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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요동하는 역사와 고요한 섬, 뉴 저먼 시네마의 얼굴, 하크 봄 감독의 유년기를 다룬 영화 <암룸>

지난 10월 초 튀르키예계 독일 감독 파티 아킨의 <암룸>이 독일에서 개봉했다. 올해 칸영화제 프리미에르 섹션에서 첫선을 보인 뒤 여러 영화제를 순회하다 마침내 독일 극장가에 닿은 것이다. <암룸>은 “어린 주인공의 관점에서 정체성과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쥐트도이체 차이퉁>)라는 평을 들으며 언론의 호평을 받고 있다. <암 룸>은 뉴 저먼 시네마의 중요한 이름, 하크 봄 감독의 어린 시절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인 ‘암룸’은 독일 북해에 위치한 섬. 이곳은 썰물 때만 육지와 연결된다. 12살 소년 나닝은 제2차대전 종전 무렵 암룸에서 만삭인 엄마와 동생들, 이모와 함께 살아간다. 나닝은 학교를 마친 후엔 집안 사업인 감자 경작을 돕고 장을 보며 가족과 세상을 관찰한다. 나닝의 눈에 비친 어머니는 나치 추종자이고 이모는 은근히 나치에 비판적이다. 마을 사람들 또한 나치와 거리를 두는 듯 보인다. 독일은 패전의 기미가 짙어지고, 나닝의 어머니는 분노를 잠재우지 못한다. 나닝은 격동하는 정세와 어머니의 불안을 바라보며 내면이 요동친다. 이때 영화 속 빛나는 요소는 절제된 암룸의 풍경이다. 인적 드문 섬의 달빛, 흰모래와 갈대 사이를 바다새와 함께 누비는 나닝의 모습이 유독 마음에 남는다.

파티 아킨 감독은 주간지 <디 차이트>와 인터뷰를 통해 “전쟁 내러티브를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나치 정권이 만들어낸 폐단이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 사회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이고자 했다”라는 연출의 변을 밝혔다. 아킨이 독일 전체의 역사와 하크 봄 개인의 역사를 함께 엮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함부르크 영화학교의 영화 학도 시절, 봄이 그의 지도교수였기 때문이다. 아킨과 봄은 <심판>의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적 있고, <암룸>역시 봄이 시나리오작가로 함께했다. 한편 하크 봄 감독은 지난달 향년 86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고가 <암룸>에 처연한 빛을 한층 더 드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