음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캐릭터의 과거와 미래가 함께 만나는, 휴머니즘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이번에는 10대가 주인공이다. 요즘 10대들이 참 막막하잖나. 정말 힘들게 살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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