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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카이틀, 로버트 드 니로, 실베스터 스탤론, 레이 리오타라는 화려한 배역진은 이 영화를 조금은 궁금하게 만들다. 어두운 뒷골목을 누비던, 아니 영웅, 반영웅을 자처하던 스타들이 경찰이 되어 모두 한 마을에 산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해비>라는 저예산 영화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탁월하게 묘사해 내는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캅 랜드>에서도 주요한 세 인물을 각각 다른 위치에 배치시킨다.
스탤론이 연기한 프레디는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사고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 바람에 그토록 갈망하던 뉴욕시경 시험에 낙방한 인물. 레이의 배려로 캅 랜드를 돌보는 보안관 일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쪽 귀를 희생하면서 살려낸 여자는 다른 경찰관의 아내가 되어 있는 상태. 그에게 경찰은 인생의 목표인 동시에 거부의 대상이다. 캅 랜드를 지배하고 있는 레이 역의 하비 카이틀은 자신의 조카를 숨기기는 했지만 마을의 신변을 보장하기 위해
‘캅’ 그들만의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함, <캅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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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빵을 만드는 것은 좋은 사랑을 하는 것과 같다.” 영화 첫머리에 소개되는 주인공의 신조는 <주노명 베이커리>의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빵 배달을 갔던 주노명이 몰래 집에 들어가 잠든 아내의 몸을 더듬는 장면에선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아내의 신음소리에 맞춰 수십겹의 페스츄리로 이뤄진 빵이 달콤하게 부풀어오른다. 점점 커지는 빵처럼 사랑은 만족감에 취한다. 그러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싶은 순간 주노명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결혼한 지 10년된 부부, 매일 빵집 카운터에 앉아 아파트로 둘러싸인 풍경만 바라보는 여자에게 늘 빵처럼 부풀어오르기를 요구할 순 없을 것이다.
<주노명 베이커리>는 주노명에게 닥친 위기에서 본격적인 드라마를 시작한다. 흔히 불륜이라고 또는 중년의 로맨스라고 말하는 그것을 주노명의 아내 역시 체험한다. 그 대상이 고릴라같은 남자 박무석이지만 이 남자는 보기보다 괜찮다. 아무도 몰라주는 주노명의 빵 만드는
불륜도 살짝 구으면 로맨스가 된다, <주노명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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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리엔 아무도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신나간 마약중독자들, 임신한 창녀들, 칼과 총으로 구멍난 시체들, 참을 수 없는 악취를 풍기며 죽어가는 부랑자들이 구급요원 프랭크를 기다리고 있다. <비상근무>에 담겨진 90년대 초 뉴욕 뒷골목의 밤풍경은 단연코 아비규환이다. 영광의 도시 뉴욕은 지옥의 그늘을 감추고 있다가 밤이 되면 끔직하고 흉칙한 맨살을 이렇게 드러낸다. 프랭크도 이 악몽의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 자신의 미숙으로 죽은 한 소녀의 혼령이 그에게 치유불능의 불면증을 심은 뒤로 그의 얼굴은 말기 암환자처럼 변했다. 죽어가는 인간들의 호출에 몽유하듯 끌려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의 독백대로 “죽음에서 구하는 게 아니라 죽음을 목격하는 것”뿐이다. 그럴수록 프랭크의 안색은 더욱 검게 변해간다.
뉴욕시의 병원에서 10년간 구급요원으로 일한 조 코넬리의 원작소설이 폴 슈레이더의 각색과 마틴 스콜세지의 연출을 거쳐 다시 태어난 <비상근무>는 스콜세지적인
세속도시에서의 영적 구원, <비상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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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말이지만, 배우 없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실사까지 파고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발전상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배우 없는 영화’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좀 호들갑스러울 수는 있으나, 불가능하다 도리질만 할 수 없는 것은 <스튜어트 리틀>이 내비친 가능성 때문이다. 사람 세상에 입양된 쥐의 모험담이 애니메이션 아닌 실사로도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이 1억달러의 제작비가 쓰일 만한 보람직한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사실. 여기서 사람은 기껏 조연이거나 배경 그림에 불과하다.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탄생한 가상의 캐릭터 스튜어트, 립싱크 솜씨가 훌륭한 고양이 스노벨과 그 패거리들이 이끌어가는 이 영화에서, 할리우드의 여전사 지나 데이비스나 영국 출신 연기파 휴 로리에게 눈길을 보내는 관객이 과연 몇이나 될까.
<스튜어트 리틀>이 일궈낸 기술혁명은 그렇듯 눈부시다. 풍부한 표정연기와 다이내믹한 액션연기를 소화하는 스튜어트의 생생함은, 그것이 살아
어린 관객에게 전하는 ‘친화적인’ 메시지, <스튜어트 리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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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깊이, 오래 생각하면 성자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나티네>를 보면 성자나 철학자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소나티네>는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가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이다. 언젠가 기타노는 자신의 최고작으로 <소나티네>를 꼽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오랫동안 죽음에 홀려 있던 자기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머리에 지그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기타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세번 반복되는데 한번은 총알없이 하는 장난이지만 두번은 뻥 뚫린 두피 사이로 피가 용솟음치는, 몸서리쳐지는 장면들이다. 그는 왜 이런 끔찍하고 살벌한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일까? 다케시는 야쿠자 보스 무라카와를 통해 그 의미를 돌아본다.
기타노 자신이 연기하는 무라카와는 처음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으로 등장한다. 작은 조직의 보스지만 마음에 안 들면 최고 보스의 오른팔이라도
죽음에 대한 기타노 다케시의 사고, <소나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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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선 누구나 슬퍼하고 가슴아파한다. 하지만, 대개는 슬픔을 추스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맞닥뜨리면 식음을 전폐하고 통곡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밥도 먹고 웃고 떠들기도 하며 일상으로 돌아간다. 죽음도 세상살이의 한 부분이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장의사, 말만 들어도 별로 유쾌하지 않다. 섬뜩해서 오싹 소름이 돋기도 한다. 그런데 장의사에겐 죽은 사람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혀 초상을 치르는 일이 ‘일상사’다. “사람은 마지막 떠날 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라는 할아버지에게 가업으로 하는 장의사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은 수긍할 만하다. “장의는 죽은 사람의 몸만 다루는 게 아니라 영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오락실 타령을 하는 망나니 같은 손자에게 장의일을 권하고, 여관방에서 목을 매 죽으려던 철구가 낙천장의사를 찾아오면서부터, 할아버지의 투철한 ‘장인정신’은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덜거리지만 마지 못하는 재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끌어낸 얕은 코미디, <행복한 장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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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궂게도 장선우 감독은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옮겨오면서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 첫째 구멍, 둘째 구멍, 셋째 구멍이란 원작에 없는 중간제목을 붙였다. 논란과 대결을 의도한 장정일의 말썽 많은 원작에 장선우는 자기식의 방점을 찍어 각색한 것이다. ‘구멍’의 물리적 의미는 민망함을 무릅쓰고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난 너의 세 구멍과 전부 하고 싶어.” J라는 남자는 아예 구멍에 눌러앉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그는 불편하다. 그곳은 모두 ‘거짓말’이다. 여관에 들어와서야 마음이 놓인다. 별로 돈이 없어보이지도 않는데, J는 굳이 여관만 전전한다. 그것도 땟국물 전 이불과 값싼 조명이 달린 눅눅한 여관만.
그러고 보면 여관도 구멍이다. 그곳에서의 습한 기억을 누구나 한 가지 이상 갖고 있지만, 짐짓 보이지 않는 척하는 그래서 세상에는 없는 척하는, 세상의 구멍이다. 장선우 감독은 <우묵배미의 사랑>과 <경마장 가는 길>에
성인됨을 상실한 성인남자의 비가,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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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었음직한 괴담이 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밤마다 움직인다, 미술실에 혼자 있으면 석고상이 노려본다, 유관순 초상화에는 7가지 비밀이 있다, 소풍날 비가 오는 건 학교 귀신 때문이다, 등등. 불합리한 교육제도나 폐쇄공간에 대한 공포라기보다는 원초적이고 근거없는 두려움들이, 어린 마음들을 떠돌았던 것 같다. <학교전설>은 어린 시절 우리의 귀와 입을 바쁘게 했던, 전설과 괴담을 다룬 영화다. 어른 관객도 나눠가질 수 있는 ‘재미’가 있는 건 이런 이유다.
<학교전설>은 시청각적으로 매우 공포스럽다. 음악, 음향효과, 특수분장, CG 등은 학교에, 아이들 머릿속에 떠도는 괴담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하지만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를 표방한 이 영화도, 계몽과 선도에 대한 강박을 벗어내지는 못했다. 이를테면 영주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이 동급생들의 왕따로 밝혀지면서,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식의, 진
본격 키즈엔터테인먼트 무비, <학교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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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콜렉터>는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의 영화다.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양들의 침묵> <쎄븐> 이후 할리우드의 단골로 급부상했고, 범죄를 일종의 예술처럼 여기는 기묘한 사디즘은 정교한 내러티브 속에서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물론 <본 콜렉터>는 현대인의 구미에 맞게 양념들을 듬뿍 쳐놓았다. 머리를 제공하는 것은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흑인배우 덴젤 워싱턴이며, 그의 수족이 되어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은 안젤리나 졸리가 맡았다. 할리우드영화에서 남성의 두뇌와 여성의 몸의 결합은 요즘의 한 경향이고 그것도 다른 인종간의 결합이면 금상첨화다. 범인이 제시하는 단서를 따라 뉴욕의 과거를 훑어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낡은 도살장, 한권의 추리소설, 뉴욕의 어두운 지하도 등.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하강과 결말로 이끈다.
하지만 범인의 등장은 빛이 되기에는 함량미달이다. <긴급명령> <패트리어트 게임>을 만든 호주 출신의 필립
철저한 할리우드식 시나리오, <본 콜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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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역사가들은 뮤지컬과 네편의 영화에 원안을 제공한 애나 레노웬스의 회상록을 한 고독한 여인의 분홍빛 몽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이미 감정한 바 있다. 그러니 이 로맨스가 실화인가는 따로 묻기로 하자. 무엇보다 <애나 앤드 킹>은 두 사람의 강한 인간, 온 세상을 짊어진 남자와 자기 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꾸어 온 여자의 만남에 관한 이야기다.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우리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도 그런 커플을 보았다. 마리아가 폰 트랩 가에 노래를 가져다 주었다면, 시암의 왕궁에 당도한 애나의 트렁크에 들어 있었던 것은 자애와 용기다.
말레이시아 로케이션과 런던 스튜디오를 오가며 촬영된 2시간이 훌쩍 넘는 <애나 앤드 킹>은 호화 양장본의 증보판이다. 앤디 테넌트 감독이 생각한 이 리메이크의 존재이유는 무엇보다 미장센과 색채의 보강이었던 모양. 첫 그림부터 스크린은 데이비드 린의 <인도로 가는 길>을 상기시
무뚝뚝한 떡갈나무의 가지를 흔드는 산들바람, <애나 앤드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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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비틀거리는 걸음, 초췌한 얼굴, 일그러진 표정의 마흔살 남자. 우리가 영화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이 사내는 불행해보이지만 별 동정은 가지 않는다. 야유회장에 술 취한 채 나타나 분위기 깨는 이런 인간은 가능하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다행히 사라졌나 했더니, 어느샌가 철로 위로 올라가 소리를 질러댄다. 뻔하다. 저 한심한 인생이 더러운 꼴 크게 한번 당한 게로군, 하면서도 놀던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가 달려오는데, 사내는 물러서기는커녕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기 시작한다. 왜 저럴까. 정말 죽을 작정인가. 아무리 꼴보기 싫은 인간이라도, 죽겠다고 나서면 썩 내키진 않지만 놀이를 멈추고 일단 만류한 뒤 그의 사연을 들어주는 도리밖에 없다. 그런데 눈물이 흐를 듯 고인 채 파르르 떠는 사내의 눈은, 피하고 싶은데도 결국 속을 울렁이게 만든다.
<박하사탕>은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결코 호감은 안 가지만 냉큼 외면하기도 힘든 이 사내의 2
한 사내의 20년에 걸친 개인사, <박하사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