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지금 영화의 ‘심도’를 다시 물어야 할까. 디지털 시대, 대개의 화면이 얕은 포커스에 머물러 있는 지금, 한 프레임의 깊이는 더이상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다. 심도는 관객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놓칠 것인지, 어떤 세계를 감각하고 어떤 의미를 생성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영화적 사고의 구조다. 그 모든 선택은 결국 “영화가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심도(depth of field)는 프레임 안에서 초점이 선명히 맞는 범위다. 심도의 ‘장’(field /場)은 중력장, 자기장, 전기장에서처럼 깊이와 너비를 아우르는 공간적 범위가 녹아든 단어다. 우리말에서는 깊이를 중심에 두어 ‘깊다’와 ‘얕다’로 표현한다. 심도가 깊으면 디프포커스(deep focus), 전경부터 후경까지 모두 선명하다. 심도가 얕으면 셸로 포커스(shallow focus), 특정 부분만 초점이 맞고 나머지는 흐려진다.
리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두 인물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런홀)뿐 아니라 그들이 한여름을 보낸 브로크백산 역시 주인공으로 다룬다. 그래서 영화는 인물과 산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아낸다.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깊은 심도로 모두를 초점 안에 둔다. 전반부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과 산의 동시 프레이밍은, 후반부 두 사람이 산에서 내려와 각자의 공간에서 생활할 때 변주된다. 이제 프레임은 하늘의 여백을 더 많이 담지만, 여전히 깊은 심도를 유지한다. 그들의 짧은 만남과 긴 그리움 속에서, 깊은 심도가 각인해놓은 산의 이미지는 서로 떨어져 애달파하는 두 사람의 내면으로 스며든다. 심도가 감정의 깊이가 된다. 드니 빌뇌브의 <컨택트>에서 루이스(에이미 애덤스)가 자신의 미래를 보는 장면은, 공간은 열려 있으나 얕은 심도로 오직 인물에게만 시선을 모은다. 반면 외계인과의 만남 땐 무채색 미술과 스모그로 공간과 형태를 가리면서도 깊은 심도로 그 너머를 응시하게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선, 그것이 깊은 심도가 유도하는 관객의 태도다. 이 영화는 미래와 현재, 과거를 컷으로 분절하며 심도의 차이로 시제를 구분한다. 얕은 심도의 사적인 시간, 깊은 심도의 우주적 시간. 심도가 시제의 심도가 된다.
망원렌즈는 심도가 얕고 광각렌즈는 심도가 깊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심도는 렌즈의 초점거리뿐 아니라 조리개 수치, 카메라 센서(필름 면적)의 크기, 카메라와 피사체 사이의 거리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따라서 망원렌즈로도 심도를 깊게, 광각렌즈로도 심도를 얕게 할 수 있다. 스티브 매퀸 감독의 <노예 12년>이 대표적인 예시다. 솔로몬 노섭이 12년간 노예 생활을 하는 목화 농장을 보여줄 때, 그의 얼굴 버스트숏이나 클로즈업은 광각렌즈를 사용하면서도 얕은 심도로 촬영한다. 공간이 드러나면서도 배경은 모호해진다. 반면 솔로몬의 풀숏을 찍을 땐 망원렌즈로 깊은 심도를 유지한다. 좁은 화각에 공간 전체를 담되 대상간의 거리감이 압축되는 망원렌즈의 특성으로 농장이라는 공간을 자연 속 감옥으로 만든다. 농장과 솔로몬이 서로 달라붙어 답답하게 보인다. 광각렌즈의 넓은 풀숏에서도 깊은 심도는 사방이 그를 에워싸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열린 감옥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역설한다. 심도가 억압의 심도가 된다.
앙드레 바쟁은 심도를 영화적 리얼리즘을 실현하는 핵심 도구로 이해했다. 프레임 안의 여러 층위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관객이 스스로 보고 판단할 여지를 남기는 방식. 바쟁에게 깊은 심도는 단순한 촬영 기술이 아니라 관객의 지각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윤리적 리얼리즘’의 실천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심도의 리얼리즘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며 영화를 역사 체험의 장으로 만든다. 어느 영화보다 깊은 심도로 화면 전체를 선명하게 유지한다. 카메라와 렌즈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원경은 CG로 보정해 화면의 모든 깊이가 눈앞에 또렷이 펼쳐지도록 했다.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기에, 역사가 과거가 아닌 현실처럼 재현된다. 학살 현장의 담 너머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의 평화로운 가정집과 모든 곳이 함께 초점 안에 있다. 이 극단적인 깊은 심도는 잊힌 역사를 상기하도록 강요하면서, 역설적으로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폭력을 잊게 만든다. 선명하게 보이는 것조차 외면할 수 있다는 인간의 능력을 증명한다. 심도가 망각의 심도가 된다.
질 들뢰즈는 <시네마>(2002, 시각과 언어 펴냄)에서 <시민 케인>을 언급하며, 깊은 심도로 초점이 맞는 프레임 내 모든 영역을 면(plane)으로 본다. 케인의 어머니가 은행가 대처에게 재산을 신탁하며 어린 케인을 맡기는 장면. 창밖에서 썰매를 타며 노는 어린 케인은 후경에, 케인의 아버지는 중경에, 위탁 서류에 서명하는 어머니는 전경에 배치된다. 어린 케인에서 출발한 카메라는 전경의 어머니의 얼굴까지 트랙아웃하며 롱테이크로 이 장면을 길게 담는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동안 모든 인물과 공간은 선명하게 초점 안에 머문다. 후경의 어린 케인과 그의 미래를 결정짓는 서명을 하는 어머니가 깊은 심도로 동시에 보인다. 과거와 미래,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가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한다. 들뢰즈에게 깊은 심도는 서로 다른 시간과 사건이 하나의 이미지 속에서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미지를 생성한다. 심도가 시간의 심도가 된다.
그런데 한국영화, 드라마의 심도 선택은 점점 좁아지고, 비슷해지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의 해상도와 색 재현력이 향상될수록 심도가 점점 얕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고해상도 디지털시네마 카메라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심도 표현은 비슷하고 단순한 형태로 수렴하고 있다. 성능 높은 디지털카메라의 센서 픽셀은 더 작아지고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픽셀간 경계가 사라질수록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지고 색채는 풍부해지지만, 높은 해상도의 선명함과 깨끗한 이미지가 오히려 날카롭고 차가우며 때로는 인공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질감을 상쇄하기 위해 광각과 망원렌즈 모두에서 조리개 값을 낮춰 얕은 심도를 구성하는 방식이 보편화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독립영화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야기의 의미와 소재가 다양해도, 시각적 표현 방식의 보편화는 결국 그 다양성을 드러내는 데 한계를 만든다.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의미는 심층이 아니라 표면에서 발생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한 ‘표면’은 단순히 평면이 아니라, 사건이 발생하는 지대다. 프레임 안의 심도는 단순한 기술적 깊이가 아니라 하나의 표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발생시키는 ‘다양체’로 기능한다. 심도가 깊을수록 프레임은 더 많은 관계와 사건을 동시에 포착할 수 있고, 그 넓은 층위만큼 해석의 폭도 확장된다. 결국 심도는 깊거나 얕거나, 선택의 의식이 만드는 영화적 표면이며, 이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이다. 그 선택이 열어두는 표면의 폭만큼 영화는 다시 다양해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