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너 정말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 “네?” “니가 그렇게 썼잖아, 일기장에.” 1987년 4월
공포에 질린 운동권 피의자 박명식과 능숙한 고문형사 김영호가 마주한 고문실. 그리고 전혀 엉뚱한 질문. 가학적이고 악랄한 형사, 평범한 서민 가장의 두 얼굴 사이에 김영호는 첫사랑에의 그리움을 아주 짧지만 진하게 드러낸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리를 전다.
=나는 관객이 여기 와선 김영호에게 동화되기를 바랐다. 최소한 연민은 가기를 원했다. 그런데 가장 악랄하기도 해야 한다. 이때부터 내가 너무 힘들어졌다. <초록물고기> 때는 나는 이야기를 빠져나와서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빨려들어가 있었다. 특히 4번째 장에선 괴롭고 힘들었다.
-김영호가 박명식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그냥 징그럽고 끔찍하다. 왜 그렇게 찍었나.
=그 장면 찍기 전날 잠을 못 이루고 내내 악몽만 꿨다. 힘들었지만 그날은 특히 그랬다. 나는 이 장면은 이야기의 맥락보다 고통의
이창동을 만나다 [2]
-
이창동 감독은 느리다. 말도 느리고, 동작도 느리다. 정신도 느린 것 같다. 1980년대 중반에 소설가 생활을 시작했는데, 아직 90년대에도 도착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동료들이 왕창 빠져나간 지 오랜인데도 이창동은 어쩐지 80년대를 서성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의 두 번째 영화 <박하사탕>은 심지어 거꾸로 간다. 김영호라는 사내의 20년사를 일곱 토막 내어, 시간의 역순으로 배치했다. 맨 마지막 장면은 1979년, 그의 나이 스무살 시절의 어떤 하루다. 속도의 계율을 아예 걷어차내는 짓인데도, 이창동은 “첫사랑의 순수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랬다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누군들 첫사랑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젖지 않으랴. 하지만, <박하사탕>을 통해서 그곳에 이르는 건 심란함을 각오해야 한다. 본래 맑고 착했던 청년이 완전히 부서지는 과정을, 그것도 역순으로 목격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가슴아픈 일이다. 더구나 이 여정에는 한국 땅에서 살아온 사람이면
이창동을 만나다 [1]
-
스크린쿼터 내줘야 하나?
한국영화 점유율 40% 육박
12월22일 현재 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36.7%. 문화부와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이 잠정 집계한 수치다. 한국영화는 지금 “이러다간 ‘우리 스스로 스크린쿼터를 내줘야 할지 모른다’는 말을 그냥 웃어넘겨버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됐다. 그동안 정부는 물론 영화인들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올해 점유율이 40%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40%를 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적인 성장임은 분명하다. 지난 9월 말 35.3%에 비해서도 1.4% 늘었다. 정확한 통계가 아니라 오차가 생길 수도 있지만 이런 추세라면 연말까지 최종 점유율은 35∼39% 정도로 추정된다. 그동안 한국영화는 점유율이 93년 15.9%에서 94년 20.5%, 95년 20.9%, 96년 23.1%, 97년 25.5%로 꾸준히 늘었으며
1999년 한국영화 결산 [4] - 99년 한국영화 10대 사건
-
한국의 뉴웨이브
장선우, 박광수, 이명세
이장호-배창호의 시대가 막을 내릴 무렵인 88년, 세 젊은 감독의 등장이 한국영화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장선우, 박광수는 그때까지 한국영화사에 등재되지 않았던 사회적 리얼리즘의 깃발을 들었다. 전통적 영화어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면서도, 이들은 데뷔작에서부터 영화를 당대 현실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장선우는 <성공시대>로 한국 자본주의의 폐부를 건드렸고, 박광수는 <칠수와 만수>로 도시빈민, 장기수 같은 예민한 사회적 이슈를 정면으로 다뤘다. 90년에 나온 두 사람의 두 번째 작품 <우묵배미의 사랑>(장선우)과 <그들도 우리처럼>(박광수)은 지금도 많은 평론가들에 의해 각각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작. 한국 뉴웨이브로 불리게 된 이들과 다소 떨어진 자리에서 제3의 인물 이명세가 <개그맨>으로 외롭게 데뷔했다. 영화가 개인적 상상력의 산물임을 굳게 믿는 이 영화광은 영화 형식을 본격적으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3] - 90년대 한국영화 10대 사건
-
-
올해의 영화 베스트 - 감독·프로듀서·배우 부문
감독/ 이명세
99년은 80년대 말 한국영화의 수평선에 새 물결을 일으켰던 세 기수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가 ‘여행’에서 돌아온 해였다. 그리고 셋 중 가장 행복한 귀환의 주인공은 스타일리스트 이명세였다. 복귀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그는 장르부터 음악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명세 상’을 부수는 전략을 통해 더욱 철저히 이명세다워지는 길을 택했다. 전작들에서 동화의 나라를 외로이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카메라는 짐승처럼 쫓고 쫓기는 거친 사내들의 세계에서 뜻밖의 안착지를 찾았다. 하나의 사물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미지는 단 하나라고 믿는 순결주의자의 집요한 시선은, 추적자와 도망자의 타오르는 집념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관객도 ‘광장’으로 나온 그의 장인정신에 따뜻하게 화답했다. 이명세 감독이 세기 끄트머리에서 맞이한 ‘쨍하고 해뜰 날’은 99년 한국영화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1999년 한국영화 결산 [2] - 올해의 영화인
-
한국영화 제작편수 50편, 관객 점유율 36.7%(12월22일 현재). 한 세기가 저물어가는 1999년 세밑의 한국영화 결산표의 차변과 대변이다. 지난해보다 제작편수는 불과 3편 늘었지만 점유율은 무려 95% 이상 성장했다. 이런 수치에는 <쉬리>의 폭발적인 흥행 등으로 약간의 거품과 허수가 묻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와 영화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새 천년으로 질주하는 한국영화의 내일에 기대를 가져도 될 법 하다.
1999-2000 네 번째 특집은 ‘한국영화 폭발’이다. 90년대 한국영화계 10대 사건과 올해 한국영화계 10대 사건을 짚어보고 올해의 영화·영화인을 뽑았다.
올해의 영화·영화인 선정위원은 <씨네21> 20자평 필자·영화전문 필자, <씨네21> 객원기자와 기자로 구성했다. 선정부문은 ‘올해의 영화 베스트5’와 감독, 프로듀서, 시나리오, 촬영, 남자배우, 여자배우 ‘올해의 영화인’ 6개 부문을 나눠 뽑았다. 선정위원들에게 제
1999년 한국영화 결산 [1] - 올해의 영화
-
비평없으면 셰익스피어도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비평적으로 막 재평가받기 시작하던 60년대 초에 앨프리드 히치콕은 <무비>의 빅터 퍼킨스와 나눈 대담에서 비평가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장면을 만든다. 그러나 평론가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초해 영화의 좋고 나쁨을 일필휘지로 판단한다. 시사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밤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평을 휘갈기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바로 평론가라는 것이다.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도 잘난 체하는 평론가를 야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의 입을 빌려 평론가들의 경솔하고 천박한 20자평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영화감독들에게도 평론가들에 대해 20자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독자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고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4]
-
러브레터에 답장을 해다오!
한국의 영화평론가는 더이상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영화에 별점을 줄 뿐이다. 떠오르는 짓궂은 의문들. 별점을 주고도 원고료(?)를 받는지? 받는다면 얼마를 어떤 식으로 계산해 받는지?
신문에서는 문화부나 연예부의 영화담당기자가, 영화잡지에서는 영화전문기자가,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는 아무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정작 영화평론가만 영화에 관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강한섭 한국영화의 경계를 최소한 한뼘은 넓혔다. ★★★☆
박평식 다양하고 명렬하게, 자주, 오래도록 벗는 처녀들. ★★☆
유지나 여성의 섹스담론은 신선하다. 그래도 지겹도록 성기 중심적이다. ★★☆
이명인 저녁식사용으로도, 추석용으로도 껄끄러운 얘기. ★★☆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관한 <씨네21> 개봉영화 20자평에서.
박평식이 이 영화에서 ‘착지점 없는 당대 젊은 여성의 생존’(<국민일보>, 1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3]
-
프랑스에선 지금
99년을 마감하는 현재 프랑스영화계의 최대 화제는 <리디큘>(Ridicule)의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에 의해 시작된 감독들과 비평가들의 일대 격전이다. 모든 것은 지난 10월13일 르콩트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연합인 ARP 회원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시작됐다. “얼마 전부터 프랑스영화를 대하는 비평가들의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몇몇 평론가들이 마치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함께 토의하자고 촉구하며 끝난다. 원래는 사적인 성격을 띤 이 편지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영화계와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가장 빠르게 대처한 언론은 암묵적으로 공격의 표적이 된 일간지 <리베라시옹>. 지난 10월25일 문제의 편지와 함께 르콩트 감독 인터뷰를 실어 논쟁을 확산시켰다. 이 인터뷰에서 르콩트 감독은 프랑스영화의 시장 점유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2]
-
감독은 영화 위해 살고 평론가는 영화 덕에 산다?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세기말>에서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주인공이 평론가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 두섭이 술집에서 만난 평론가에게 일침을 놓는다. “자넨,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쌍통은 두개반, 젖퉁이는 별 세개… 그러면서 살아?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하고 파쇼 같은 짓이야. 그런 짓 하지마.” 원조교제하는 졸부, 돈이란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는 졸부의 아들, 지적 허세를 부리며 이율배반적 삶을 받아들이는 대학강사 등 99년 서울의 우울한 풍경을 대변하는 인물들 가운데 영화평론가도 한몫을 차지한 것이다. 송능한 감독은 “이게 평론가 전체에 대한 원한으로 오인되지 않기를 바란다. 평론가들이 늘 만드는 사람들에게 충고하는데, 한번쯤은 만드는 사람이 평론가들에게 충고할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1]
-
‘네버 세이 나부 어게인’ ‘오래된 희망’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스타워즈’ ‘아나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상은 곧 만들어질 <스타워즈 에피소드2>의 부제를 네티즌들이 유추해 본 것들이다. <007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의 영화제목을 재미있게 패러디한 이 부제들은 만든 이의 유머감각에 경탄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이외에도 요즘 인터넷에는 <스타워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갖가지 정보와 재미있는 소문들이 난무하고 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대대적인 성공의 견인차가 되었던 스타워즈 마니아들의 집산지가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이미 지겨워질 정도로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여러번 본 그들의 관심은 벌써 다음 에피소드에 가 있는 것이다.
일단 현재까지 알려진 새로운 에피
<스타워즈 에피소드2>를 둘러싼 각종 소문과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