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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클로징] 기대수명 연장의 성장통

내가 서른 줄에 들어선 1990년대에만 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중년이라고 여겼으며, 20대 초반 대학생들의 술자리에 오래 머무르는 것을 눈치 보며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믿기지 않는다면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옛날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라. 다림(심은하)이 정원(한석규)에게 당돌하게 나이를 물어본다. 정원은 이미 몇년 전, 30대의 새해가 밝아오기 전날 밤, 같은 나이 친구들과 청춘이 끝나는 것을 애통해하며 술 먹고 죽자고 밤새워 통음(痛飮)을 행한 적이 있었다. 정원은 말을 더듬으며 20대 후반이라고 에둘러치지만 다림은 확인 사살을 행한다. “30대구나. 완전 아저씨네.” 그런데 세기가 바뀌자 우리나라에서는 청년의 범위가 30대까지 확장되었다. 나는 좀 황당했다. 유엔의 기준에서 ‘youth’, 즉 청년이라 하면 15살에서 25살 사이를 이야기하며,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지만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다른 나라보다 더 급속하게 벌어지는 우리나라의 노령화와 기대수명 연장 때문이었다. 이제 백세시대를 이야기하지 않는가. 1년이 12개월이던 시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각각 3개월씩으로 여겼지만, 1년이 16개월이 되면 4개월씩으로 늘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이제는 39살도 청년으로 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영포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으며 무수한 밈과 각종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억울해하는 이들과 고소해하는 이들 사이에 입씨름도 벌어지고 또 여기에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여 사회현상으로 만들어내는 호사가들도 있다. 하지만 그 저변에 이러한 기대수명 연장이라는 거시적인 변화의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65살 정년 연장의 문제나 국민연금 개혁 문제,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연금 수령 연령 상향 조정 같은 것도 그 본질은 영포티 현상과 동일하다. 인류의 기대수명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면서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이라는 애매한 이름의 세대 구별이 정확히 어떤 숫자의 나이에서 갈라지는지를 두고 재조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각 세대의 언저리, 가장자리 나이에 있는 이들은 이쪽으로 잘리고 저쪽으로 잘리는 혼란의 와중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얌체같이 이쪽 저쪽으로 끼어들었다고 미움을 받기도 하며, 또 실제로 얌체같이 끼어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키가 훌쩍 크는 사춘기 아이들은 늘어난 신체의 길이 때문에 관절과 몸 여기저기에 무리를 겪게 되며 이는 이른바 성장통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전 지구적인 추세이니까. 하지만 변화의 속도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한민국은 이 성장통에서도 선두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 어떤 문제는 가볍게 다루어지는 문화적 현상 정도로 나타나지만, 어떤 문제는 세대간에 얼굴을 붉히고 언성을 높이는 밥그릇 싸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언제 이 성장통이 끝나고 모두가 받아들이는 세대 구별과 ‘세대간 정의’라는 것이 확립될까. 당분간은 주로 싸움만 벌어질 듯. 하지만 오이디푸스가 스핑크스에게 한방 먹였던 것처럼, 사람은 모두 네발, 두발, 세발로 걷다가 죽는 동물이란 것만은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