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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크루즈, 그녀에게 항복하다
문석 2009-11-26

관능을 넘어서는 재능, 페넬로페 크루즈의 매력 탐구

그 여자가 돌아왔다. 순수함과 강인함을 가졌지만 끔찍한 남자들과 잔혹한 세상에 희생돼야 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여신이 다시 강림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페넬로페 크루즈다. 알모도바르와의 네 번째 합작품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크루즈는 복잡미묘한 연기를 펼쳤다. 물론 이번에도 스크린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그녀의 빛나는 외모와 그보다 더 눈부신 재능이다. 어린 나이에 영화계로 뛰어들어 수많은 영화를 통해 아름다운 외모와 이를 능가하는 능력을 발휘해온 크루즈의 삶은 신데렐라의 동화 같은 것만은 아니었다. 크루즈는 17년이라는 연기인생 동안 숱한 파랑을 거친 끝에 마침내 전성기를 개막했다. 새로운 지중해의 여신 페넬로페 크루즈의 삶을 되돌아본다.

솔직히 말하자. 페넬로페 크루즈가 진정한 배우라는 사실을 깨달은 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불과 3년 전 <귀향>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페넬로페 크루즈는 그저 얼굴 예쁘고 관능적인 육체를 소유한 섹시 스타로 보였다.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그녀에 대한 편견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뛰어난 외모에서 비롯된다. 주먹만한 머리, 시원한 눈, 긴 코선, 섹시한 입술, 호리호리한 몸통과 잘록한 허리, 풍성한 가슴은 크루즈에게서 굳이 대단한 연기력을 바라지 않도록 만드는 요소다. 오죽하면 스스로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연기경력을 외모로만 시작한 뒤 진지한 연기자가 되려는 것이다. 일단 예쁜 여자로 알려진 다음에는 아무도 그 여배우를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소피아 로렌의 열정과 오드리 헵번의 섬세함을

페드로 알모도바르와의 세 번째 영화 <귀향>은 그녀의 모든 것을 바꿨다. 크루즈가 할리우드에서 시시한 영화나 찍으면서 알록달록한 스캔들로 대중의 얄팍한 관심을 끄는 게 전부인 연기인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며 제대로 한방 먹었다. 기구한 팔자를 가졌지만 놀라운 의지와 커다란 품으로 슬픔과 고통을 받아내는 <귀향> 속 라이문다를 보며 관객은 진심으로 울었다. 그녀의 비현실적으로 큰 눈동자에서 주르르, 소리를 내듯 눈물이 떨어질 때 가슴은 찌릿했고 정신은 혼미했다. 하지만 그때조차 그녀의 연기력을 신뢰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 크루즈는 연달아 강펀치를 날렸다. 이사벨 코이셋의 <엘레지>와 우디 앨런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그리고 바로 이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크루즈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브로큰 임브레이스>에서 크루즈는 알모도바르의 전작에서처럼 비련의 여주인공 레나를 연기했다. 주인공 마테오 블랑코(루이스 호마르)의 10여년 전 기억 속에서만 살아 있는 그녀는 얼핏 보기에 번듯한 직장인이다. 그녀의 공식 직업은 유럽 굴지 기업 회장인 에르네스토 마르텔(호세 루이스 고메즈)의 비서지만 사실 한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해야 했던 여성이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아버지의 병세가 위독해지자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조달하기 위해 호시탐탐 그녀를 욕망해온 마르텔의 정부가 된다. 70년대 한국 호스티스영화와 유사한 설정은 레나가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내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배우를 꿈꿔왔던 그녀는 블랑코가 연출하려는 영화의 오디션에 참여한다. 레나를 보고 한눈에 반한 블랑코는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기 시작하고 레나 또한 블랑코와 사랑에 빠진다. 둘 사이를 의심하는 마르텔의 무시무시한 감시 속에서 그녀는 은밀한 사랑을 키워가는 것이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이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나는 세 가지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내면을 위장한 채 살아가는 레나와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레나, 그리고 영화 속 영화 <여인과 여행가방>에 등장하는 캐릭터 피나를 동시에 보여준다. 블랑코와 마르텔 사이를 오가면서 레나는 열정적인 여성과 순수한 희생양으로 거듭 변신해야 했다. 진부한 캐릭터로 보일 수 있었던 레나가 끝내 펄펄 뛰는 생생함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건 소피아 로렌의 열정과 오드리 헵번의 섬세함을 육신과 영혼 속에서 공존시킬 수 있는 크루즈 자신 덕분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감시하는 테이프를 보고 있던 마르텔 앞에 등장한 레나가 ‘즉석 더빙’을 한 뒤 뒤돌아서 나가는 장면은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백미이자 크루즈 연기의 절정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알모도바르와의 오래된 인연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을 그녀 혼자 이뤄냈다는 말은 아니다. 바이올린에 활이 필요하고 물감에 붓이 필요하듯, 그녀를 연주하고 그녀를 채색하는 건 감독의 몫이니까. 페넬로페 크루즈에게 최고의 활이자 최고의 붓이 되는 감독은 두말할 나위 없이 페드로 알모도바르다. 이번이 네 번째 합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지만, 그동안 쌓여온 상대에 대한 커다란 신뢰는 또 하나의 역작을 만든 동력이다. “페드로는 나를 한계까지 밀어붙였다. 그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버튼을 정말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믿는 사람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잖나.”

촬영장에서 알모도바르(왼쪽) 감독과 함께

알모도바르와 크루즈의 인연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마드리드 북쪽 알콘벤다스의 노동자 거주지구에서 태어난 크루즈는 에너지가 펄펄 넘치는 아이였다. 지금이라면 과잉행동장애로 분류될 법했을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는 그녀의 부모가 딸아이를 4살 때부터 발레학교에 보내도록 만들었다. 크루즈는 그 뒤 십수년 동안 발레를 익혔다. 발레는 그녀의 눈앞에 예술의 길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줬다. 크루즈는 서서히 “말보다 춤이나 연기를 통해서 느낌과 감정을 소통하려는 욕망”, 즉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 넘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런 욕망을 부추긴 것은 가족이었는지 모른다. 크루즈의 아버지는 전기기술자, 어머니는 미용실 원장이었지만 예술에 대한 사랑은 적지 않은 편이었다. 크루즈 가족은 일요일이면 비제나 프로코피예프의 오페라를 틀어놓고 집안 청소를 했고, 근방에 극장이 없었기에 일찍이 비디오 기계를 들여놓아 페데리코 펠리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비토리오 데 시카 같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함께 보곤 했다. 크루즈의 연기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킨 또 다른 요소는 엉뚱하게도 엄마의 미용실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미용실에 앉아서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고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깊숙한 비밀을 엄마나 다른 손님과 공유했다. 그곳에 온 여성들은 아이, 부모, 결혼, 이혼, 불륜, 불안감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매료됐다. 그곳은 내게 최고의 연기학교였다.”

그리고 그녀는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만났다. 비디오를 통해 <마타도르>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욕망의 낮과 밤> 같은 알모도바르의 영화를 거듭 보면서 까만 눈의 소녀는 무릎을 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 나 이 여자들 아는데.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여자, 우리 여자들을 이렇게 잘 알지! 이 사람은 남자잖아.” 여기에 또 하나의 인연이 있다. 1990년 그녀는 알모도바르의 <하이 힐>이 마드리드에서 촬영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무작정 촬영장을 찾아간 그녀는 “나도 영문을 모른 채” 모니터 옆까지 접근해 알모도바르가 빅토리아 아브릴에게 연기 지시를 하는 광경을 지켜봤다.

<하몽하몽>, 상처와 기회를 동시에 주다

소녀의 꿈은 이미 배우가 된 지 오래였다. 14살 때 크루즈는 배우 에이전시 쿠란다의 배우 선발 오디션에 참여했고 350명을 제치고 선발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크루즈의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쿠란다의 대표 카트리나 바요나스는 “걔는 너무 어렸지만 명백하게도 놀라운 점이 있었다. 14살이라는 나이에도 배우로서 필요한 것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너무 어린 나이 때문에 비가스 루나의 <룰루의 시대>(1990)에 출연하지 못했던 그녀는 1992년 두편의 영화에 동시 출연한다. 하나는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아름다운 시절>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가스 루나의 <하몽 하몽>이었다. 그중에서도 <하몽 하몽>은 문제작이었다. 이 영화에서 크루즈가 연기한 실비아는 팬티 모델 지망생(그가 하비에르 바르뎀이다), 팬티 공장 사장 아들과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사장의 욕망의 대상이다. 사실상 데뷔작에서 수시로 가슴을 노출시키고 그들의 입에 공격당해야 했던 크루즈는 큰 상처를 입었다. 비록 스페인 남성은 그녀를 새로운 섹스 심벌로 떠받들었지만 10대 소녀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후 한동안 노출연기나 정사신은 물론이고 키스신조차 거부할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하몽 하몽>

그러나 <하몽 하몽>은 상처만 준 게 아니었다. 우상이었던 알모도바르가 이 영화를 보고 크루즈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크루즈를 불러 오디션을 봤던 알모도바르는 당시 준비 중이던 <카카>(1993)에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출연시키지 않았지만 후속작 <라이브 플레쉬>에서 그녀를 전격 기용한다. 알모도바르와 크루즈의 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크루즈는 이를 놓고 “내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라이브 플레쉬>의 그녀는 카메오에 가깝다. 영화의 초반부, 버스 안에서 아이를 낳는 소녀로 등장한 그녀의 출연 분량은 단 8분이었다. 프랑코 독재의 저주를 받은 아이라는 중요한 상징이긴 해도 크루즈의 욕심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크루즈에게 운명의 8분이었다. “단지 8분이었는데도 그 뒤 스티븐 프리어즈는 할리우드 연출작 <하이-로 컨트리>의 출연 요청을 했고, 스페인에서도 수많은 제안을 받았다.”(페넬로페 크루즈) 100만명 가운데 꽂아놓아도 돋보일 그녀의 외모와 짐승처럼 울부짖는 어린 임신부 연기가 제대로 통했던 것이다.

크루즈의 본격 출세작 또한 알모도바르가 만들어냈다. 차기작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 그녀를 전격 캐스팅한 것이다. 에이즈에 걸린 복장전환자와의 하룻밤 정사로 임신한 수녀 로사는 명목상 주연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뇌관 역할이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죽음의 계단을 오르는 이 청아한 여배우에게 전세계 영화계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신뢰 또한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쌓이기 시작한다. 알모도바르는 이 시나리오를 크루즈를 위해 썼지만, 정작 크루즈는 “그가 내 역할에 대해 말해줬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로지 페드로만이 이것을 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어. 왜냐하면 그는 어떤 캐릭터에도 편견을 갖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했다.”

<오픈 유어 아이즈>

알모도바르에게 돌아간 칸영화제 감독상과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의 영광은 곧 크루즈의 영광이기도 했다. 크루즈의 할리우드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맛을 보여드립니다>를 시작으로 크루즈는 할리우드의 수많은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다. 빌리 밥 손튼의 <올 더 프리티 호스>, 존 매든의 <코렐리의 만돌린>, 카메론 크로의 <바닐라 스카이>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꿀리지 않을 감독들의 신작이 그녀 앞에 카페트처럼 깔렸다. 한데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실속은 없었다. 전작 <슬링 블레이드>로 호평받았던 손튼도, <셰익스피어 인 러브>로 아카데미를 휩쓴 매든도, 언제나 개성 강한 영화를 만든 크로도 한결같이 최악의 영화 중 하나를 내놓았다. 따지고 보면 스페인에서 그녀의 운이 너무 좋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데뷔작 <하몽 하몽>은 논쟁거리가 됐을 뿐 아니라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을 받았고 같은 해의 <아름다운 시절>은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영화상과 스페인의 오스카상인 고야상을 휩쓸었다. <오픈 유어 아이즈> 또한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고 거기에 알모도바르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크루즈의 영화 운은 척척 맞아떨어졌다.

‘크루즈-크루즈’를 포함한 스캔들, 스캔들

할리우드가 영화적 완성도 대신 크루즈에게 선물한 게 있다면 그건 시끌벅적한 스캔들이었다. <올 더 프리티 호스>의 맷 데이먼, <코렐리의 만돌린>의 니콜라스 케이지와 염문설이 터지더니 급기야 <바닐라 스카이> 촬영 뒤에는 톰 크루즈와 열애설이 급속히 퍼졌다. 마침내 소문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 전세계 타블로이드는 ‘크루즈-크루즈’ 커플의 탄생을 알렸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초단위로 중계했다. 톰 크루즈와 헤어진 뒤에도 그녀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이름나게 한 것은 <사하라>에 함께 출연했던 매튜 매커너헤이와의 연애사였다.

자칫 무너질 뻔했던 그녀의 배우로서의 삶을 되살린 건 알모도바르였지만, 그전에 크루즈 자신의 노력이 있었다. 2003년 그녀는 시끄러운 할리우드를 등지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향했다.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감독의 <빨간 구두>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 이 영화에 출연하기 위해 이탈리아어까지 습득할 정도로 크루즈의 열정은 뜨거웠다. 그녀는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뒤 후유증으로 폐인처럼 살아가는 여인 이탈리아를 연기했다. <빨간 구두> 속 크루즈는 첫눈에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진 채 등장한다. 눈은 형편없이 퀭하고 치열은 엉망인데다 머리는 엉망으로 떡져 있다. 할리우드 스캔들에서 폭풍의 눈이었던 이 여신급 존재는 세상의 가장 밑바닥 여인으로 변신함으로써 자기 정화를 꾀하는 듯 보였다.

어쩌면 <귀향>은 크루즈에게 <빨간 구두>의 연장선이었는지도 모른다. 크루즈가 “내 실제 성격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하는 <귀향>의 라이문다는 딸을 보호하기 위해 남편의 시체를 파묻을 수 있는 강인한 여성이다. 크루즈 말에 따르면 그녀와 라이문다는 공히 “강하고 예민하면서 고집 세고 희망적이다.”. <귀향> 후반부의 라이문다처럼 크루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 알모도바르와 재회함으로써 싱싱한 활력을 되찾았다. 라이문다와 어머니의 재회가 크루즈와 알모도바르가 7년 만에 상봉했던 모습과 겹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그 이후 크루즈가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오랜만에 맛본 ‘솔푸드’의 힘 덕분인지도 모른다. 미국시장에서 항상 거센 악센트 때문에 지적받아왔음에도 그녀가 “이 악센트를 버리고 싶지 않다”며 “나는 미국영화에서는 아웃사이더 캐릭터를 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또한 이런 자신감에서 연유한 것일 터.

<나인>

<귀향>

이제 곧 개봉할 <나인>을 통해 오랜 시간 단련된 춤 실력과 <귀향>에서 멋지게 들려줬던 노래 실력까지 선보이고 나면 크루즈는 진정한 톱 스타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다. 소피아 로렌과 오드리 헵번의 유전자에 ‘플러스 알파’를 더 가진 이 여배우가 외모만큼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모두가 수긍하게 될 거란 말이다. <하몽 하몽> 이후 16년 만에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재회한 뒤 시작된 하비에르 바르뎀과의 열애 또한 그간의 스캔들과 달리 생산적인 결론을 맺을 공산이 크다. 설사 그녀가 무엇 때문이든 또 다시 미끄러진다 해도 별 큰일은 아닐 것이다.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해서라면 페넬로페 크루즈는 온갖 독한 짓을 해낼 여자이기 때문이다. 알모도바르의 이야기를 들어봐라. “페넬로페는 배우로 태어났다.… 만일 그녀가 배우가 안됐다면 광인이 됐을지도 모른다.”

알모도바르가 말하는 페넬로페 크루즈

독하고 거칠고 아름다운…

올해 2월 초 <뉴욕타임스> 일요판과 함께 배달되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오스카 후보에 오른 배우에 관한 글을 한 페이지씩 실었다. 글은 해당 배우와 관련있거나 그 배우에 관심을 두고 있는 필자가 맡았는데, 페넬로페 크루즈에 관한 글은 놀랍게도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직접 썼다. 이 아주 각별한 글을 축약해서 싣는 게 아쉽기만 하다.

<하몽 하몽>에서 페넬로페 크루즈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녀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페넬로페가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가던 하비에르 바르뎀 앞에서 샐쭉하게 걸어가던 장면을 기억한다. 그녀가 그를 화나게 하기 위해 걷고 말하고 바라보는 방식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리얼했고 매우 자연스러웠으며 개인적이었다.

<라이브 플레쉬>의 오프닝 시퀸스는 내가 그녀를 위해 쓴 독립적인 대목이다. 그 장면은 8분 동안 지속되는데 관객은 그녀가 이 영화의 메인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녀는 영화에 다시 등장하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그녀를 못생겨 보이도록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구입한 매우 저렴한 70년대 의상은 그녀에게 외려 멋져 보였다. 그녀를 가난하고 시골뜨기로 보이도록 하는 건 매우 어려웠다. 페넬로페의 육체는 이들 옷의 질감에 차별성을 부여했다.

페넬로페 크루즈는 지중해 연기학파에 속한다. 육욕, 배짱, 부끄러움 없음, 헝클어진 머리, 관대한 가슴, 그리고 소통의 자연적 형식으로서의 소리 지르기로 특징 지어지는 스타일 말이다. 안나 마냐니, 소피아 로렌,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초기의 실비아 망가노, 심지어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레이첼 바이스까지 이 스타일을 마스터했다. <귀향>에서 페넬로페가 연기한 라이문다는 마냐니, 로렌, 카르디날레를 모델로 한다. 내 생각에 헝클어진 머리와 큰 목소리를 내는 이 영화 속 페넬로페는 우디 앨런이 그녀를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서 정서적으로 불안한 화가로 캐스팅하는 데 영감을 줬을 것이다.

나는 일련의 미국영화에서 실패한 뒤 페넬로페가 할리우드가 규정한 머리 텅 빈 미녀 이미지를 날릴 수 있었던 것에 기쁨을 느낀다. 2003년 그녀는 유럽으로 돌아와 세르지오 카스텔리토의 이탈리아영화 <빨간 구두>에서 외과의사와 열정적인 관계를 가진 피폐한 여성으로 출연해 예술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다시 구축했다.

2009년은 어떨까. 스릴러 느낌이 있는 슬픈 드라마 <브로큰 임브레이스>와 펠리니의 <8 1/2>의 리메이크인 롭 마셜의 <나인>이 있다. 내 영화는 완성됐다. 나는 <나인> 속 이미지들을 봤는데, 나는 올해도 페넬로페 크루즈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깊이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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