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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축하 무대 속 작은 인디맨

가을이 아름다운 건 전국의 크고 작은 축제에서 인디밴드 공연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이전에 말했던가요…? 이번 가을은 좀 한가하려나 싶던 저에게도 행사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규모가 작은 음악가들을 잊지 않고 찾아주시는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백팩은 앞으로, 통기타는 뒤로 멘 도전적인 인디맨의 모습으로 여정을 시작해봅니다.

가수가 행사를 간다는 건 보통은 축하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한다는 의미인데요, 사실 제 노래로 축하를 하려고 하면 약간 민망해지는 기분이 있습니다. 10년도 더 전의 일입니다. 음악을 하겠다고 설친 지 기껏 몇년 정도 되었을 저를 아는 언니가 추천해준 덕분에 ‘일’로 노래를 할 흔치 않은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어린이들의 송년회에서 노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었을 듯한 관객들 앞에서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노래만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세상에게 난 견뎌내거나 파멸하거나 할 수밖에….” 나중에 저의 2집에 수록하게 된 <세상에게>라는 노래입니다. 어두운 자아를 내심 자랑하는 일화가 아니고 뭔가 잘해보고 싶은데 가진 건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밖에 없어서 부끄러웠던 순간입니다. 그리고 나의 노래들이 행사에서 부르기에는 좀 애매하구나, 하고 움츠러든 기억이기도 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제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작품들이 영화제에 걸리며 개막식 등에서 노래하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대중가수처럼 딱 들으면 아실 노래도 없고, 축하할 만한 노래는 더더욱 없는 인디가수가 행사 무대에 오를 때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있는데요, 이럴 때 영화제 속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저를 조금 안심시켜줍니다. 약간 떳떳(?)하기까지 합니다. 영화음악 작업을 할 때는 ‘내 이런 거 다시는 안 한다’ 생각했는데 마치고 나니 생각지도 못한 보람이 있네요.

광양에서 열린 ‘남도영화제 시즌2 광양’에서 공연하기 전날에는 숙소에서 <스탑 메이킹 센스>를 봤습니다. 조너선 드미 감독이 찍은 토킹 헤즈의 공연 실황입니다. 이 사람들은 단단히 미친 것 같습니다. 연주와 노래를 하는 음악가의 모습인데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 그들이 무대 위에서 정말로 살아 있기 때문에,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시작되는 충동을 따라가기 때문에 이런 감동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보일까, 보다 어떻게 전할까, 가 더 중요하기에 ‘나’를 약간 버릴 수 있는 거죠. 엄청나게 큰 슈트의 핏을 맞추기 위해 허리춤에 솜을 덧댄, 거의 코미디 분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는 데이비드 번이 섹시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광양 앞바다가 보이는 어두운 호텔 방, 작은 노트북 모니터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1983년의 에너지를 느끼며 저는 행사 무대에서 경직되는 많은 부분을 털어버리고 싶었습니다. 만약 10분, 20분 주어진 무대에서 정말 좋은 공연의 일부분을, 예를 들어 단독 공연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떼어내어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축하 무대 아닐까요? 만약 제 노래로 그런 순간을 만들고 싶다면 그 부끄럽던 노래 속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해야겠지요. 수천번 불러 헐어버린 가사를 붙잡고 그걸 전달하겠다고 안간힘을 써야겠지요. ‘마음만큼은 나도 토킹 헤즈다….’ 다음날 다소 자신감을 충전하고 공연을 마친 저는 (제가 음악으로 참여한 영화 <은빛살구>를 연출한) 장만민 감독님에게 여쭤봤습니다. “감독님 저 좋은 의미로 깽판 쳤어요?” “좋은 의미로 평상시와 똑같았습니다.”

지난 11월 초에는 어느덧 16회를 맞이한 광주여성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제가 음악으로 참여한 <이반리 장만옥>이 개막작으로 오르며 여기서도 축하 공연을 했습니다. 개막식이 열린 광주극장은 1934년에 설립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 중 하나입니다. 수없이 많은 영화와 사람들이 지나갔을 극장의 바닥은 초록 옥상 페인트가 칠해진 채 버티고 있고요, 고장 난 의자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낡고 붉은 관객석은 무대를 향해 조용히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무서운 무대에 오르기 전 저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토킹 헤즈의 노래 들으며 올림픽에 나가는 박태환처럼 몰입했습니다.

다양한 여자들이 모인 여성영화제의 개막식에서 저는 늦은 밤 컴퓨터로 춤추는 여자 아이돌을 보며 음침한 새벽을 보내는 내용의 <젊은 여자>라는 곡을 불렀습니다.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그날도 마음속으로는 스스로를 데이비드 번이라 생각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밖으로 나오는데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님은 “여러분, 개막식에서 무슨 앙코르까지 외치세요. 아직 식순이 많은데…” 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저는 퇴장하는 문 앞에 서서 거기까지 멘트를 듣고 휴, 하고 안도하며 기타를 케이스에 넣었습니다.

개막식이 끝나고 영화제팀은 호프집에 모여서 인사와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무선마이크가 테이블을 한 바퀴 돕니다. 전국의 여성영화제를 만드는 사람들이 한껏 모여 있는데 이거 왠지 익숙합니다. 우리 인디 음악계도 이 행사 만드는 사람들이 저 행사도 만들어서 막상 모아놓으면 몇명 안되거든요. 소개가 끝나고 나니 언니들이 블루투스 노래방을 켜고 자자의 <버스 안에서>를 부릅니다. 혹여나 나에게도 차례가 올까 맥주잔들 속으로 몸을 웅크립니다. 그런 걱정할 새도 없이 그들은 기세 좋게 남행열차까지 함께 타고 다 함께 으쌰라 으쌰를 외치며 건배를 했습니다. 어쩐지 저는 ‘아, 이런 게 진짜 축하 공연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