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야에 선 타쿠야(고시야마 게이타쓰)가 고개를 젖힌다. 그의 시선을 붙든 건 뜬공이 아닌 흰눈. 이제 야구 글러브를 벗어야 할 계절이다. 대신 하키채를 잡고 빙판으로 향하는 홋카이도 소년들 틈에서 타쿠야는 조금 예외적인 존재다. 스포츠에 곧잘 흥분하는 또래들과 달리 그는 멋진 활약 따위에 관심이 없다. 팀 안에 섞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아이들이 기피하는 포지션인 골리를 자처한다. 아빠를 닮아 말을 잘 더듬는 타쿠야는 조용히 웃고 마는 일에 익숙하지만, 자기 목소리에 끝까지 귀 기울여주는 단짝 코세이(윤호)가 있어 그리 외롭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러다 타쿠야의 몸과 맘이 한 소녀로 인해 들썩이기 시작한다.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사쿠라(나카니시 기아라)를 마주하고부터 야구도, 하키도 주지 못한 설렘을 느낀 것이다. 퍽을 향해 전진하는 게 아니 음악을 들으며 춤추고 싶어진 타쿠야는 남몰래 스텝을 밟아본다. 그 귀여운 분투를 알아챈 사쿠라의 코치 아라카와(이케마쓰 소스케)는 방과 후 타쿠야에게 개인교습을 해주다 결단을 내린다. 타쿠야를 사쿠라의 아이스댄싱 파트너로 키워 승급 심사에 도전해보기로 말이다.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 세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얼음 안팎을 누비며 잊지 못할 겨울을 난다.
만 22살에 데뷔작 <나는 예수님이 싫다>로 제66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은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마이 선샤인>은 전작의 향취를 잇는다. 거기에는 차분한 카메라워크, 포근한 필름 룩의 질감, 낯익은 전개 뒤에 따라오는 오묘한 파국까지 그의 인장처럼 찍혀 있다. 이번에도 어린이의 세계를 조명한 그는 이르게 이별한 친구를 떠올리며 첫 영화를 만들었듯, 오래전 피겨스케이팅을 배우던 경험으로부터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감독 스스로 전작에서 아쉽게 여긴 어른의 비중을 늘렸고, 팬데믹을 겪는 동안 귓가에 꽂힌 부부 듀오 험버트 험버트의 곡 <ぼくのお日さま>에서 제목과 인물 설정을 따오기도 했다.
덕분에 <마이 선샤인>은 노랫말처럼 생략과 암시를 포용한다. 인물들이 품은 감정은 또렷한 대사로 전해지기보다 빛과 소리의 변화로 나타난다. 프레임에 엄청난 광량을 허락하다가도 렌즈를 닦지 않은 것마냥 안개를 드리우고, 한마디가 터져나와도 집중될 수밖에 없는 침묵 속에서 바람 소리만 점점 키우는 식이다. 감독조차 “눈과 함께 신비로운 삼각형이 생겨나고, 점점 조화로운 삼각형이 되었다가, 눈이 녹으며 삼각형의 윤곽도 사라진다”는 은유로 이야기를 요약했다. 그러니 관객은 질문이 많아질 수도 있겠다. 인물의 회심과 그로 인해 다가온 결말에 마땅한 설명이 부재한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 선샤인>의 미덕 또한 그 점에 있다. 모든 인물을 다른 국면으로 이끈 한철, 찰나라서 더 아름다울지 모를 그 시기는 도저히 친절하게 끝나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삶의 미스터리와도 닮아 있다. 물음표를 끌어안을 용기가 생을, 어쩌면 영화를 지탱한다고, <마이 선샤인>의 엔딩은 그렇게 마음먹은 이들 앞에 새봄을 펼치며 말하는 것만 같다. 제7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초청작.
close-up
<마이 선샤인> 속 빙판은 그 어떤 색과 빛도 다 받아낼 준비를 마친 도화지다. 자연광을 한껏 끌어안은 야외 신들도 볼거리지만, 백미는 극 후반부 사쿠라가 홀로 스케이트를 타는 신이다. 감독은 이것이 “사쿠라의 미래를 축복하는 장면”이라 여겨 창문마다 서로 다른 컬러의 널빤지를 붙여 성전의 스테인드글라스처럼 표현했다고 한다. 창을 통과한 햇살이 오색찬란하게 인물을 감싸는 순간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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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님이 싫다> 감독 오쿠야마 히로시, 2018
오쿠야마 히로시 감독을 단숨에 주목받게 한 데뷔작 <나는 예수님이 싫다>에도 설경을 배경 삼은 아이들의 한때가 펼쳐진다. 여기서도 일상과 일탈의 경계에서 빛나던 순간이 느닷없이 바스러진다. 고정돼 있던 카메라가 불쑥 기울어지기도 한다. 이 영화와 <마이 선샤인>을 함께 보면 촬영과 편집 등에서 자기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신예의 시도가 더 선명히 읽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