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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드라큘라가 되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해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 또 하나의 드라큘라 이야기.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이후 교회를 저주하며 흡혈귀가 된 브람 스토커 원작소설 속의 드라큘라와는 달리, <드라큐라2000>의 드라큘라는 애연에 매여 있지 않다.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 한쪽을 파고드는 드라큘라식 번식, 그리고 여자들을 향해 손을 뻗치는 뇌쇄적인 눈빛은 그대로 살아 있지만, 영화 후반에서 관객은 전적으로 종교적인 데 기원을 둔 새로운 드라큘라 이야기를 듣게 된다. 새롭다 못해 다소 엉뚱하고 급작스레 거창해져버리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나 어쨌든 이 작품을 이전까지 만들어진 여러 드라큘라 영화들과 구분짓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다.영화는 드라큘라 이야기를 2000년 런던과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옮겨 상당부분 재구성한다. 무덤 같은 골동품 창고에 묻혀 있던 이야기를 몰래 훔쳐내어 미국행 비행기로 훌쩍 옮겨 태우는 것이다. 매리를 순결한 여인으로 지켜내려는 반 헬싱/사
<드라큐라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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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엽기적이다. 차 한잔 사겠다는 남자의 말에 그냥 돈으로 달라고 대답하는 여자는 세상에 사키코밖에 없을 것이다. 덕분에 실연까지 당했지만 사키코의 생의 목적, 유일한 즐거움은 오로지 돈이다. 그런 그녀에게 잘만 하면 5억엔이라는 돈이 굴러들어오게 생겼다. 노란 가방 안에 ‘그것’이 있다, 가방을 찾아라! 그렇게 삶의 목표가 정해졌다.사키코는 ‘보물’ 지도에 그려진 지점찾기라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지질학과에 입학한다. 등반도, 스킨스쿠버도, 수영도 배운다. ‘돈’ 때문에. 무엇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스쿠버를, 등반을 배우느냐는 질문에 사키코는 침묵하지만, 꿈꾸는 듯한 표정이 된다. 그러나 그토록 돈을 밝히는 사키코의 행동은 귀엽다. 목표가 돈에서 비롯되는 2차적인 물질이나 쾌락이 아니라 ‘돈’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여자애들이 화장품이나 옷이나 장신구를 좋아하고, 그것들을 사고, 바르고, 치장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과 똑같다. 사고 싶던 옷을 산 여자애가 거울 속의 자신을
<비밀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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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파일! 이제 진실은 리얼타임으로 전세계에 중계된다. 디지털은 세상의 중심부로 진군했고 반란군은 없다. 게리의 말대로 컴퓨터의 위대한 기술력 앞에 무릎꿇지 않을 정부는 없다. 컴퓨터는 권력이자 힘이다. 그러나, 컴퓨터는 진실이기도 하다.<패스워드>의 ‘패스워드’는 ‘디지털’,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벤처’다. 그러나 스릴은 평균점이고, 별다른 액션도 없다. 배신도, 반전도 예상치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패스워드>는 ‘이슈’가 될 만한, 아니 지금 가장 ‘뜨거운’ 사건을 연상시키는 ‘패스워드’가 될 수 있다. 지금 미국에서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디지털 전도사로 추앙받던 빌 게이츠는 무조건적인 찬사에서 비껴나, 정보를 독점하고 경쟁자들을 비열한 방법으로 패배시켰던 ‘악덕기업가’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최종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하지만 <패스워드>는 바로 그 뜨
<패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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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야… 후미야… 후미야….”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죽어야했던 소녀는 레테의 강물을 마실 수 없었다. 사요리가 사국(死國)에서 흐느끼듯 외치는 ‘후미야’란 이름은 전율처럼 사국(四國)의 공기를 휘감는다. 머리를 길게 드리운 열여섯 소녀귀신의 응시를 담은 포스터는 언뜻 전형적인 일본공포영화인 듯 보이지만 <사국>의 알맹이는 지독한 러브스토리다. 옛 사랑을 묻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남자 앞에 나타난 죽은 여자의 집착적 사랑과 죽은 딸을 살려내기 위해 고행에 가까운 의식을 치르는 어머니의 광적인 사랑이 큰 맥. 여기에 88개 사찰을 죽은 자의 나이만큼 왼쪽으로 돌면 이승과 저승을 봉인하고 있던 결계가 허물어져 죽은 사람이 이승의 세계로 넘어온다는 ‘사카우치’라는 전설적인 의식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점차 흥미를 더해간다. 그러나 스멀스멀한 공포감과 멜로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던 전반부에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너무나 ‘운명적’인 사랑이야기에 치중한 나머지 맥이 빠지는
<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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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오 마사유키의 영화들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소개되고 있다. 한국에 첫선을 보인 작품이 <쉘 위 댄스>(1997)이고, 그 다음이 <으랏차차 스모부>(1992)이며, 마지막 주자가 <팬시댄스>(1989)이다. 시간을 거슬러서 감상하는 재미는 수오 마사유키 군단(모토키 마사히로, 다케나카 나오토, 다구치 히로유키)으로 불리는 배우들의 ‘그때 그 모습’ 그리고 변치 않는 수오 감독의 ‘초심’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 댄스교습소로, 스모장으로, 산사로, 공간을 바꿔 이야기를 변주하고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어 인생의 참된 즐거움을 발견한다’는 핵심은 한결같다. 그런 고전적이고 심플한 메시지를 대중을 위한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키는 감독의 만듦새도 새삼 경탄스럽다.“이 길은 멀고 험한 길, 왜 넌 이를 악물고 가려고 하지?” 입산 직전, 요헤이는 고별무대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고는 스스로 답한다. “이 길밖에 없잖아.” 이후 전
<팬시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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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레네에게는 오직 하나의 영화적인 주제, 즉 죽음으로부터 돌아온 자, 혹은 그의 육체만이 있다고 말한 것은 철학자 질 들뢰즈였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첫 장면은 언젠가 레네에 대해 들뢰즈가 했던 이런 언급부터 떠올리게 한다.영화가 시작되면 먼저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서로 껴안고 있는, 벌거벗은 두 사람의 어깨와 팔이다. 그 육체들 위에는 재 모양의 미립자들이 뿌려진다. 이 이름 모를 육체들 위에 잔뜩 뿌려진 가루들을 씻겨주는 것은 이 숏 위로 오버랩되는 다른 숏이다. 이 장면들이 상징적으로 대략 무얼 보여주려 하는지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불러온 끔찍한 양상을 담은 장면들이 이어지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영화의 그 첫 숏들은 분명 핵폭발 때 생기는 버섯구름의 형상과 아주 닮아 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히로시마 내 사랑>의 도입부는 우선적으로 이것이 원폭으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의 고통이 어떤
<히로시마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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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가 장군에서 노예로 전락했다 다시 검투사가 된 풍운아였다면, 얌전한 규수가 고급 매춘부로 변신해 국가대표 로비스트 노릇까지 하고 마녀재판정에 서는 베로니카의 인생 역정도 그에 못잖다. 마거릿 로젠탈의 전기 <정직한 매춘부>를, <가을의 전설>의 제작자 마셜 헤르스코비츠와 감독 에드워드 즈윅이 역할을 맞바꿔 영화화한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은, <에버 애프터> <잔다르크>처럼 현대적인 페미니스트 구호로 업데이트된 시대극이며 머천트 아이보리풍 장정의 ‘할리퀸 로맨스’다.‘거래’에 가까운 결혼 풍속에 연인을 빼앗긴 베로니카는 수녀와 창녀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한다. 정숙한 여인의 훈장과 바꾼 자유로운 펜과 육체로 그녀는 종이 위에, 침대시트 위에 시를 쓴다. 한 남자가 아닌 사랑 자체를 사랑할 것. 정신으로 유혹할 것. 남자가 가장 부끄러워하는 흉한 상처에 입맞출 것. 자기가 유일한 남자라고 믿게 할
<베로니카 사랑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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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궁금증을 못 이긴 아이의 질문에 어른들은 수수께끼같은 은유로 화답하거나 아예 회피한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욕망도 부풀어오른다. <내 마음의 비밀>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아홉살짜리 소년이 어른들이 간직해온 비밀의 영역으로 한발두발 조심스레 다가드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다.시골집의 어머니 방문을 몰래 열고 들어가기 전까지 소년 하비의 세계엔 어른들이 드리운 그림자가 없다. 아이는 빈 집에서 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망자의 고백이라고 믿거나 봄날을 맞은 강아지들이 서로 얽히는 광경을 보면서 ‘개들이 왜 싸우는 걸까’라고 발을 동동 구른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어놓은 금기의 선을 넘은 뒤 하비는 아주 조금씩 커튼 뒤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삼촌의 관계, 아버지의 사망 원인, 빈 집의 유령, 마리아 이모와 로사 이모의 갈등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 ‘어른들의 진실’은 앞으로
<내 마음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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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유령이 보여요.” <식스 센스>의 꼬마 콜은 무섭고 외롭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저주받은’ 재능(gift) 때문에. 카드점을 치는 애니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타인의 미래와 운명을 알 수 있는 예지력이 있고, 그 재능 때문에 존경도 미움도 받는다. <기프트>는 그녀와 얽힌, 그녀가 점을 쳐주는 세 사람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도니를 미워하면서도 얽매여 있는 발레리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며 애니를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정비공 버디, 자상하고 친절한 학교선생 웨인과 그의 요염한 약혼녀 제시카.<기프트>는 충실하게 스릴러의 기단을 쌓아간다. 애니는 제시카에게서 죽음의 환영을 보고, 발레리에게는 이혼하라며 조언을 하고, 버디에겐 그의 상처를 기억하라고 권한다. <기프트>는 각각의 사람들이 얽힌 에피소드를 죽 나열하면서 하나하나 고리를 엮어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그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서 사
<기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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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가 일본의 스포츠이고 씨름이 한국의 스포츠인 것처럼 미국 정신을 구현하는 단 하나의 스포츠를 고르라면? 미식축구야말로 어깨를 부풀려서라도 모든 것을 밀어붙이려는 힘의 논리와 뺏고 뺏기는 땅따먹기 전쟁의 쾌감과 승리자는 모든 것을 가진다는 미국식 게임의 정수이기도 할 법하다. 그 동네에서는 승리자에게 다시 한번 킥을 찰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트라이 포 포인트) 패자부활전이 있는 우리네의 씨름과는 정반대의 이치인 것. 잘하는 놈은 한번 더 밀어주는 규칙이 공평이라는 것이다.미국이 사랑하고 할리우드가 밀어준 미식축구영화 <리멤버 타이탄>의 카피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사는 승리자에 의해 쓰여진다’나? 이미 <살롱>의 앤드루 오하이어가 지적했듯 <리멤버 타이탄>은 기괴한 나라의 기괴한 스포츠에 관한 기괴한 스포츠 필름이다. <조이>니 <애니 기븐 선데이>니 하는 미식축구영화들이 승리의 과정에 드라마의 얼개를 둔 정통 스포츠영화라면
<리멤버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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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적이며 경직된 노동시장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사회에서 실직은 단지 일을 잃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능력자’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쓴 채 이중의 고통을 겪게 된다. <행복한 가족계획>의 주인공 가와지리 역시 마찬가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을 추스리기도 전에 그는 가족들의 질시라는 고단한 현실과 마추쳐야 한다. 가업을 물려받을 가게 직원에게 딸을 주고 싶었던 장인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모른다고 구박하는 아내나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꽝”이라고 얘기하는 아들까지 이 실직자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가와지리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단지 300만엔이 탐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추된 권위와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다. 짐작하겠지만 가와지리가 피아노 연주에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일주일 동안의 도전 과정에서 그가 자신감을 찾고 온 가족이 다시금 화사한 웃음을 지을 수 있
<행복한 가족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