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하늘과 얄궂은 비, 진흙 바닥이 떠오르는 사색의 영화들을 만든 벨러 터르 감독이 타계했다. 2026년 1월6일, 오랜 투병 끝에 70살로 세상을 떠났다. 공식적으로 벨러 터르의 은퇴작은 <토리노의 말>(2011)이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그의 이름을 들은 것은 영화의 원작자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된 당시였던 것 같다. 작가는 <토리노의 말>을 비롯해 <사탄탱고>(1994)를 완성한 벨러 터르에게 인사를 전하며 “색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색을 창조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벨러 터르의 영화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의 화면은 태양의 소멸을 그리는 듯이 세계를 창조한 작가였다. 말이 뛰는 장면, 인물이 걷는 장면,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장면들이 우리를 매혹시켰다.
1955년 7월21일 헝가리의 페치에서 태어난 벨러 터르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따라 부다페스트로 이주했다. 그의 부모는 극장과 오페라하우스에서 무대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러한 환경은 일찍부터 그가 연출에 재능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14번째 생일에 벨러 터르는 아버지에게 8mm 카메라를 선물받았다. 그리고 16살 무렵 친구들과 함께 단편 <외국인 노동자>를 완성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는 벌라주 벨러 스튜디오의 주목을 받았으며, 첫 장편영화 <패밀리 네스트>(1979)의 제작 지원을 얻었다. 언뜻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패밀리 네스트>는 시네마베리테 기법으로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완성된 영화로, 이후 그는 <아웃사이더>(1981)를 선보이며 이전보다 더 길이가 늘어난 숏들을 실험했다.
본격적인 변화가 감지된 것은 1982년작 <불안한 관계>를 통해서였다. 이 영화는 여전히 초기의 영화미학적이고 심리적인 사회적리얼리즘의 외양을 보여주지만, 결말 부분에서 벨러 터르가 지닌 현재의 미학적 인장을 떠올리게 한다. 주인공들은 차 안에서 멈추어진 화면 안에 한참을 가만히 있다. 1982년의 TV영화 <멕베스>가 보여주는 변화는 이보다 더 획기적이다. 단 2번의 롱테이크로 드라마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공적 지원 없이 만든 첫 영화 <파멸>(1988)이 소개된다. 롱테이크 화면과 몰입한 배우들, 흑백의 화면과 비와 물의 등장, 여러 미장센과 트래킹숏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전세계 영화 팬들 사이에서 벨러 터르의 이름이 거장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사탄탱고>이후였다. 무려 7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진 이 영화가 소개된 후로 그는 전설이 되었다. 엄청난 길이 때문만이 아니라, 영화의 리듬과 깊이, 그리고 소설이 표현한 자유로움을 시각화한 덕분이었다. <사탄탱고>를 선보인 다음에도 벨러 터르는 3편의 영화를 더 만들었다.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2000)와 <런던에서 온 사나이>(2007), <토리노의 말>이었다. 모두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와 공동 작업했고, 셋 다 의도적으로 느린 시각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관객의 인내와 집중을 요구하는 영화언어의 발견,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통해 무언가를 사색한다. 어떤 이는 말했다. 롱테이크는 보여지는 숏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때가 더 많다고. 그 안에 포함된 보이지 않는 미세한 몽타주의 흔적은 언젠가 그 세부의 과정을 떠올리며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영화를 통해 지속되는 시간, 무신론자였던 벨러 터르의 영혼이 시네마 안에서 평온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