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행복의 나라>는 역사물인 한편 꽤 진지한 법정물이며, 역사와 법에 관한 여러 논점을 제시한다. 위 논점에 하나씩 답해보며 위 영화가 다루는 역사와 법에 대해 살펴본다.
정치재판과 인권변호사의 역사
한국에 근대적 재판제도가 도입된 이래 정치재판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판에서부터, 독립 이후에는 독재정권에 의한 정치재판 및 판결로 ①여순사건 민간인 사형 판결(1948년)(2019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②진보당 조봉암 사형 판결(1959년)(2011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③인민혁명당 사건 사형 판결(제1차 1964년, 제2차 1975년)(2005년 재심에서 무죄 선고)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영화 <행복의 나라>는 그중 10·26 사건의 박흥주 대령에 대한 재판 및 사형 판결(1979년)을 다룬다.
한국 정치재판의 역사와 함께 인권변호사의 역사도 유구하다. 이들은 법률가로서 취할 수 있던 부와 권력을 마다하고, 그 반대편에서
가능성이 0에 가깝더라도, 변호사의 눈으로 본 영화 <행복의 나라>
-
- <행복의 나라>는 <광해, 왕이 된 남자>보다 이전에 존재했던 프로젝트라고.
=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마치고 NEW에서 숨겨둔 보석 같은 시나리오가 있다며 제안해줬다. 당시 시나리오는 좋았지만 내가 직접 연출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아서 고사했다. 시간이 흘러 <7년의 밤>을 마치고 이런저런 업계 사람들을 만날 때쯤 이 시나리오가 다시 생각났다. 당시 NEW와 사석에서 만난 자리에서 <행복의 나라>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지금은 묵힌 시나리오가 됐다고 하더라. 내가 시나리오를 한번 고쳐볼 테니 다시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각색된 시나리오를 보고 조정석 배우가 합류했다. 주연배우가 붙으면서 투자도 진행됐다.
- 각색하면서 바뀐 부분은 무엇인가.
= 조정석이 연기한 정인후 변호사의 캐릭터가 부각됐다. 당시 30명 가까이 되는 인권변호사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는데 그들의 사연을 정인후 캐릭터에
[인터뷰]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물밑에서 움직이는 대중이다, <행복의 나라> 추창민 감독
-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는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이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며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당시 법원은 논픽션 다큐멘터리에 해당하는 세 장면을 삭제 후 상영 결정을 내렸다. 이에 제작사 (주)MK픽처스측은 가처분 이의 신청소송을, 박지만씨측은 영화상영금지 및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3년에 이르는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1심에서 법원은 가처분 결정을 취소하는 대신 피고(제작사 MK픽처스)가 원고(박지만)에게 명예훼손 배상금 1억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당시 한국독립영화협회,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인회의 등 4개 영화 단체는 해당 판결이 또 다른 사법검열이자 정치 판결이라고 주장하는 성명서를 냈다. 양측 모두가 항소하며 진행된 2심 조정에서 법원은 1. <그때 그사람들> 상영 시 시작 부분에 ‘이 영화는 역사의 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부사항과 등장인
실패의 역사를 다루는 또 하나의 방법, 실화 바탕으로 하는 <행복의 나라>가 법정물의 장르 문법을 통해 시도하고 성공한 것
-
<행복의 나라>는 1979년 10·26 사건과 12·12 군사반란 그 사이, 법정에서 일어난 또 다른 분투를 다룬다. 대통령 시해 사건에 연루된 중앙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이선균)의 변호를 맡은 정인후(조정석)는 원래 속물적인 목적을 품고 접근했지만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를 진심으로 변호하게 된다. 하지만 함동수사단장 전상두(유재명)가 재판부에 실시간으로 개입하면서 이들의 재판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서울의 봄>에 이르기까지, 특히 1970~80년대 한국 근현대사를 조명한 영화들이 최근 연달아 기획되고 있지만 <행복의 나라>는 법정물의 구조를 취한다는 점에서 다른 위치를 점한다. 이번 특집에서는 다양한 각도에서 <행복의 나라>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획을 준비해보았다. 법조인의 입장에서 <행복의 나라>를 읽은 글은 영화에 등장하는 법정 쟁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명쾌하게 해설해준다. 추창민
[특집] 한국 법정물의 새로운 진화, <행복의 나라>
-
-
이병현 당선자는 신인이 아니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에 당선된 후 2023년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에도 수상했다. 올해 <씨네21> 영화평론상까지 받으면 이른바 3관 수상이다. 올해 초에는 단독비평집 <영화가 거기 있으니까>도 출간했으니 그야말로 왕성히 활동 중인 젊은 평론가라고 할 만하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한 결핍과 목마름으로 글을 쓴다. 지면과 독자를 찾아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는 이병현 평론가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에서 영화비평을 쓴다는 일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라는 그의 다짐은 어떤 계획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 이미 두 차례 평론부문에 당선됐는데, 올해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다시 응모한 이유가 궁금하다.
=3이 길한 숫자니까. (웃음) 농담이고, 2019년에 등단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개점 휴업 상태였다. 고정적인 지면이 없었
[인터뷰] 계속 쓰기로 결심했다, 우수상 당선자 이병현
-
스티븐 스필버그는 2021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개봉 당시 가진 인터뷰에서, 이제 자신이 다루지 않은 유일한 장르가 바로 ‘서부극’이라며, 언젠가 그 장르를 다룰 수도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스파이 브릿지> 프로모션 인터뷰에서는 ‘히어로물’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우리는 서부극(웨스턴) 장르가 죽은 시대에 살고 있다. 서부극이 쇠락의 길을 걸었듯이 슈퍼히어로 무비도 서부극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만일 스필버그가 서부극을 찍겠다고 결심한다면, 그것은 ‘죽은 장르를 찍겠다’는 결심일 수밖에 없다.
‘죽은 자식 눈 열어보기’만큼이나 쓸데없는 일이 ‘쇠락한 장르 찍기’ 아닐까? 감독이 장르 수집가도 아니고, 찍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꼭 도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미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영화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코언 형제(&l
[우수상 당선자 이병현 이론비평] 스필버그는 왜 열린 지평선을 찍지 못하는가?, 아메리칸 시네마와 그 감독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카메라는 인간의 시점숏을 피한다. 인간의 시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흔들림 없이 트래킹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별안간 자동차 후면이나 땅 와사비, 죽은 사슴의 시점을 취하는 숏까지. 마치 인간의 시점숏을 제외한 다른 모든 시점을 취하려는 것처럼 하마구치 류스케는 찍어나간다. 따라서 온갖 시점을 동원하는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작품이 그토록 기피하던 인간의 시점으로 추정되는 장면이 나올 때다.
영화는 어른들이 치열하게 글램핑장 건설 관련 논의를 하는 와중에 전날 밤 꿩 깃털을 줍는 꿈을 꾼 하나가 낮에 또 혼자서 꿩 깃털을 주우러 가는 장면을 은근슬쩍 끼워 넣는다. 여기서 하나는 사슴 발자국을 따라 들판으로 향한 후 하늘을 나는 맹금류와 같은 방향으로 달려 나가 꿩 깃털을 줍는다. 이 장면은 사슴 발자국을 내려다보며 걸어가는 하나의 시점으로 시작한다. 전형적인 핸드헬드 기법으로 찍혔고, 헉헉거리는 숨소리와 눈 밟는 소리가 카메
[우수상 당선자 이병현 작품비평] 카메라만이 답을 알고 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인간의 눈을 빌릴 때
-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이렇게 말하면 그저 바라기만 하면 이뤄지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간절함은 그 자체로 강력한 에너지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가만히 있지 못한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문장 사이사이엔 부지런히 목표에 다가가는 과정의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문주화 당선자의 차분한 말투와 정돈된 글에는 그런 간절함의 에너지가 들끓고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씨네21> 영화평론상의 문을 두드렸던 문주화 당선자는 인터뷰를 시작하자, 올해도 낙선인 줄 알고 이미 내년도에 응모할 원고를 구상 중이었다고 수줍게 입을 열었다. 부지런함과 끈기는 마침내 번뜩이는 통찰로 이어진다.
- 당선을 축하드린다.
= 사실 문자를 받기 약 2시간 전까지 ‘지금쯤, 수상자들에게 개별 연락이 갔을 텐데’라고 지레짐작하고, 내년에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써야지 하는 생각으로 <씨네21>에 실린 여러 글들을 읽어보고 있었다. 문자를 확인한 뒤 길
[인터뷰] 아름다운 순간들을 나누겠다, 우수상 당선자 문주화
-
1967년 기 드보르는 “산업국가의 프롤레타리아는 독립적인 미래에 대한 확신과 종국에는 자신의 환상을 완전히 상실하지만, 자신의 존재는 망각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는 제거되지 않았다”며 스펙터클의 사회를 향해 외쳤다. 그리고 2023년,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피로 얼룩진 지금의 세상에 필요한 것은 사랑 이야기인 것 같았다”는 낭만적 고백이자 매니페스토적 발언과 함께 은퇴를 번복하고 돌아왔다. 빛을 다한 고엽(fallen leaves)을 가지고 온 노장의 복귀는 우리로 하여금 그가 선명하게 남겼던 두개의 영화적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는 프롤레타리아 3부작으로 엮이는 <천국의 그림자> <아리엘> <성냥공장 소녀> 안에서 공명하고 있는 소외된 계급층의 시간이다. 이것을 기 드보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환상은 탈각되었으나 절멸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는 유령들에 대한 시간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은퇴작으로 명명했던 <희망의 건너편>
[우수상 당선자 문주화 이론비평] 비극의 시대에 불시착한 초상들에 대한 우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중심으로
-
세계를 화해시키는 힘 -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미야케 쇼의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의 마지막 장면을 반드시 복기해야만 한다. 영화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치코의 정면 얼굴을 한동안 응시하며 끝났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 영화의 끝은, 사치코의 시선이 머물렀을, 그러나 외화면에만 존재하므로 우리에게는 상상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나’의 얼굴이다. ‘나’는 숫자를 세는 동안 누군가 자신에게 먼저 와주기만을 바랐던 그동안의 세계를 막 깨고 나와, 멀어져가는 사치코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그녀를 돌려세웠다. 나란히 걷거나, 몸을 포개거나, 혹은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위태로우면서도 불안한 하나로 부대끼던 둘은 마침내 서로의 세계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영화는 닫히기 직전이었던 두 사람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나’와 ‘나 아닌 사람’이라는 두개의 세계를 화해시키고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
[우수상 당선자 문주화 작품비평] 세계를 화해시키는 힘,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
제29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심사 결과 올해도 최우수상 없이 2명의 우수상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 총 58편의 응모작 중 12편을 최종 심사했고, 김병규, 정지혜 영화평론가와 함께 심사를 맡았다. 27, 28회에 이어 3년째 최우수상을 내지 못한 건 단지 눈에 띄는 글이 없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내밀한 검토가 필요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질문과 비평적 과제 설정”이 부족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개별 영화에 대한 관찰과 성실한 분석이 돋보이는 글들은 많았지만 왜 지금, 그 영화를 읽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거시적인 질문이 삭제된 글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다소 거칠더라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글에 무게를 싣고 전체적인 심사를 진행했다.
이병현씨의 이론비평 ‘스필버그는 왜 지평선을 찍지 못하는가’는 질문으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서부극의 세계를 연결시켰다. 영화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질문이 흥미로웠고
[기획] "새로운 비평의 지평을 열다", 제 29회 <씨네21> 영화평론상 심사평 - 우수상 문주화, 이병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