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짓궂게도 장선우 감독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옮겨오면서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 첫째 구멍, 둘째 구멍, 셋째 구멍이란 원작에 없는 중간제목을 붙였다. 논란과 대결을 의도한 장정일의 말썽 많은 원작에 장선우는 자기식의 방점을 찍어 각색한 것이다. ‘구멍’의 물리적 의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난 너의 세 구멍과 전부 하고 싶어.” J라는 남자는 아예 구멍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그는 불편하다. 그곳은 모두 ‘거짓말’이다. 여관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별로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는데, J는 굳이 여관만 전전한다. 그것도 땟국물 전 이불과 값싼 조명이 달린 눅눅한 여관만.
그러고 보면 여관도 구멍이다. 그곳에서의 습한 기억을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만, 짐짓 보이지 않는 척하는 그래서 세상에는 없는 척하는, 세상의 구멍이다. 장선우 감독은 <우묵배미의 사랑>과 <경마장 가는 길>에
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 <거짓말>
-
필립의 아버지가 아랑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1999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사실 그분은 한때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급 사업가로,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였던 필립 때문에 몇번 뵙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신분의 사람이다. 그런데 그분이 난데없는 부탁을 해왔다. 필립이 여행을 가는데 같이 가줄 수 없겠냐는 것이다. 아랑과 필립은 고등학교 때야 건들거리며 노느라고 어울리긴 했지만, 졸업 후에는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지내왔다. 둘 다 변변한 대학에 들어갈 재주는 없었지만, 서로의 처지는 전혀 딴판이었다. 돈도 ‘빽’도 없는 아랑이 남은 불알 두쪽으로 군대에 갔고, 필립은 든든한 아버지 덕분에 미국으로 도피 유학을 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없는 형편에 새 천년 동해 일출 구경이라니. 아랑은 그저 횡재거니 하고 필립의 집으로 찾아갔다. 필립과 아버지는 벌써 문 앞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있었다. “아버지, 제가 몇살이에요. 제발 좀 그만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태양은 아득히(상)
-
스크린쿼터 내줘야 하나?
한국영화 점유율 40% 육박
12월22일 현재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36.7%. 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이 잠정 집계한 수치다. 한국영화는 지금 “이러다간 ‘우리 스스로 스크린쿼터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그냥 웃어넘겨버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영화인들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올해 점유율이 4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4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적인 성장임은 분명하다. 지난 9월 말 35.3%에 비해서도 1.4% 늘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오차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최종 점유율은 35∼39% 정도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점유율이 93년 15.9%에서 94년 20.5%, 95년 20.9%, 96년 23.1%, 97년 25.5%로 꾸준히 늘었으며
1999년 한국영화 결산 [4] - 99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
한국의 뉴웨이브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이장호-배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인 88년, 세 젊은 감독의 등장이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장선우, 박광수는 그때까지 한국영화사에 등재되지 않았던 사회적 리얼리즘의 깃발을 들었다. 전통적 영화어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이들은 데뷔작에서부터 영화를 당대 현실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장선우는 <성공시대>로 한국 자본주의의 폐부를 건드렸고,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로 도시빈민, 장기수 같은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90년에 나온 두 사람의 두 번째 작품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과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은 지금도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각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작. 한국 뉴웨이브로 불리게 된 이들과 다소 떨어진 자리에서 제3의 인물 이명세가 <개그맨>으로 외롭게 데뷔했다. 영화가 개인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굳게 믿는 이 영화광은 영화 형식을 본격적으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3] - 90년대 한국영화 10대 사건
-
-
올해의 영화 베스트 - 감독·프로듀서·배우 부문
감독/ 이명세
99년은 80년대 말 한국영화의 수평선에 새 물결을 일으켰던 세 기수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가 ‘여행’에서 돌아온 해였다. 그리고 셋 중 가장 행복한 귀환의 주인공은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였다. 복귀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그는 장르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명세 상’을 부수는 전략을 통해 더욱 철저히 이명세다워지는 길을 택했다. 전작들에서 동화의 나라를 외로이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카메라는 짐승처럼 쫓고 쫓기는 거친 사내들의 세계에서 뜻밖의 안착지를 찾았다. 하나의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미지는 단 하나라고 믿는 순결주의자의 집요한 시선은, 추적자와 도망자의 타오르는 집념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관객도 ‘광장’으로 나온 그의 장인정신에 따뜻하게 화답했다. 이명세 감독이 세기 끄트머리에서 맞이한 ‘쨍하고 해뜰 날’은 99년 한국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1999년 한국영화 결산 [2] - 올해의 영화인
-
한국영화 제작편수 50편, 관객 점유율 36.7%(12월22일 현재). 한 세기가 저물어가는 1999년 세밑의 한국영화 결산표의 차변과 대변이다. 지난해보다 제작편수는 불과 3편 늘었지만 점유율은 무려 95% 이상 성장했다. 이런 수치에는 <쉬리>의 폭발적인 흥행 등으로 약간의 거품과 허수가 묻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와 영화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새 천년으로 질주하는 한국영화의 내일에 기대를 가져도 될 법 하다.
1999-2000 네 번째 특집은 ‘한국영화 폭발’이다. 90년대 한국영화계 10대 사건과 올해 한국영화계 10대 사건을 짚어보고 올해의 영화·영화인을 뽑았다.
올해의 영화·영화인 선정위원은 <씨네21> 20자평 필자·영화전문 필자, <씨네21> 객원기자와 기자로 구성했다. 선정부문은 ‘올해의 영화 베스트5’와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촬영, 남자배우, 여자배우 ‘올해의 영화인’ 6개 부문을 나눠 뽑았다. 선정위원들에게 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1] - 올해의 영화
-
조용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의 청춘스타 에드워드 노튼이 샐마 헤이엑과 사귀고 있다는 소식. <뉴욕 데일리>는 몇달 전부터 두 사람이 교제를 계속해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고, 일절 함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여부야 어찌됐든, 주위에선 성격차이로 커트니 러브, 카메론 디아즈 등과 연달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샐마 헤이엑과 염문을 뿌리는 노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노튼의 세 번째 여자는 샐마 헤이엑
-
<노랑머리>와 <세기말>로 어엿한 연기자의 대열에 들어선 이재은이 이번엔 뮤지컬 무대에 선다. 노랑머리 유나, 세기말의 소령을 거쳐 그가 이번에 맡게 될 역할은 캐시라는 이름의 개. 개들의 사랑을 그릴 예정이라는 뮤지컬 <황구도>를 쉽게 얕볼 일은 아닌 듯. 이유는 개들의 사랑보다 한참 아래에 인간의 사랑이 놓여지니까. 12월29일부터 공연될 예정이며, <주유소 습격사건>의 ‘딴따라’ 강성진도 출연한다.
이재은, 뮤지컬 무대로 간다
-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감독은? 올해 개봉 영화를 샅샅이 뒤져 감독 이름을 체크해봐도 정답은 없다. 미국 영화편집인 협회(아메리칸 시네마 에디터즈)에서 뽑은 올해의 영화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타이타닉> 이후 2년 동안 후속작이 없었던 그에게 ‘올해’의 감독상을 수여하는 건 어색하지만, 가라앉은 ‘타이타닉’을 끌어올려 ‘보물선’으로 만든 '의지의 미국인'에 대한 경배 열기는 아직 식지 않은 모양.
미국 영화편집인 협회 선정 올해의 영화감독은 제임스 카메론
-
“컴백 홈, 오버.” 이정현(19)이 드디어 OK답신을 보냈다. 테크노 가수에 몰두하는 동안 ‘부재중’ 메시지만을 남겨두었던 이정현이 영화 <제4교실>에 주연으로 캐스팅된 것. 이정현이 맡게 될 역할은 같은 반 친구를 ‘왕따’시켜 결국은 자살하게 만드는 악녀. 96년 <꽃잎>으로 데뷔해 영평상을 비롯한 주요 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을 휩쓸었던 이정현은 그동안 주로 방송에 출연해왔다. <제4교실>(미라신코리아 제작)은 새해 1월,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이정현, 영화 <제4교실>로 컴백
-
안성기와 박신양이 동반 등정을 시작했다. 12월12일 크랭크인한 영화 <킬리만자로>에서 박신양은 해식과 해철이라는 두 인물을, 안성기는 번개 역을 맡았다. 쌍둥이로 태어나 똑같은 얼굴이지만 정반대의 성격으로 결국엔 서로의 꼬리를 물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형사 해식과 깡패 해철이 박신양이 짊어지고 올라야 할 인물. 시나리오를 건네받고서 제작진에 먼저 연락할만큼 적극적이었다는 후문. 안성기가 맡고 있는 ‘번개’는 40살의 남자로 과거 주문진에서 해철과 함께 날리던 주먹이었으나 배신자라는 낙인으로 말미암아 예전의 부하들에게 시달리는 인물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의 연기 변신에 환호했던 영화팬이라면 이 영화의 번개에게도 관심을 접기 힘들듯. 우노필름이 제작하고 제일제당이 배급하는 이 영화는 1월 중순까지 서울 촬영을 마친 다음, 주문진으로 현장을 옮길 예정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를 썼던 오승욱 감독의 데뷔작으로, 20
<킬리만자로>에 캐스팅 된 안성기·박신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