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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참을 수 없이 좋으니까!, <한국이 싫어서> 제작사 모쿠슈라 장건재 감독, 김우리 대표, 윤희영 PD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4-08-30

김우리 대표와 장건재 감독이 영화제작사 ‘모쿠슈라’로 박자를 함께 맞춰나가기 시작한 건 2009년부터다. 고등학생의 흔들리는 첫사랑을 그린 <회오리 바람>을 제작하며 극장 배급을 위해 직접 영화시장에 뛰어들었다. 두 사람은 누군가 작품과 관객을 연결해주길 마냥 기다리기보다 직접 마침표를 찍어나가는 모험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잠 못 드는 밤>의 영문 번역을 맡은 윤희영 PD와 인연을 맺고 2016년부터 <한국이 싫어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최초의 기억> 등 소재와 주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쿠슈라는 장강명 원작 소설을 빌려 살아 있는 계나(고아성)를 완성했다. <한국이 싫어서>의 힘을 그려낸 장건재 감독, 현실적인 지반을 다진 김우리 대표, 뉴질랜드 생활을 한 경험으로 로케이션을 통솔한 윤희영 PD까지 셋은 유연한 화학작용을 만들었다. 긴장이 몰려오는 시사회 전날, 세 사람과 함께 느슨한 여름 바람이 불어오는 작업실에서 <한국이 싫어서>와 모쿠슈라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독립영화의 전방향 신호를 읽어보고자 했다.

- 영화제작사 모쿠슈라는 영화감독 장건재의 아이덴티티가 형성된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나.

장건재 작은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감독이나 프로듀서는 필요에 의해 제작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다. 극장 배급에 프로덕션 사업자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모쿠슈라도 그렇게 시작됐다. <회오리 바람>을 시작한 이후 <잠 못 드는 밤> <한여름의 판타지아>까지 이어나가면서 조금씩 독립영화 제작사로서 정체성이 생겨났다. 2011년 <잠 못 드는 밤>의 영문 번역으로 만난 윤희영 PD는 <한국이 싫어서>의 준비와 함께 2016년 정식으로 합류했다.

윤희영 그러니 <한국이 싫어서>가 내가 모쿠슈라에 본격적으로 일하게 된 출발점이다. 그 결실이 이제 개봉한다. (웃음) 모쿠슈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직장을 다니다가 다른 사업을 해왔다. 더 오래전 박기용 감독님의 <낙타(들)> 연출부 생활을 한 적 있다. 모쿠슈라 사람들과 워낙 결이 잘 맞아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다시금 이 일을 하고 싶었다.

오직 영화만을 위해서, 오직 극장으로 향하는

- 장건재 감독의 이력이 화려하다. 조연(<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은 물론 촬영(<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 <히치하이킹>)을 수행하고 감독-각본-제작-편집(<회오리 바람>)까지 올라운드플레이어가 된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에서는 총괄 프로듀서를 맡기도 했는데. 1인다역은 모쿠슈라의 조직적 성격과 연결된 결과인가.

장건재 나만 그런 건 아니고 남은 두 사람도 1인다역을 하고 있다. 셋의 역할 분담이 조금씩 다르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와 <최초의 기억>을 예로 들면 두 작품 모두 내가 촬영했고 김우리 대표가 데이터 작업(DIT)과 동시녹음, 윤희영 PD가 현장 진행, 조명 등을 맡아했다. 가끔은 협업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양양> <퀴어 마이 프렌즈> <경아의 딸> 등을 작업한 이연정 편집기사와 <한국이 싫어서>를 작업하기도 했다. 분업과 협업이 중요한 조직이다.

김우리 코로나19 이후 영화·드라마 산업의 인건비가 치솟으면서 우리 같은 중소 제작사는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스스로 기술을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처음부터 모든 걸 잘했던 건 아니다. 오늘 이만큼 공부해서 내일 이만큼 적용해보기를 반복했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이 우리에게 당장 중요하고 필요했다.

장건재 <달이 지는 밤>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는 소규모로 만들어진 영화다. 또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제작과 배급을 모두들 도맡으면서 우리도 모르게 포스트프로덕션, 프로덕션, 유통, 배급까지 공부하는 시간을 보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도 많이 배웠다.

- 세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획을 짜고 실행하는 과정이 현장 실무를 판단하는 감독 역할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장건재 나는 연출자로서 기술 운용에 서툴러지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 그래서 계속 배우고 싶다. 모든 영역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다. 모쿠슈라는 규모의 미학을 첫 번째로 생각한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작업인지, 그 규모 안에서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영화인지 먼저 판단한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되짚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가용범위를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윤희영 모쿠슈라는 다른 조직과 성격이 다르다. 하나의 생명체처럼 움직이고 변모한다. 각자의 책임이 분산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만든다. 밤 12시가 넘어서 전화가 오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일 이야기 5분 하고 다른 이야기를 1시간 한다. 그러고선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하자~”로 마무리한다. (웃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편하고 자유롭게 공유하는 분위기가 신뢰를 만드는 듯하다.

- 이번에 개봉하는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했다. 원작이 많은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은 만큼 영화로 바꾸는 과정에 고민이 깊었을 듯하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점을 가장 잘 살리고 싶었나.

장건재 처음 책을 읽었을 때 계나의 고민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내게도 공명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개인의 이야기를 경유하면 한국 사회를 진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더라. 원작은 영화보다 더 발랄하고 한톤 높여 용기 있는 인물의 여정을 그려내지만 내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민자, 이민 준비자, 유학생은 삶의 터전을 바꾸는 시도를 하면서 소설과는 또 다른 온도를 보였다. 한국이 싫어서 떠난다기보다는 각자의 삶에서 다른 것을 찾아나서고 싶어 했다. 확실히 여성이 많기도 했고. 다시 말해 색다른 방식의 21세기 디아스포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세대의 난민자들이랄까. 자신의 토대와 환경을 주도적으로 바꿔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윤희영 나도 뉴질랜드에서 오래 살았다.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와 내가 이국을 경험한 시기는 다르지만 주요 고민은 비슷해 보였다. 나 또한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다. 논리적인 고민이라기보다 그런 생각과 감각이 밀려드는 시기에 가까웠다. <한국이 싫어서> 시나리오 개발 당시 계나가 뉴질랜드로 향하는 과정의 개연성이 떨어지면 안된다는 논의를 한 적 있다. 사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들이 심정적으로 ‘떠나고 싶은 상태’에 있다는 거다. 막연해 보이더라도 그 자체가 현실적이다.

- <씨네21>과 인터뷰에서 고아성 배우는 ‘35고’라고 적힌 대본을 받았다고 말했다. 35고의 과정을 어떻게 기억하나.

장건재 오히려 초고는 빨리 나왔다. 2016년에 완성했다. 그 뒤 3명의 각색 작가와 함께했다. <안녕 내일 또 만나>의 백승빈 감독, <경아의 딸>의 김정은 감독, <타짜: 원 아이드 잭>을쓴 정철 작가.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아주 큰 변화가 3번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원래 아주 작은 영화로 출발했지만 해외 로케이션 등 규모가 있다 보니 새로운 방식을 찾아나서야 했다. 그런데 2022년까지 모든 펀드와 투자가 계속 떨어지는 거다.

김우리 <한국이 싫어서> 시나리오를 보면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 아마도 제작 지원과 투자를 판단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우리 프로젝트가 어중간해 보였을 것 같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 부지런히 시나리오를 바꿨다. 조언도 많이 받았지만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사실상 포기하는 마음으로 영화진흥위원회에 지원했는데 우리가 선택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희소식이었다. 거기에 힘을 얻어 투자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장건재 35고는 돌이켜보면 <한국이 싫어서>를 제작하기 위한 35가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2022년에 나는 포기한다고 선언도 했다. 인적 자원이 생각보다 너무 오래 들어가니까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김우리 대표와 윤희영 PD에게 심술도 많이 부렸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때 고아성 배우가 마침 함께하고 싶다는 회신을 주었다. 타이밍이 좋았다. 감사한 일이다.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방향을 찾는다

- 뉴질랜드에 간 계나는 이전과 다른 국면의 어려움을 맞이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꿈꾼다. 어둡고 추운 한국과 따뜻하고 형형색색의 뉴질랜드는 촬영 방식이 달라 보인다.

장건재 처음부터 계절적 차이를 드러내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겨울인 한국에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보여줄 때 같은 기간의 뉴질랜드는 온화하고 따뜻한 여름을 맞이한다. 그 계절차 때문에 만들어지는 콘트라스트(명암 차)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계나가 워낙 추운 걸 싫어하기 때문에 따뜻한 곳으로 향해가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고 싶기도 했다. 무채색인 한국과 달리 뉴질랜드는 컬러풀하기도 하고. 하지만 뉴질랜드가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처럼 비쳐지길 바라지는 않았다. 한국도 아름다운 사계절을 간직하고 있지 않나. 계나의 이동과 삶의 과정에 집중하려 했지 뉴질랜드가 완전한 해결책처럼 보여지거나 ‘어딜 가도 다 똑같이 힘들다’라는 식으로 단조롭게 귀결되지 않길 바랐다.

- 외지 생활에 약한 연하 남자 친구를 보며 ‘얘들은 엄마가 필요하구나’ 하던 계나는 “영주권 따고 싶으면 키위 하나 잡아서 결혼해도 되고”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제도권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싶던 계나는 다시금 제도권으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장건재 뉴질랜드에서 계나는 다양한 관계와 기회를 만나지만 그들이 목적지향적인 맥락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큰 고민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한국이 싫어서>는 해외 취업과 이민을 목표로 한 영화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그랬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더 안정적인 선택권으로. 오히려 계나는 주변 환경을 계속 바꿔나가면서 자기 삶에 새로운 시도를 주는, 모험 과정에 자신을 놓는 인물이다. 그 과도기와 과정을 담는 게 중요했다.

- 올해로 모쿠슈라가 15주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짚어본다면.

장건재 김우리 대표는 공해를 만들지 않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이동 거리를 짧게 해서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는 영화 현장을 지향한다.

김우리 낭비를 만들지 않는 것만큼 촬영장이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도 잊지 않으려 한다. <한국이 싫어서>의 뉴질랜드 촬영에서도 그곳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야외 촬영 때에는 메인 촬영 스태프만 빼고는 멀리 숨어 있었다.

- 2022년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저서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을 출판하기도 했다. 모쿠슈라는 영화 이외에 출판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장건재 <달이 지는 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아는 통번역 작가에게 이 책을 읽고 들려달라고 했는데 그분이 너무 바빠서 1년 동안 읽지 못했더라. 그래서 출판해버렸다. (웃음) 모쿠슈라의 첫 번째 책이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4년 정도. 근데 그사이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김우리 어떻게 이런 호재가! (웃음) 생각도 못했던 띠지가 생겨났다.

- 현재 노하라 구로 원작 만화 <너의 뒤에서>의 영화화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싫어서>부터 원작 IP 작품을 시도하는 중으로 보인다.

윤희영 <너의 뒤에서>는 출판사 6699프레스에서 발간한 단편집 중 하나다. 그 뒤에 장편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먼저 선보인 뒤에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일본, 대만, 프랑스 등으로 뻗어나갔다. 아직은 시나리오 기획·개발 단계에 있다. 원작 배경을 꼭 한국화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판단해서 제작과 연출은 모쿠슈라가 하지만 일본 배우들과 현지에서 촬영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모쿠슈라와 함께하고 싶다면

김우리 - <5시부터 7시까지의 주희>

김주령 배우와 주말마다 촬영했던 작품.그래서 제작 기간도 길었다.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러모았던 순간이다. 마음의 위로를 주는 영화.”

윤희영 - <달이 지는 밤>

“PD로 임했던 첫 번째 작품이다. 무주산골영화제의 지원을 받아무주에서 지역 사람들과 함께했던 영화로모든 풍경에 무주가 담겨 있다. 영화의 모든 매무새마다 나의 애착이 묻어난다.”

장건재 - <최초의 기억>

“처음으로 공동 연출을 시도한 영화다.공동 연출이란 게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협업을 지향하는 모쿠슈라의 목표에잘 도달한 작품이었다. 우리다움이 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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