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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실리 2km> 감독 신정원

“내겐 <오아시스>가 코미디로 보인다”

개봉 주말전국 45만, 평일 8만명. 흥행 수치가 아니더라도 <시실리 2km>는 감독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배우 임창정과 귀신이 조우했다는 점에서 코믹호러라고 간편하게 장르 분류를 해보지만 딱히 호러라고 볼 수도 없다. 관습화된 예측을 조금씩 어그러뜨리며 자기만의 코드를 뚝심있게 밀어붙인다. 그 사이 관객은 계속 자지러진다. 신정원(30) 감독은 자신의 장편 데뷔작과 닮았다. 의외의 단답형 답이 돌아오는 매 순간, 질문자는 무안해지는 동시에 재밌어진다. 그의 입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자기 영화가 별로 맘에 들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떠오른다. “아니다. 원래 불만이 많아 보인다. 주위 사람들이 늘 그런다. 뭐가 그리 불만이 많냐고. 덕분에 군대에서 많이 맞았다.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기억날 작품이 될 것 같다.” 계원예고, 계원예대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슬랩스틱 무성영화 <아줌마>와 몇편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것이 그의 공식 프로필이지만, 그뒤에는 ‘눈물의 나날’이 버티고 있다. 백령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던 해병대 시절, 휴가 때 본 <지 아이 제인>을 보며 동병상련에 눈물을 흘렸고, 졸업 뒤 좀체 일이 없어 지방 도시에서 반년간 중국집 배달원으로 ‘체력’을 다져야 했으며, 모 영화의 연출부에 들어갔다가 군대식 작업 스타일에 기겁해 급히 ‘탈출’하기도 했다. 어쨌든 새로운 감성의 감독 한명이 탄생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원래 코미디를 좋아하나.

코미디라는 장르가 딱히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다. 옛날에 <시네마천국> 보면서 엄청 웃었는데 그 장르가 코미디는 아니잖나.

처음부터 코미디를 의식하고 만든 게 아닌 작품 말인가.

<취화선> 보면서도 막 웃었다. 최민식 선배의 연기나 감독님의 생각이 느껴져서. 나 혼자에게만 웃기는 것이겠지만. <오아시스>도 굉장히 웃으면서 봤다. 이창동 감독님은 코믹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웃기는 건 아닌데 보면 웃긴다.

이창동 감독이 코믹 감독이라고.

비아냥이 아니다. <오아시스>는 정말 좋다. 많이 웃게 해준 영화라서. 설정 자체가 세긴 하지만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 같은 이창동 감독의 이전 작품도 다 좋아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허진호 감독의 영화나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강요하지 않아서 굉장히 좋아한다. 심각하지 않은 영화, 멋내려고 하지 않는 영화가 좋다. 팀 버튼의 <화성침공> 같은. 절대로 안 멋있는 친구가 지구를 구하지 않나.

<씨네21> 홈페이지에 오른 독자평에 이런 게 있다. “조악함, 엉성함, 만화적 상상력으로 발휘되고 있다. 이 지점에 대한 공감이 없다면 영화가 그저 잘못 만든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는 스토리의 디테일한 개연성이나 아귀맞음을 유지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브레이크 없이 달린다.”

좋다. ‘관심이 없다’고 한 건 좋은 말이다. 하려고 그랬는데 잘 못했다고 하면 좋지 않은 거지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 게 많다. 이 영화의 내용이 현실적인 것도 아니고. 진짜로 막가게 하고 싶기도 했는데 너무 내 취향인 것 같아서 자제를 많이 했다.

반면 평단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고 느끼지 않는가. 또 조폭이 나오는 그렇고 그런 코미디라는.

많이 느낀다. 근데 난 조폭코미디 정말 싫어한다. 조폭을 이용해서 뭔가 때리고 과장하는 거. 특히 룸살롱 장면 같은 건 정말 싫다. 그래서 <두사부일체>나 <달마야 놀자>도 좋아하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내 영화에 담긴 어떤 코드를 읽지 못했다면 그건 내 잘못이다. 내가 잘 보이게 만들지 못한 거니까.

호러의 장르적 어법을 가지고 놀면서 딴죽을 걸지만 심각한 도전은 아니다. 혹시 <스크림>에서 힌트를.

안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호러는 관심 밖이다. 옛날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호러장면에서 굉장히 애를 많이 먹었다. 어떻게 해야 놀라게 할 수 있는지 몰라서.

재밌는 장면이 많다. 귀신이 자기 무덤을 응달지게 하는 나무에서 톱질하는 장면에선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위성으로 휴대폰 위치 추적하는 장면이 번번이 등장하는데 갈수록 웃긴다.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떠오르던데.

톱질장면은 재밌을 거 같아서 넣은 거고 위성장면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보고 한 거다. 아주 좋아하는 영화다. 거기선 멋있지만 여기선 한국적으로 너덜너덜하게 하려고 했는데 CG가 그렇게 안 나왔다. 아리랑이나 통신위성 같은 게 몇개 있지만 굉장히 조그맣고 불쌍하게 생겼다. 그런 조악한 모양으로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안 나왔다. 안타깝다.

코믹장면은 대체로 감독의 아이디어인가, 임창정의 아이디어인가.

같이 했다. 시나리오를 창정이 형이 먼저 보고 재밌으니까 같이 하지 않겠냐고 한 거다. 그 시나리오 희한했다. 만화영화 같기도 하고. 그대로 하면 컬트영화는 될지언정 대중적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 석달 동안 호텔에 처박혀서 많이 고쳤다. 예컨대 송이(임은경)가 빙의돼 사람들을 혼내는데, 원래는 그렇지 않고 그냥 난리를 친다. 먹구름 몰고 오고 회오리바람 일으켜 배추밭 다 날리는 식으로. 설정을 많이 바꿨다.

캐릭터도 손을 많이 본 건가. 조폭 중 스님 출신이나 스미골 캐릭터가 재밌다.

스미골의 원래 캐릭터는 완전 바보에다 푼수였다. 찍다가 누군가 스미골 같다고 했는데 정말 비슷했고 좀더 강화시켰다. 스님 출신 조폭이란 설정은 없었다. 불교 공부를 좀 했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많이 하진 않았고. 송이도 원래 약점이 없었다. 약점을 만들려고 불경을 끌어들였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흥미롭게 여긴 부분은.

송이가 귀신인데 순진하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특이한 설정이어서.

마을 사람들을 보면 <조용한 가족>의 일가족이 떠오른다. 한적한 곳에 별장을 짓고 생계를 유지하려는 가족이나 공기 좋은 곳에서 농사지으며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어느 순간 돌변하게 되는 게.

안 봤다. 처음 시나리오하고 비슷하다고 해서 볼까도 했는데 일부러 피했다. 내가 영향을 굉장히 잘 받는다.

그럼 <에너미…>처럼 영향받아 찍은 부분이 또 어떤 게 있나.

좀비장면은 데이 포 나잇으로 찍었는데, 존 카펜터의 <슬레이어> 보니까 데이 포 나잇으로 찍은 게 재밌었다. <영웅본색> 같은 장면도 넣고 싶었다. 주윤발에게 총 던져주는 장면 같은 건데, 여기선 차에서 총과 각종 연장을 꺼내서 척척 던지는 대목을 그렇게 찍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나보다.

초등학교 때 강제로 끌려가서 많이 봤다.

강제로라면.

어머니가 다른 일을 하시러 어디 다녀오시는 동안 극장에서 영화보면서 기다려야 했다. 보통 세번 볼 정도의 시간이었다. 행복했으나 너무 오래 기다리니까 힘들긴 했다. 그때 <인디아나 존스> 같은 어드벤처영화를 좋아했다.

그 다음은.

중학교 때부터 약간 생각이 있는 영화가 좋더라. 어찌보면 그냥 미군영화이긴 하지만 <플래툰> 같은 것. 그리고 그때 홍콩영화가 많이 왔는데 거의 다 봤다. 고등학교 가니까 할리우드영화들이 시시해지더라. 고1 땐가 <터미네이터2>를 개봉해서 기대를 하고 가서 봤는데 아주 유치하더라. 짜증이 나서 그때부터 할리우드영화는 별로 안 보고 다른 영화들을 많이 봤다. 학교에서 많이 보는 영화들. 고전이나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들. 진짜 영화 같더라. 스무살 넘어서는 보는 것보다는 내가 하는 거, 표현하는 게 좋더라. 그래서 많이 안 본다. 보고 맘에 들으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좋은 영화 보고나면 3일 정도 앓는다.

<오아시스> 같은.

아니다. 그건 코믹영화니까. 요즘 영화 중에는 <범죄의 재구성>도 좋았다. 하루 정도 앓았다. <하나비>는 오래 앓았고, <사무라이 픽션>의 감독이 만든 <레드 섀도>가 아주 좋았다. <아카카게>라는 사무라이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다. 주인공 캐릭터가 약간 어리숙하고 완벽하지 않다. 내가 또렷또렷하지 못해서, 반응이 늦고, 눈치가 별로 없기도 해서 그런지.

<시실리 2km>는 펑키호러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어떤 걸 염두에 두고 만들었는지 궁금하게 하는 영화다. 감독의 영화 감상 변천사에 비춰보니 더더욱 그렇다.

몇년 전부터는 좋아하기 시작한 게 기타노 다케시다. 결국 이쪽으로 온 것 같다. 적극적이지 않은 영화, 누구에게 강요하거나 들이대지 않는 영화. 그냥 와서 보라고 하는 영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그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들과 즐기는 것.

기타노 다케시 스타일을 반영하려고 했나.

하려고 했는데 많이는 못했다. 예컨대 코믹한 장면에서 보통은 클로즈업으로 따고 들어가는데 나는 풀숏으로 빠진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분위기로 봐달라는 거다.

기본적으로 어떤 영화로 생각하고 만든 건지.

난 누아르라고 생각했다. 뒤틀어진. ‘가오’라고 하나 폼 잡으려고 멋있게 등장했으나 가오가 없어지는. 알고보면 캐릭터들이 다 그렇다. 귀신도 알고보니 무섭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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