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 도로에는 아무도 없다. 그 창이 달린 방, 그 방 너머의 거실에도. 모든 복도와 계단을 지나 현관에 도착하기까지, 카메라는 2분 넘게 어두운 공간을 헤맬 뿐이다. 그곳이 빈집인지, 모두가 잠든 곳인지는 금세 밝혀진다. 다음 장면에서 아침이 밝자 부동산중개인이 한 가족을 이끌고 그 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4인 가족은 부모와 남매로 이뤄져 있다. 이사에 적극적인 어머니 레베카(루시 리우)와 달리 아버지 크리스(크리스 설리번)는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레베카는 그런 크리스에게 토로한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다면 이미 죽은 사람은 누구일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신작 <프레젠스>는 그 존재가 가족 사이를 맴돌고 있음을 넌지시 흘리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유령은 그들의 대화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실체를 과시하며 가정에 영향을 미친다. 리모델링을 마친 집에서 가장 먼저 묘한 기척을 느끼는 건 딸 클로이(칼리나 리앙)다. 이유 모를 사연에 훌쩍이던 그는 잠들기 위해 이불을 덮자마자 다시 몸을 일으킨다. 주위를 둘러보다 옷장 앞으로 걸어간다. 그가 잠자코 장롱을 응시하다가 호명한 이름은 나디아. 그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클로이의 친구다. 이때부터 영화는 관객이 유령을 나디아의 영혼으로, 화면을 나디아의 시점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카메라는 클로이의 방을 제일 자주 들락거린다. 카메라가 대리하는 존재의 욕망은 클로이를 지켜보는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 목적이 관음, 감시, 보호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는 극의 최후반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로 인한 혼란의 여파로 레베카와 크리스는 크게 다투고, 클로이는 오빠 타일러(에디 매데이)의 친구 라이언(웨스트 멀홀랜드)과 관계 맺으며 상실감을 달랜다
베일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벗겨진다. 단 한컷으로 앞선 전제가 무너지고, 서사가 재구성된다. 엔딩에 따른 여운이 깊어진 데는 촬영의 공이 크다. 이 작품은 일인칭시점 숏으로만 구성된 만큼 강력한 몰입을 선사한다.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순간에도 그렇다. 그 정체는 최후에 밝혀질지언정 카메라가 입은 캐릭터성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기에 경우에 따라 이머시브 공연에 참여하는 것 같기도, VR 영상을 관람하는 것 같기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 같기도 한 체험이 가능해진다. POV(Point Of View) 기법에 힘입어 미니멀한 프로덕션 속에서도 최대치의 페이소스를 일군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이런 플롯이야말로 “책이나 연극이 아닌 영화라는 형식만으로 구현할 수 있는 텍스트”라 자신했다. 그 말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적재적소에 쓰인 특수효과, 투박하지만 장르 문법에 충실한 음향, 단순하지만 시간의 흐름을 똑똑히 전하는 편집술도 이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어준다. 다만 반전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관객마다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작품은 유령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는 대신 암시하기를 택한다. 그 통시성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물음표만 띄운 채 극장을 나설 수도 있는 셈이다. 대신 이해한 자에게는 지독한 여운이 따라붙으리라고 장담한다. 피 한 방울 쏟지 않고도 공포스러운 영화는 러닝타임을 소모하고 나서 더 가혹해질 것이다.
close-up
‘피터 앤드루스’와 ‘매리 앤 버나드’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각각 촬영감독, 편집감독으로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때 쓰는 가명이다. 소더버그는 크레딧에 자신의 진짜 이름은 한번만 언급하는 걸 선호해 수십년째 해당 가명들을 사용해 1인다역을 암약해왔다. <프레젠스>를 찍는 동안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옷장에 구겨져 있어야 해서 작은 기기를 고를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투정에 실없이 웃게 된다.
check this movie
<고스트 스토리> 감독 데이비드 라워리, 2017
<프레젠스>에서처럼 시공을 초월해 실재하는 유령이 <고스트 스토리>에도 있었다. <프레젠스>가 카메라를 유령의 눈으로 삼아 그 형태를 가렸다면, <고스트 스토리>는 흰 천에 구멍을 뚫는 과감함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두 작품 속 유령들이 공유하는 정서만큼은 깊은 곳에서부터 연결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든 갈 수 있으면서 집에 머물고 싶어 하는 본능까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