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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호러 <알포인트> 이야기 [3] - 공수창의 <알포인트> 촬영일지

2004년 1월 7일 휴대폰이 울린다. 최강혁 PD에게서 온 전화이다. 첫마디가 “감독님?”으로 시작된다. 순간 감독님이라는 호칭이 너무도 낯설게 느껴진다. 감독이라니… 15년 동안이나 작가라는 호칭에 익숙해진 나에게 감독이라는 새로운 호칭이 붙여진 것이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난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2004년 2월 20일 우리 영화에 나올 경비정을 타고 바다로 나가보았다. 낡을 대로 낡은 경비정은 움직일 때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는다. 파도가 생각보다 강해서 롤링이 심하다. 영화도 영화지만 안전사고가 날까봐 걱정스럽다. …. 2004년 2월 24일 (오른쪽) 지난 이틀간 찍은 경비정신 편집본을 보곤 좌절과 절망에 빠져 밤잠도 못 자고 뒤척였다.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상상력과 감독으로서의 상상력이 이렇게 다른 건지…. 경비정 장면을 시나리오로 쓸 때는 느낌이, 필이 팍 꽂혔는데 말이다. 나에게 감독직을 제의한 인간들에게 또 그 제의를 받아들인 나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다 잠들었다. 2004년 3월 2일 오늘도 ‘마의 35신’을 찍었다. 첫날 수색에서 소대원들을 잃어버린 조 상병이 갈대밭에서 철모 뒤통수에 “정숙아 기다려라”라고 쓴 병사를 만나는 장면 말이다. 컷 수로는 4컷에 불과하지만 42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에서 건져내야 한다. 복코산 갈대밭을 다 작살낼 정도로 온 산을 누비면서 찍었다. 그것도 장장 일주일씩이나. 2004년 2월 20일 캄보디아 스님의 독경소리가 고즈넉이 들리는 가운데 저택 앞에서 고사를 지냈다. 준비해온 제문을 읽어내려가다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우리 땅에서 죽는 것도 억울한데 스물 몇 꽃다운 나이에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의 죽음이라니…. 혼마저도 우리 땅을 밟을 수 없게 된 그들의 욕된 죽음을 생각하다가 또 그 후손들이 이라크에 파병될 거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진다. 2004년 3월 25일 캄보디아엔 일기예보를 전해주는 기상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최 PD는 어김없이 일기예보를 전해준다. 새벽 1시까지는 안개가 없는 맑은 날씨가 될 거라는. 복코산 생활 20년 경력에 빛나는 관리소 소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오는 일기예보이다. 시계거리 1m도 안 되는 안개부터 시작해서 맑은 날씨, 비, 태풍에 비견될 정도의 바람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눈 내리는 것 빼고는 일기 변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 이곳 저택의 날씨다. 2004년 2월 20일 눈이 멀고 정신까지 나간 상태에서 중얼거리는 장 병장,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린다. 지켜보던 몇몇 스탭들도 눈물을 감추느라 애쓴다.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장 병장은 감정을 추스르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다섯 번째 테이크를 끝으로 저택 분량은 끝났다. 조명 퍼스트인 동우는 저택을 부숴버린다고 했고, 연출부 막내인 현수는 이가 갈린다고 했다. 2004년 5월 17일 저택… 처음 저택을 보았을 땐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규모도 규모지만 안개와 핏빛 이끼,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묘하게 앙상블을 이루는 그 자태하며….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멀어지고, 포기하고 돌아서면 어느새 슬그머니 다가와 유혹하는 저택…. 그러나 단 한번도 자기의 속살을 보여주지 않은 저택을 이제 떠난다. 2004년 5월 21일 홍등가에서 베트남 창녀와 잠을 자던 최태인 중위가 총소리에 깨어나 권총을 들고 창녀 방을 빠져나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108일간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OK 사인이 나자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만 요란할 뿐 침묵이 흐른다. 스탭들과 악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흩어진다. 이게 아닌데… 내가 생각한 마지막 촬영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샴페인을 못 터뜨릴망정 박수도 치고 포옹도 하고 환호성도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 허탈한 심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데 최 PD가 들어온다. “형, 왜 이래… 이제 반 끝낸 건데… 일어나요… 빨리 후반작업 해야지….” 반이라니… 이제 반이라니!!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 추천작 퍼레이드 [2]

찾았다, 빛고을의 발견! <러브드 건> Loved Gun | 와타나베 겐사쿠 | 일본 | 2004년 | 111분 | 개막작 오토바이를 뺏으려다 총까지 잃은 킬러와 오토바이를 잃은 뻔했다가 총까지 얻은 소녀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부모를 잃었고, 둘 다 죽고 싶어한다는 것. 오래전에 죽은 부모의 원수를 갚으려는 남자에게 소녀는 자기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버지의 애인을 죽여달라고 간청한다. 한편 남자의 뒤를 쫓는 노장 킬러는 신참 파트너와의 여정에서 그 남자와의 긴 인연을 이야기한다. “총을 쏘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총알의 색깔은 달라진다. 슬픈 사람은 파란 총알을,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은 검은 총알을, 겁에 질린 사람은 오줌처럼 노란빛의 총알을 쏜다. 그럼 빨간 총알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까?” <러브드 건>은 열두 고개 수수께끼 같은 영화다. 빨간 총알의 비밀도, 주인공의 비밀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껴둔다. 위급할 때면 삼킨 총알을 토해서 쓰는 남자, 그를 쫓는 두 킬러의 엽기적인 파트너십 등 썰렁한 유머 뒤에는 아린 슬픔이 배어난다. 일본 개봉 당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는 <러브드 건>은 새롭고 재밌고 유려한 영화다. 인공적이고 화려한 비주얼, 기상천외한 장르적 인용, 시공간감을 무시하는 구성 등 감독 와타나베 겐사쿠가 스즈키 세이준의 수제자라는 증거를 발견하는 것도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다. <레스키브> L’esquive France | 압델라티프 케시시 | 2003년 | 117분 | 컬러 | 영시네마 에펠탑과 금발 백인들만의 도시로 생각되지만 사실 파리는 다양한 문화와 민족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외곽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아랍계 이민자들의 거리가 있다. <레스키브>는 이곳 아이들에 관한 영화다. 듣기만 해도 이 문화 게토의 다양성을 종주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영화는 뜻밖에 극중극을 즐겼던 피에르 마리보의 18세기 희극을 테마로 삼는다. 신분을 속이고 사랑을 시험하는 연인, 그러나 아무리 위장을 해도 원판을 속일 수 없어 결국 동류끼리 맺어지는 이 연극을, 아랍계 학생들이 연습하면 의미가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거기다 좋아하는 소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소녀의 상대역을 자원하는 소년이 가세하면 영화는 4중의 위장 구조로 된 마리보식 희극이 된다. 화면의 한곳을 응시하며 사랑에 빠진 소년의 심사를 좇는 감각도 상투적이지만 멋지다. 그러나 코란에 대고 맹세하며 욕을 퍼붓는 아이들에 대한 이물감이 가시고 새삼스레 사랑에 빠지고 옛사랑을 배신하는 아이들의 절절한 드라마에 공감을 하게 될 무렵 영화는 갑자기 모든 것을 간단히 부숴버린다. 이렇게 희극은 끝나고 소년은 어른이 된다. 모든 것이 예전과 다를 것이다. 관객은 함께 강제로 타자가 되는 사회의 폭력을 체험한다. 치밀하게 의도된, 이 우발적 반전은 꽤 충격적이다. <어머니> My Mother | 크리스토프 오노레 | 프랑스 | 2004년 | 110분 | 컬러 | 영시네마 “모든 아들들은 신들이 되려 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모가 필요하다. 성(性)과 성(聖)을, 오르가슴과 죽음을, 피학과 희생을 동일시했거나 혹은 도착적으로 뒤집는 태도는 사실 이제 그다지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성기까지 거침없이 내놓으며 시각화할 요량이라면 철학하는 사도마조히즘의 금언이 넘치는, 조르주 바타이유의 해묵은 미완성 소설, <어머니>는 결코 논쟁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노보>의 각본을 썼던 크리스토프 오노레는, 최대한 도식적으로 짜낸 시적 구조로, 종교적인 아들과 거침없는 성적 모험을 감행하는 어머니 사이의 긴장을 에로틱하게 묶는 원작의 지뢰를 돌파하려고 한다. 해변과 사막, 성가풍 사운드트랙과 가학적 성행위 같은 적나라한 시각적 대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의 시체와 아버지의 유품들 위에서 자위하고 오줌발을 내리는 장면들마저 구해낼 만큼은 아니다. 분열증의 기미를 보이는 단속적인 편집이나 셔터를 열어놓고 찍는 현란한 잔재주만으로는 도저히 이 과감한 기호의 세계를 감당해낼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하는 것은, <피아니스트>로 이미 극단마저 너끈히 현실화하는 경지에 오른 이자벨 위페르다. 하기야 그녀가 아니라면, 그 누가 ‘성애의 여행’을 심각한 구도의 도정으로 보이게 할 수 있겠는가? <녹색 모자> The Green Hat | 리우펑도우 | 2003년 | 120분 | 컬러 | 영시네마 세 남자가 은행털이에 성공한다. 그중 한명인 왕야오는 이 돈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가 사랑하는 여인 릴리를 만날 계획이다.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헤어지자고 한다. 전화기를 붙들고 늘어지던 그는 경찰 앞에서 인질극을 벌어야 하는 신세가 된다. 그를 달래러 온 경찰 간부에게 권총을 들이댄 채 왕야오는 “다음 질문에 3초 내로 답을 해주면 총을 놓겠다”고 말한다. 바로 그의 질문이 이어진다. “사랑이 뭔지 아냐?” <녹색 모자>는 이 은행털이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은 그에게서 황당한 질문을 받은 경찰관이다. 경찰관은 우물거린다. 인질범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본 경찰관은 비뇨기과를 찾아간다. 발기불능인 그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비아그라를 먹어서라도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중국에서는 아내나 애인으로부터 배신당한 남자를 가리켜 ‘녹색 모자를 쓴다’고 일컫는다고 한다. 영화 속 두 남자는 왜 녹색 모자를 쓰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걸까. 장양 감독의 <샤워>에서 시나리오를 썼던 신인 리우펑도우 감독은 현대 중국의 삶을 녹색 모자라는 키워드를 통해 신랄하게 풍자한다. 이 슬픈 블랙코미디는 올해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입술은 안 돼요> Not on the Lips | 알랭 레네 | 프랑스, 스위스 | 2003년 | 115분 | 월드시네마 베스트 <히로시마 내 사랑>의 알랭 레네가 뮤지컬에 빠졌다. 97년작 <우리들은 그 노래를 알고 있다>를 내놓을 때만 해도, 딱 한번 일탈이겠거니 했지만, 틀렸다. 그는 또 한편의 뮤지컬 <입술은 안 돼요>를 내놓았다. 모더니즘 작가군과의 연대, 시간의 혼합과 관념적 독백 등이 특징적인 난해한 영화들로 한 시대를 풍미한 그였기에, 비교적 대중적인 장르인 뮤지컬로의 선회는 연륜이 선사한 여유와 낙천성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혼 전력을 숨기고 사업가 조르쥬와 결혼한 질베르트는 전남편 에릭이 현 남편의 새로운 사업 파트너라는 사실에 크게 당황한다. 전남편 에릭의 방문, 끊이지 않는 남자들의 구애, 여동생 아를레트의 간섭 등으로 질베르트의 주변엔 바람 잘 날이 없다. “입술은 안 돼요”는 주인공 질베르트의 미국인 전남편 에릭 톰슨이 하는 대사. 전 부인과도 ‘불결한 키스’ 따위는 하지 않았던 그는 의외의 여인에게 입술을 내주는 ‘사고’를 친다. 몰리에르의 희극이 연상되는 <입술은 안돼요>는 장이 바뀔 때마다 암전과 함께 세트가 바뀐다거나, 중요한 대사를 하는 배우에게 핀조명이 떨어진다거나, 속마음을 얘기할 때 정면(카메라)을 보고 연기하는 등 무대 연극에서나 봄직한 장치들이 눈에 띈다. <아멜리에>의 오드리 토투가 사랑에 빠진 순진한 소녀를 연기한다. <‘소매치기’의 모델들> The Models of Pickpocket | 바벳 맨골트 | 2003년 | 89분 | 베타 | 컬러 | 논픽션 시네마 구원이나 초월과 같은 종교적 테마와 영화사상 가장 가까웠던 인물, 로베르 브레송, 단순하다 못해 무미건조한 화면과 무표정한 인물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다가와 있는 장엄한 순간, 이것이 어느 사조에도 속하지 않았고, 몇 마디 개념으로 잘 설명될 수 없는 브레송 영화의 신비다. 그렇다면 브레송의 59년작 <소매치기>에 출연한 세 배우들에게는 이 미스터리한 감독과의 작업이 어떤 경험이었을까? 촬영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바벳 맨골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이 지점에서부터 브레송 영화의 신비를 복기하려 든다. 브레송은 배우들이 의식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기피했다. 때문에 비전문배우들을 선호했고 배역에 대해 열정이 없어도 상관없었으며, 수십번에 걸친 재촬영을 통해 배우(모델)들의 넋을 반쯤 빼놓기도 했다. 배우들의 증언이 차분히 이어진다. 그리고 그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자명하게 설명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자체로 훌륭한 브레송 입문서다. 그러나 이게 다는 아니다. 한편으로 이들의 일상과 주변 풍경, 언뜻 스치는 표정들을 무심히 담아내면서 맨골트는 이들의 삶에 브레송이 얼마나 깊은 흔적을 남겼는지를 역설한다. 그것은 아마 브레송이 40년 전 그들에게 썼던 방식 그대로일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뉴욕> Alexandrie…New York France/Egypt | 유세프 샤힌 | 2004년 | 128분 | 컬러 l 월드시네마 베스트 이집트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유세프 샤힌의 최근작 <알렉산드리아… 뉴욕>은 자전적인 ‘알렉산드리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9·11 테러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후로도 여전히 다사다난했던 아랍 지역의 예술가로서 그는 그 대미를 미국을 향한 애가(哀歌)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 같다. 유세프 샤힌 자신임이 분명한 분신 예히아는 회고전을 위해 오랜만에 미국에 돌아와 잊고 지내던 젊은 시절 연인과 그녀가 낳은 그의 아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미국인 아들은 아랍인 아버지를 냉대하고 예히아는 젊은 시절 미국에서 그가 받았던 온갖 천대를 기억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거둘 수 없는 그의 제스처는 강퍅해진 미국을 향한 애달픈 애가로 환원된다. 칸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기도 한 거장이 미국에 전달하는 우아한 경고인 셈이다. 그러나 충고하는 자의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예히아를 이상화할 필요가 있었던 이 거장은 (그것이 자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예히아를 무슨 초등문고판 영웅전 주인공처럼 만드는 무리수를 둔다. 잘생기고, 똑똑하고, 정의롭기까지 한 예히아에 비하면 모두가 들러리로만 보이는 대목들의 우스꽝스러움과 미국인들 모두 아랍어를 쓰는 진기한 장면들을 지나노라면 할리우드의 영웅적 나르시시즘의 변종을 보는 듯한 꺼림칙함을 피할 길 없다. <지방법원 제10호실> The 10th District Court | 레이몽 드파르동 | 2004년 | 105분 | 컬러 | 논픽션 시네마 사진집단 ‘감마’의 창립자이자 저명한 다큐멘터리 작가 레이몽 드파르동의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파리 제10 지방법정에서 진행된 재판 심리 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이 법정의 ‘손님’들은 그리 심각한 범죄자들이 아니다. 친구들과 독주 한잔을 하고 집 근처에서 차를 몰다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남성이나 주차를 저지하는 교통단속원에게 ‘X년’이라고 말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된 남자, 불법 무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검문에 걸린 사람 등 고작해야 벌금형에서 집행유예 정도의 판결을 받을 피의자들이다(개중에는 전문 소매치기도 있다). ‘심리의 순간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은 소소한 사건들의 심리 과정을 세세하게, 그러나 건조하게 담아낸다. 피의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오가고, 판사가 법적인 해설을 하는 가운데, 개인들의 자그마한 일상들이 사법체계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과정이 슬쩍 비치기도 한다. 판사가 피의자에게 법조항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검사가 피고의 발언을 비꼬는 프랑스 법정의 풍경 또한 이채롭다. 영화적 재미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감당하기 힘들겠지만, 프랑스 사법시스템의 인간적인 측면에 관심있거나 아주 색다른 다큐멘터리를 원한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제4회 광주국제영화제 추천작 퍼레이드 [3]

<괴담> 시네마스코프의 탄생은 텔레비전의 상업적 도전에서 비롯됐다. 1950년대 들어서자 미국의 텔레비전 문화는 극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고, 할리우드는 그 타개책으로 영사화면의 크기와 비율을 혁신한다. 그중, 이십세기 폭스사에서 만들어진 2.35:1 비율의 시네마스코프는 곧 와이드스크린의 대명사가 되었다. 최초의 시네마스코프영화 <성의>(1953) 이후 할리우드는 주로 스펙터클 장르에 이 장치를 활용했다. 그래서 역사물, 전쟁영화, 서부영화, 뮤지컬, 코미디 등에 많이 사용됐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시작했지만 시네마스코프의 활용은 곧 미학에도 영감을 주었다. 이번 13편의 ‘와이드스크린 특별전’ 상영작들은 원초적인 영화보기의 감각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작가들이 그 기술과 조화를 이루었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이다. 프랑스의 비평가들이 추앙하기 전까지 그저 그런 상업영화 감독 정도로 여겨졌던 니콜라스 레이는 시네마스코프의 대단한 활용가였다. 이번 상영작 중 <실물보다 큰>(1956), <파티 걸>(1958)이 그의 작품이다. <실물보다 큰>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남자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이 약에 취해 점점 과대망상의 범죄자로 변해간다는 내용의 영화다. 니콜라스 레이는 세트 및 색채를 절묘하게 조화시켜 독창적인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만들어낸다. 한 변호사가 우연히 댄서를 만나게 되면서 점점 더 사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영화 <파티 걸>에서도 그 점은 빛을 발한다.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적 감수성과 필름누아르의 형식미를 함께 보여준다.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 <바람결에 씌어진> 등으로 고전적 멜로드라마의 한축을 만든 더글러스 서크의 영화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는 전쟁의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동시에 멜로드라마의 스토리를 담는다. 독일 병사 에른스트는 러시아와의 전쟁 중 겨우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집은 불타 없어진 지 오래다. 우연히 엘리자베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힘든 시대는 그들의 사랑을 쉽게 이루어지게 놔두지 않는다.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에 흠뻑 취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목록이다. 시네마스코프는 스펙터클 장르영화를 터전으로 삼은 할리우드 배경의 감독들에게만 유용했던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효시로 인정받는 <강박관념>(1942)으로 데뷔한 이후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드비히 2세> 등 치명적인 매혹의 화면을 만들어낸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에게도 시네마스코프는 유용한 장치였다. 이번 상영작 <레오파드>(1963)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19세기 국가통일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이탈리아 시실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의 힘에 밀려 점점 더 몰락해가는 귀족계급의 씁쓸한 마지막을 그려내기 위해 루키노 비스콘티는 꼼꼼하게 의상과 풍습 등을 재현해낸다. 유미주의적 역사극이 웅장한 화면 안에 담겨 있다. 한편, 일본 작품 두편 역시 눈길을 끈다. 2시간44분짜리 영화 고바야시 마사키의 <괴담>(1964)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일본의 괴담 4가지를 들려주면서 긴 러닝타임을 잊게 한다. 마치 귀신이 날아다니고, 피가 흐를 듯한 느낌을 주지만 원색의 이미지들과 기묘한 이야기 구성은 아름다움마저 선사한다. <괴담>은 기괴한 이야기들의 연쇄 속에서 미학을 발견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다. 고바야시 마사키의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또, 나루세 미키오의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 역시 매혹적인 화면을 선보인다. 나루세 미키오의 히로인이라고 불릴 만한 다카미네 히데코가 긴자거리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는 여주인공 게이코로 등장한다. 영화의 제목처럼 1960년대 일본의 사회 안으로 들어서는 여성의 전환기를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잡아낸다.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가장 섹시한 각선미’로 꼽혀

미국 영화배우 샤론 스톤(사진)이 영화 <원초적 본능>에서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리를 꼬는 장면이 영화 사상 '가장 섹시한 다리'를 보여준 장면으로 꼽혔다고 영국의 데일리 메일이 보도했다. 1일 데일리 메일 인터넷판에 따르면 비트 블레이드리스 레이저스가 6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설문에서 007 시리즈의 첫 작품인 <살인번호>에서 우르술라 안드레스가 바다에서 떠오르는 장면은 2위, 카메론 디아즈가 <마스크>에서 걸어가는 장면은 3위를 차지했다. 영화 <트로이>에서 다리가 노출된 치마 차림으로 나왔던 브래드 피트는 섹시한 다리 설문에서로 꼽힌 유일한 남성으로 4위에 올랐다. 러시아의 체조선수 스베틀라나 호르키나는 5위, 영화 <캣우먼>에 출연한 할리 베리는 6위를 차지했다. <프리티 우먼>에서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고 나왔던 줄리아 로버츠는 7위, 에서 지하철 송풍구에서 나오는 바람에 치마가 날리는 장면을 연출한 마릴린 먼로는 8위를 각각 차지했다. 또 <졸업>에서 로빈슨 부인 역을 맡았던 앤 밴크로프트는 9위, 영국의 록가수 로버트 파머의 곡 '사랑에 중독돼'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던 검은 드레스 차림의 여성 기타리스트들은 10위에 올랐다.

<안녕, 형아>, 사전 인터넷 펀드 모집

강제규&명필름의 영화 <안녕, 형아>가 시나리오 하나만으로 순제작비 전액을 인터넷 펀드로 모집한다. 이번에도 성공하면 2003년 <바람난 가족>에 이어 두번째로 100% 네티즌이 만드는 영화가 된다. 그러나 <안녕, 형아>는 <바람난 가족>과 경우가 다르다. <바람난 가족>이 완성된 영화의 시사회를 거쳐 펀드를 모집한 반면, <안녕, 형아>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시나리오만을 공개한 상태에서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바람난 가족>의 펀드 운영으로 자신감을 얻은 명필름이 야심차게 도전한 프로젝트. <바람난 가족>은 제작을 완료한 시점에서 순제작비의 일부분을 네티즌 펀드로 충당할 계획이었으나 1차 5억 원이 불과 몇 분 만에 모집되는 뜨거운 호응으로, 결국 3차까지 진행, 20억 원의 순제작비를 모두 네티즌 펀드로 채웠다. 이에 앞서 명필름은 1999년 <해피엔드>에서 마케팅비의 일부를 네티즌 펀드로 모집하는 데 성공하면서 네티즌 펀드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 <안녕, 형아>의 순제작비는 19억5천만 원. 펀드는 두 차례에 나눠 실시될 예정이며, 목표액 10억 원의 1차 모집은 오는 14일 오전 10시, 9억5천만원 목표의 2차 펀드는 16일 오전 10시에 각각 개시된다. 원금보장성 펀드(80%)와 극장 관객수에 따른 수익배분(손익분기점인 전국 관객 115만 초과시 1인당 0.8원 수익 계산)의 방식으로 운영되며 선착순 마감한다. 이를 위해 제작사는 먼저 오는 7일부터 <안녕, 형아>의 시나리오를 ㈜MK버팔로 홈페이지(www.mkbuffalo.com/hifund)를 통해 공개한다. 10월 크랭크 인 예정인 <안녕, 형아>는 소아암에 걸린 형의 모습을 철부지 9살 동생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로 실화에 기반하고 있다. 주인공에는 SBS <완전한 사랑>에서 김희애의 아들 역을 맡았던 아역 탤런트 박지빈이 캐스팅됐으며, 박원상과 배종옥이 부모로 출연한다. (서울=연합뉴스)

[팝콘&콜라]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누구와 함께 볼 것인가

주중에 매일 있다시피한 시사회에 다니다 보니 혼자 극장에 간다고 어색하다거나 불편하지 않은 게 한참 됐다. 그럼에도 ‘업무상’이 아닌 ‘일반’관객으로 ‘나 홀로’ 극장에 가는 일에는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된다. 자립적이지도 못하고 촌스러운 나의 영화 관람 버릇 혹은 취향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함께 극장을 가는 건 단순히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재미와 긴장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두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상대방의 취향 뿐 아니라 습관과 인간성, 좀 거창하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세계관까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나는 두번째 쯤의 데이트 때는 꼭 극장에 가 상대방을 ‘점검’해 보곤 했다. 일단 무슨 영화를 볼까 정할 때, 이미 앞의 질문에 대한 답안지의 1/3 정도는 메워진다. <살인의 추억>이나 <스파이더 맨>같은 영화가 늘 상영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극장 앞, 또는 극장예약을 앞둔 전화통화에서 두 사람은 잠시 협상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홍상수가 영화감독인지 소설가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보러가야겠어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날 <러브 액추얼리>를 보자는 ‘타협가능한’ 제안에 한사코 <실미도>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과의 두 시간이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지루할 건 뻔한 일이다. <화양연화>(사진)를 보며 량차오웨이의 눈동자에 빠져 한참 허우적대고 있는데 옆에서 ‘도로롱’ 소리가 나도록 코를 고는 모습도 한심하지만 “그러게 바람은 왜 피우냐”면서 깨는 추임새를 넣어대는 사람과는 영화가 끝난 뒤 서로 다른 문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싸인>을 보면서 잔뜩 긴장해 있는데 갑자기 손을 덥석 잡아 때 아닌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극장을 나오자마자 악수하고 헤어지는 게 좋다. 영화가 끝났다고 모든 평가가 마무리 되는 건 아니다. 나부터 영화가 끝나면 “재미있다”, “별로네”라는 말밖에 안하는 별 볼일 없는 파트너지만 가장 좋은 건 느낌이 다르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순전히 만남을 끝장내기 위해 나 역시 ‘예술영화’쪽에는 젬병인 주제에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러 간 다음 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데면데면했던 상대방과 많이 친해졌던 경험이 있다. 단 <봄날은 간다>를 보고 나서 주인공이 이영애냐, 유지태냐를 가지고 벌이는 한심한 논쟁 같은 거라면 영 아니겠지만 말이다. 옆구리 허전해지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즈음 독자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극장에 갈 계획인지….

절절한 치요코의 사랑, <천년여우> 千年女優

그간의 작품을 통해 곤 사토시 감독은 현실과 환상을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하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왔다. 이것은 단지 스토리뿐만 아니라 작업 스타일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돌의 율동을 로토스코핑으로 그려낸 <퍼펙트 블루>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다큐적 영상의 <천년여우>, 극도로 디테일한 멀티 레이어에 실제 로케이션을 배경화면으로 사용한 <동경대부>를 통하여 감독은 비현실적 제작방식인 애니메이션으로 현실적인 영상들을 담아왔던 것이다. 데뷔작에 이어 여배우를 다시 소재로 사용한 <천년여우>에는 오직 사랑하는 한 사람의 관객만을 위하여 70년간 연기를 펼쳐온 치요코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보고 있자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프란체스카보다 그 사연이 더 절절하다. 그녀의 사랑은 비현실적이지만 세상 어디에선가 꼭 존재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끔 한다. <천년여우>는 그녀의 남자가 보름달보다 좋아한다 말했던 14일째의 달과도 같다. 완성없는 치요코의 사랑은 슬프지만 16일째를 맞이해야만 하는 보름달의 운명처럼 기울어짐이 없기에 아름답게 보인다. 한국어 채널이 담겼는데 일본어 5.1 채널로 감상하길 권한다. 다치바나 겐야 역을 담당한 성우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41분 분량의 메이킹 다큐는 일본의 경우 고가의 한정판 DVD에만 수록되었던 것인데 치요코에 대한 실제 다큐처럼 정성스레 기획·제작되었다. 화질은 <퍼펙트 블루>보다 많이 향상되었는데 디테일감이 미세하게 떨어지는 것을 제외하곤 일본판과 차이점을 구분하기 힘들다. <천년여우>와는 달리,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적들과 함께 보름달 마냥 꽉 찬 가족애를 보여주는 <동경대부> DVD도 곧 국내에서 발매되길 기대해본다.

중반 접어든 베니스영화제, 파격과 전통의 조화

중반 터닝 포인트 통과를 앞둔 제61회 베니스 영화제가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난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비난의 주된 내용은 장소만 옮겼을 뿐 할리우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영화제 안팎에서 스타 중심의 영화제에 항의하는 움직임도 있고, 경쟁부문 상영작 중 몇작품이 수준이하라는 혹평도 있지만 올해부터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신임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는 대중의 관심을 고조시켰고 비교적 고르게 수준이 높은 작품들을 초청했다는 호평도 듣고 있다. (사진은 개막작 <터미널>로 베니스를 찾은 스필버그 감독, 왼쪽 뒤편에 톰 행크스도 보인다) 영화제 개막 후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을 경쟁부문에 초청하는 파격을 시도한 것도 정체된 느낌의 영화제에는 활력을 주는 요소. 대거 참석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이들을 보려 몰려든 팬들의 함성으로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은 전례없이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스칼렛 요한슨 기자회견 중 애정 고백 받아 "어쩔 수 없이 말해야겠습니다. 당신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톰 행크스,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 덴젤 워싱턴, 스파이크 리 등 초반 영화제를 찾은 많은 스타가 사인 공세에 시달리고 있지만 노골적 애정 공세를 받은 배우는 스칼렛 요한슨가 유일했다. 한국 팬들에게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여주인공으로 알려진 스칼렛 요한슨은 영화제 심사위원과 비경쟁부문 초청작 <바비 롱의 러브송>의 주연 여배우 자격으로 베네치아를 방문 중이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영화제 이틀째인 2일 오전 <바비 롱의 러브송> 기자회견장. 칠레 출신이라고 밝힌 한 기자는 "당신은 실물이 영화에서보다 훨씬 예쁘다. 당신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 나는 사실 기자이면서 배우인데 혹시 같이 연기했으면 좋았을 법한 영화를 얘기해 줄수 있느냐?"고 물었고 장내는 이내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후 한동안 말문을 잃었던 스칼렛 요한슨은 곧 냉정을 되찾고 재치있는 답변을 건넸다. 그가 답변으로 말한 영화는 <위험한 독신녀>(Single White Female). 룸메이트가 스토커의 집착을 보이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는 내용의 공포영화다. ▶<아웃 투 시>, 호평 아직 절반 이상의 상영작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초반 상영작 중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아웃 투 시>(Out to Sea)와 유럽 영화계의 악동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가 가장 많은 박수를 받고 있다. <아웃 투 시>는 민감한 문제인 안락사를 다룬 영화. 선원 출신으로 불구가 된 후 29년간 '자살할 권리'를 주장하다가 결국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락사를 한 실존 인물 라몬 삼페드로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품 자체로 환호를 받은 것 외에도 영화는 최근 게이임을 밝힌 감독의 커밍 아웃과 <하몽하몽> 출연으로 섹시 스타 이미지가 강한 남자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의 연기 변신 등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밖에 별거 중인 부부의 다섯 가지 결정적인 순간을 역순으로 보여주는 도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을 연상시킨다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테러 위협, 영화제 일시 중단되기도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영화제 초반 폭탄이 숨겨져 있다는 협박전화가 걸려오는 바람에 한동안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의 배 터미널 운행이 중지되기도 했다. 한편 영화제 주상영관인 아르 데코 앞의 레드 카펫에서는 반세계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은 영화제가 거대 예산의 미국 블록버스터 위주로 꾸며졌고 티켓 값도 비싸다는 것. 영화제의 티켓은 8유로(약 9천300원)에서 30유로(약 3만4천900원) 정도로 일반 극장의 요금보다는 훨씬 비싼 편이다. ▶개막작 <터미널>은 함량미달? 개막작으로 상영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터미널>을 둘러싸고 현지 평론가들이나 영화제 안팎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처음 입을 연 사람은 영화제 개막을 석 달 앞두고 집행위원장 자리에서 떠났던 디터 코슬릭. 그는 영화제를 앞두고 한 이탈리아 주간지 인터뷰에서 "<터미널>이 미국에서 개봉한 지 두달 이상이나 되는 등 개막작으로 맞지 않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으며 개막작 상영 후에도 비평가들은 "가식적이다", "현실성이 없다", "'감독이 9·11 이후 더욱 경직된 미국 사회에 대한 은유'라고 말하고 있지만 테러 공격에 대한 언급은 영화 어디에도 없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고 있다. ▶한국 영화 '그랜드 슬램' 이뤄낼까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 경쟁부문(Venezia61)에서 상영되는 22번째 영화로 '깜짝' 선정됨에 따라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는 한국-홍콩-일본 합작 영화인 <쓰리, 몬스터>와 앞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임권택 감독의 <하류 인생>까지 세 편이 됐다. 한국 영화의 상영은 6일 오전(현지시각) <쓰리, 몬스터>의 기자 시사회를 시작으로 잇따를 예정이다.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은 같은 날 밤 10시와 다음날 오후 7시 15분에 공개되며 <하류인생>은 폐막에 임박한 10일 기자회견과 공식 상영을 갖는다. 이례적인 깜짝 초청이나 거장의 이름 값에 대한 기대치를 더한다면 경쟁부문에 오른 두 한국 영화 중 수상작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그다지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이미 올 들어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과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한 한국 영화계가 베니스 영화제마저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면 한 해에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하는 쾌거를 이루는 셈이다. 하지만 초반에 좋은 관객 반응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미야자키 하야오)과 <아웃 투 시>를 비롯해 거장 빔벤더스의 복귀작 <플렌티 오브 더 랜드>(Plenty of the Land) 등 쟁쟁한 작품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일단 뚜껑을 열 때까지는 한국 영화 수상 가능성을 속단할 수 없다. 올해 영화제의 심사위원은 위원장 존 부어맨 감독과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 볼프강 베케르 감독, 스파이크 리 감독 등. 부어맨 감독은 영화제 개막과 함께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름다움(Beauty)과 긴장(Tension), 독창성(Originality)을 심사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베니스 영화제는 11일 오후 수상작을 발표하며 폐막한다. (베네치아=연합뉴스)

올 여름 극장가의 승자는 한국 영화

8월 한달간 점유율 58.6% 한국 영화 위기론은 섣부른 우려일까? 8월 한달간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6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0년 이후 7월이나 8월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50%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멀티플렉스 극장망 CJ CGV가 3일 발표한 '8월 영화산업분석'에 따르면 서울지역 기준 8월 한국 영화의 점유율은 7월보다 15% 포인트 가량 높아진 58.6%였다. 이는 지난해 8월과 비교해도 12.4% 포인트 증가한 수치.(사진은 8월 흥행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바람의 파이터>) 전통적으로 여름 성수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강세를 이루는 시기. 하지만 7~8월 한국영화의 점유율도 51%를 기록해 여름 극장의 관객 두명 중 한명 이상은 한국 영화의 관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여름 극장가의 한국 영화 강세로 8월까지 올해 통산 한국영화의 점유율도 58.8%를 나타냈다.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중급 규모의 흥행작이 잇따라 나타났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CGV측은 "8월의 흥행작은 성수기의 월간 흥행작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듯한 서울 30만~50만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한 영화들"이라며 "예년과 다르게 다양한 중급 흥행작들이 모여 성수기 시장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한편 8월의 서울지역 관객 수는 502만1천295명, 전국 관객은 1천551만6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21.4%와 29.1%의 증가세를 보였다. 8월까지 전국 관객 누계는 9천983만3천170명으로 9월 초 올해 1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한해 통산 관객이 처음 1억명을 넘어선 것은 2년 전인 2002년. 보고서는 올해 통산 관객이 1억5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8월 흥행 순위 '톱 10' 중 한국 영화는 <바람의 파이터>(1위), <시실리 2㎞>(3위), <알 포인트>(5위), <신부수업>(6위), <분신사바>(7위), <누구나 비밀은 있다>(8위), <늑대의 유혹>(9위) 등 일곱 편. 배급사별 점유율은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20세기폭스, 시네마서비스, 청어람 순으로 높았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