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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의 영웅을 보며, 관객 각자 인생의 열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밀레니엄 맘보> 미술감독 <내 곁에 있어줘> 황원잉 감독
김철홍(평론가) 사진 최성열 2024-07-31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자객 섭은낭> 등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에서 눈과 마음 모두를 사로잡는 비주얼을 구현한 황원잉 감독은 대만영화계에서 미술감독으로, 의상감독으로, 미술 총괄로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왔다. 그가 이번엔 연출 데뷔작 <내 곁에 있어줘>를 들고 대만영화주간을 찾았다. 크루로 참여한 전작들처럼 <내 곁에 있어줘>가 현대 대만영화의 흐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한국 관객들과 함께 <밀레니엄 맘보>의 4K 상영을 기다리던 황원잉 감독을 만나 자신의 영화를 직접 연출하게 된 사연을 물었다.

- 참여한 두편의 영화가 대만영화주간에서 대만을 대표하는 영화로 소개됐다. 소감이 궁금하다.

= 감사하다.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일을 시작한 지 30년이 넘었고 한국 역시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여러 번 왔지만 이런 기분은 한국에서 처음 느낀다. <내 곁에 있어줘> 상영 이후 적잖은 관객들이 상영관에 끝까지 남아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지던 게 감동적이었다. 관객들이 객석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봐주신 것 자체가 신기하다. <내 곁에 있어줘>는 일제의 대만 식민 지배 역사를 다루고 있고, 심지어 1940년대, 80년대, 그리고 현재 시점까지 여러 시간대를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전개되는 영화라 외국인 입장에서 공감하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현장에서 아트 디렉팅, 프로덕션 디자이너의 커리어를 오래 이어왔다. 영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 대학 졸업 후 뉴욕에서 미술과 의상과 관련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자주 갔던 터라 영화는 항상 좋아했고, 그래서 외국에 있으면서도 대만영화, 특히 허우샤오시엔 감독님 영화만큼은 무조건 다 챙겨 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독님에게 직접 편지로 “감독님 현장에 나를 써달라, 자신 있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때가 1993년이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답장을 받았다. 그렇게 <호남호녀> <남국재견>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까지 계속 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직도 감독님과 첫 만남 때 나눴던 대화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 그러다 직접 연출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개인적인 이유가 크다. 영화 속 주인공 페이와 비슷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더는 나의 이야기를 미루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어찌 보면 아버지 덕분에 영화를 다소 빠르게 완성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 언급한 대로 데뷔작 <내 곁에 있어줘>에는 감독의 자전성이 느껴진다. 일단 주인공이 영화 현장의 여성 프로덕션 디자이너다.

= 맞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또 한명의 주인공인 할아버지에 관한 부분은, 전부 나의 할아버지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자전적 영화’라는 포인트에 집중해서 소개하는 편은 아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분명 보편적인 대만 가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대를 넘나들며 포개놓은 할아버지와 손녀의 역사, 그들이 내린 순간순간의 선택에 집중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에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 동시에 대만의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으로 느껴졌다.

= 이 영화를 통해 나의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싶었다. 항상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영화가 묘사한 대로 그는 큰 실패를 여러 번 겪었다. 그것도 단순한 실패가 아닌, 전쟁과 지진, 일제의 폭력 같은 정말 한 인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실패 말이다. 할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늘 다시 시작하셨고, 결국 이렇게 나에게 좋은 대만을 남겨주셨다. 내가 오랫동안 영화 업계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렇게 영화까지 연출하게 된 것은 모두 할아버지 덕분이다. 관객들이 나의 영웅을 보며, 각자 인생의 열정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 들을수록 대만영화주간이라는 기획과 어울리는 영화다. 한국 관객들에게 개인적으로 소개하고 싶은 아끼는 대만영화가 있나.

= 아무래도 <밀레니엄 맘보>지 않을까. 이 작품을 준비할 당시 감독님이 각본 대신 간단한 시놉시스만 주셔서 꽤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웃음) <밀레니엄 맘보>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몽환적이라 밀레니엄 시기의 혼란한 시대상을 인상적으로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촬영 후 딱 한번 보고,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마련된 4K 복원 상영 자리가 나에게도 정말로 큰 의미를 지닌다.

- 대만영화를 향한 한국 관객들의 사랑이 특별하다. 대만 영화인으로서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허우샤오시엔, 차이밍량, 에드워드 양. 세 감독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은 한국영화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다고 생각하지만, 꽤 오랜 기간 세 감독을 위시한 대만영화의 영향력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크게 미쳤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과 대만이 역사적으로 비슷한 아픔을 겪었다는 공통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대만영화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던 주제 ‘인간과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관계’도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나 싶다.

- 허우샤오시엔 감독과의 일화를 들려줄 때마다, 진심으로 그의 영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 언젠가 감독님에게 따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동안 찍은 많은 영화 중 가장 아끼는 영화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감독님이 딱 세편을 말씀하셨다.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 <남국재견>. 그때가 이미 <자객 섭은낭>까지 찍은 뒤였는데 왜 저 세편을 말씀하셨을까 생각해 보니, 전부 내가 참여한 작품이더라. 그냥 내 기분을 좋게 해주시려 하신 말씀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속으론 정말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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