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식 말의 롤러코스터가 재시동을 걸었다. <윗집 사람들>은 간단히 말해 네 남녀가 식탁을 둘러싸고 마주 앉아 점입가경으로 향하는 대화의 영화다. 중심은 아랫집에 있다. 정아(공효진)와 현수(김동욱)는 어느샌가 서로에게 무미건조해진 부부인데, 그 소원함에는 서로를 룸메이트라 농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휘발되어버린 성생활의 문제가 있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의 관심을 모으는 가정 내 사안이 윗집 부부의 민망한 층간소음이라는 사실에서 복잡해진다. 윗집 부부의 침실 소리에 고통받으면서도 정아는 그들이 인테리어 공사 소음을 참아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려 한다. 현수는 정아의 이런 선택이 못마땅하지만 결국 대망의 저녁 만찬이 열린다. 수경(이하늬)과 김 선생(하정우)이 한층 내려와 그들의 식탁을 찾으면서 위험한 대화의 첫 물꼬가 트인다.
왕성한 성생활로 요란했던 층간소음 문제는 만남의 장에서도 또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스페인영화 <센티멘탈>(2020)을 원작으로 한 <윗집 사람들>은 원작의 틀은 가져오되 한국 관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한 현실적인 설정으로 장면을 세심하게 재구성했다. 우선 동거인, 미지와의 조우, 나이로비 사파리 클럽, 강강수월래, 매치 포인트 등 5개 챕터로 나눠 구성한 점이 눈에 띈다. 원작의 여백과 중용 대신 하정우 감독이 택한 전술은 도발이다. 모든 인물들이 더 많은 혼란과 감정을 직설적으로 털어놓는다. 두쌍의 부부가 서로 초면임에도 성 문제를 낱낱이 발설하는 설정은 판타지에 가까워 보이지만 <윗집 사람들>은 톡 쏘는 말들이 권태로운 부부가 숨기고 있는 관계의 진실을 두드릴 때까지 거침없이 달려간다. 사회적 가면을 서서히 벗어던지는 네 사람의 대화는 틈 없이 구석구석 야하고, 웃기고, 과도하게 솔직하다. 이렇다 할 노출 신은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대사의 적나라함이 내내 감독의 야심을 관철한다. 다량의 대사가 주는 묘미가 작품의 중핵을 이루는데, 이는 <윗집 사람들>이 한국영화의 국내 개봉 사례로서는 이례적으로 전체 자막 삽입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리드미컬한 대사에 힘입어 긴장감을 고조하거나 중화하는 음악의 존재감도 커 졌다.
107분 러닝타임의 전반부는 높은 수위의 대사로 진행되는 섹스 코미디에 집중한다. 이어지는 후반부는 부부가 묵혀둔 각자의 진심을 발견한 뒤 이해를 도모하는 여정으로 꾸려진다. 장면 대부분이 한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구성된 연극적 전개 속에서, 컨셉을 넘어서는 네 배우 본연의 매력이 결국 작품의 결정적 인상을 차지하는 영화다. 시종 현란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부부 관계의 애증을 현실적으로 채색한 배우 공효진과 김동욱, 사랑과 유머에 관한 연출자의 지론을 보다 선명하게 흡수한 듯한 메신저인 배우 이하늬와 하정우의 조합이 만드는 노련한 묘미만큼은 확실하다. 다만 신랄했던 섹스 코미디가 어느새 내밀한 부부의 사정까지 가닿는 과정이 결혼 생활의 드라마로서 유효한 울림을 자아낼지는 미지수다. 부부 관계의 권태롭고 남루한 단면은 분명 보편적인 공감과 극적 갈등에 기여하긴 하지만 그 무게가 늘어날수록 감정적 해소를 위한 전개의 상투성도 함께 부각시킨다.
close-up
하정우식 코미디로의 진화 중에는 배우 공효진의 고난도 요가 장면 등 실내극에서의 색다른 볼거리에 주력한 요소들도 눈에 띈다. 비행기 안에서의 황당한 에피소드를 그리는 데뷔작 <롤러코스터>(2013)로 한정된 공간의 앙상블을 펼쳐낸 바 있는 하정우 감독은 이번에도 공간의 한계를 오히려 대사의 리듬과 충돌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배우 본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무대장치를 산뜻하게 활용했다. 은밀히 관능적이기보다는 대놓고 야하고, 요가와 요리를 넘나드는 대담한 액션을 태연하게 펼치는 장면들이 <윗집 사람들>의 묘미라면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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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 저녁 만찬, 출판업자 피에르를 중심으로 상류층 남자들이 모인다. 이들은 돌아가며 매주 바보 손님 한명을 초대해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을 최고의 안주로 삼는 작자들이다. 어느 날, 만찬을 위한 새로운 바보를 물색하던 피에르는 성냥개비 조립에 몰두하는 순박한 국세청 회계사 피뇽을 초대한다. 손님의 도착 이후, 피에르의 저녁은 뜻밖에도 은밀한 조롱 대신 그 자신의 불운한 소동으로 야단스러워진다. 계급의식과 위선을 폭로하며 누가 진짜 바보인지를 묻는 신랄한 유머가 <윗집 사람들>의 도발과 통하는 실내극. 1998년 프랑스 박스오피스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