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른 감이 있기는 하지만 조만간 12·3 계엄 1주년을 맞는다. 그때쯤이면 필경 계엄 이후의 우리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나 특집이 나올 법도 하여, 미리 당겨 쓴다는 다소 비겁한 마음을 품고 이 글을 적는다. 나는 12·3 계엄 이후로 변했다. 그 전과 그 후가 과연 얼마만큼 달라진 건지, 나의 본질에 해당하는 어떤 성향이나 행태가 현격하게 바뀐 거냐 하면 그건 아니다. 회개, 갱생, 부활, 뭐 그런 것과는 다르다. 이미 서서히 바뀌고 있던 것의 속도만 더 빨라졌을 수도 있고, 인생의 진로가 적잖이 변경됐을 수도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꽤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게 느낀다. 그것이 무얼까, 이번 기회에 짚어보기로 했다. 우선 내 주장, 좀더 이 바닥에서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이른바 ‘성향’ 혹은 ‘정치색’을 드러내는 데 거의 아무런 주저함이 없게 되었다. 과거에는 주저함이 있었느냐 하면 어느 정도는 그렇다. 지상파방송에서 가장 유력한 토론 프로그램(들)의 진행자였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애써 숨기겠다는 건 아니었고 굳이 만천하에 드러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아무리 규칙, 논리, 근거에만 입각하여 토론을 진행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색깔의 안경을 쓰고 내 말을 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또 그걸 빌미로 쓸데없는 공격이나 시비의 대상이 되면 무엇보다 제작진을 곤란하게 할 것이라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슷한 이유에서 그 장을 뛰쳐나오기도 했지만 토론 외의 장에서도 특정 경향을 띠고 있다고 여겨질 만한 발화를 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려면 생각해라, 나는 내 길을 갈 것이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이게 내 기본 태도가 됐다. 12·3 계엄 이후로 나는 민주공화제 안의 정치와 그것의 바깥으로 나가려는 정치를 가르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그 바깥으로 나가버린 정치를, 하나의 ‘정치적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교화가 가능하다면 설득의 대상일 수는 있을지언정 타협이 필요한 상대로 여기지 않는다. 존중할 생각도 없고, 귀 기울여 절충할 의지도 없다. 그런 면에서 내가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 정치색은 민주공화정 안의 특정 ‘정파와 진영’의 색이기보다는, 민주공화정 바깥으로 뛰쳐나가버린 것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배제하려는 성향이다. 때로 특정 정파에 연계되거나 진영에 속하는 의견을 가질지라도, 그건 민주공화정을 부인하고 파괴하려는 세력을 솎아내는 데 가장 쓸모 있는 입장일 공산이 크다. 저 일탈한 정치세력이 제도정치 영역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해지거나 현실적 위협이 되지 않을 때까지는 이 태도를 지속하기로 했다. 행여나 나에게 ‘억지 중립’이나 ‘기계적 균형’을 조건으로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고 해도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실은 이미 여러 번 거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 외에 또 뭐가 바뀐 걸까? 그건 1주년이 지난 시점의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러다 보면 1년이 더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첫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