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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두려움을 넘어선 새로운 창작의 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신철 집행위원장

지난해 국내 최초로 AI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도입하면서 주목받았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는 2025년 올해 AI의 활용을 전면에 내세우며 메가트렌드로서 저변을 넓혔다. AI가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그를 찾아서>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고, 공식 포스터 또한 박신양 작가와 AI 영상 제작 스튜디오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인간의 창작 영역으로만 공고하게 지켜져온 영화가 AI와 만날 때 영화산업은 어떤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까. AI와 함께 여름의 영화제를 보내고 AI와 XR이 융합된 전시 으로 가을을 건넌 이후, 신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만나 겨울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 올해 진행된 29회 부천영화제를 돌아보면 어떤가. 평가를 내려본다면.

2년 연속 영화제 예산이 줄었다. 재정이 넉넉지 않아서 이전보다 작품 수가 줄었고, 또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면서 온라인 상영을 병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관객수가 감소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실제로 관객들로부터 왜 온라인 상영을 볼 수 없는지 문의가 빗발쳤다. 반면 올해는 프로그래머를 더 증강하고 보완했다. 젊은 신진 프로그래머를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에 프로그램팀 팀장을 역임하던 두분이 올해 새 프로그래머 자리를 이어갔다. 오랫동안 부천영화제의 방향과 의미를 지켜본 두분에게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제를 보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었다. 이제 부천영화제의 DNA를 바꾸려 한다. 기성세대의 안전함에서 벗어나 신선한 도전을 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30주년을 맞이할 내년에 큰 기대를 안고 있다.

- 부천영화제는 일찍이 AI와 XR의 혁신을 믿어왔다. 지난해에는 AI영화 국제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 AI 영화’ 섹션을 최초로 선보이기도 했다. 이 부문이 영화산업에 어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나. 또 앞으로 어떤 확장 가능성이 있을까.

지난해에는 처음이라 그런지 당선작을 평가하는 게 크게 어렵진 않았다.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당선작이다, 하고.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작품 선정과 심사 과정에 꽤 긴 설전이 있었다. 1년 사이에 스토리텔링 능력이 크게 진보해서 당선작 선정에 이견이 나올 정도가 된 거다. 첫 번째 해에는 기술적 부분을 주요하게 봤다면 올해에는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가미해서 두루 확인했다. 이 섹션을 처음 진행할 때 AI 영화를 도입하는 첫 관문으로 의미가 무척 컸다. 실험이자 모험으로 진행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연도부터 BIFAN·SBS A&T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AI영상교육센터부천에서는 콘텐츠 제작 전 과정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실습 중심 교육을 제공하면서 해당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애썼다.

- AI영상교육센터부천은 영화 제작자만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나.

그렇지 않다. 현재 부천 시내 초중고등학교와 장애인 교육까지 이행 중이다. 일종의 AI 네이티브를 만드는 셈이다. 영화적 이해도가 높은 수강생일수록 결과물이 확실히 다르다. 영화를 통해 쌓은 스토리텔링 자산, 연출적 접근성, 응용력과 상상력 등 걸출한 결과를 낸다. 더더욱 많은 사람들, 특히 자유로운 시도가 필요하지만 예산적 한계를 안은 독립영화 분야의 많은 인재들이 AI 기술을 터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부천 초이스: AI 영화 섹션으로 다시 돌아가 이러한 AI 영화 부문 신설은 산업적 관점에서 어떤 잠재적 확장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나.

부천영화제 입장에서 판단하자면 우리는 장르영화제다. 장르영화제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 창작에 관심이 많지만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기에 만들기 어려워한다. 출품조차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장르영화의 제작이 약한 건 그것을 새롭게 시도하고 실험해볼 기회의 장 자체가 비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AI를 활용하면 탄탄한 상상력을 주재료 삼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비용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적 체험을 해볼 수 있다. 2024년에 AI영화를 선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당시 프로그래머들이 너무 빠르다는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강하게 설득했던 건 붕괴 직전인 한국 영화산업에서 비용 리스크가 큰 작품은 더더욱 모험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확실히 안전한 쪽으로 향하기에 급급하다. 결재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질문이 나오기 십상이다. “레퍼런스 있니?” 그러니 지금까지 시도되지 못한 것은 전례가 없어 투자받지 못하고 과거의 안전한 레퍼런스가 있는 작품만 지지를 받는다. 자기복제가 반복되는 영화시장이란 언제나 서글프다. 그 와중에 관객은 더 명료하고 냉철해졌다. 옛것만 반복하는 작품을 외면하는 것은 이젠 당연하다. 이런 온도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AI영화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 영화제를 운영하면서 관객의 달라진 선택 혹은 외면 등을 실질적으로 체감한 듯하다.

어린 세대에 영화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문화 매체가 됐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실내 생활이 늘면서 양질의 가전용품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영화관과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을 구축해놨다. 어찌 보면 영화관보다 집이 더 편하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작품을 틀면 되니까. 그나마 아이맥스나 돌비 같은 프리미엄 상영관은 계속 매진된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대흥행을 이룬 것도 기술적으로 다른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없고, 비용은 오르고, 시간적 여유도 넉넉지 않으니 극장 방문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전에 넷플릭스와 극장 입장료를 비교해본 적 있다. 구독 유형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할 때 시간당 평균 70원에서 120원, 그러니까 2시간으로 치면 140원에서 250원으로 영화 한편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경제난을 정통으로 치르는 젊은 세대에게 극장은 영화를 보기까지 많은 문화적·경제적 비용을 감당하게 하고 있다.

- 관객 세대가 교체되면서 나타나는 문화적 특성을 현재 영화산업이 충분히 수용해주지 못한 느낌이다.

구조적인 문제다. 인공지능 등을 포함해 영화를 제작하는 환경이 급변하고 관객 세대와 그들의 기호도 계속해서 변하지만 영화시장은 여전히 옛것과 옛날 방식을 고집하면서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다음 챕터로 나아갈 준비가 마련되지 않은 것 같다. 모두가 코로나19만 끝나면 다시 극장이 활기를 띨 거라 믿었지만 콘서트장, 야구장이 흥하는 동안 극장만은 그렇지 못했다. 그 오판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경종을 울린다.

- 그럼에도 AI의 보편화로 인한 인력 대체에 대한 공포감은 잔존한다. 이러한 심리적 저항감에 올해 부천영화제는 어떤 역할을 했다고 판단하나.

그 불편함과 불안을 당연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이제 영화 제작비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훨씬 넘어섰다. 얼마 전 다큐멘터리영화를 제작한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작비의 3분의 1을 자신이 혼자 대출받았다고 하더라. 이러한 현실적 문제에서 AI가 비용을 현저히 줄여줄 거라 기대한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AI 관련 토론회에 패널을 참가했다. 그중 세네갈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서양 강대국이 숨긴 대학살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더라. 그런데 환경이 여의치 않았고 홀로 고군분투하다 현재 AI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만 있다면, 그 서사와 방향, 메시지만 탄탄하다면 AI를 통해 세계관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영화가 탄생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부터가 중요하다.

- AI 기술을 통한 새로운 인재 발굴, 앞서 언급했던 AI영상교육센터부천까지 모두 AI 시대에 걸맞은 창작 인재의 중요성을 가리킨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잘 알고 잘 다루게 되는 순간 공포감은 잦아든다. 그래서 직접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주 간단하게라도. 마차가 사라진다고 증기기관차를 거부할 수는 없지 않나. 무엇보다 AI는 보조 엔진으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창작 세계에서 인간의 고민과 고심은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AI로 바꿔라? 나도 자신 없다. 다만 인간과 AI가 융합하는 길을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갈무리하면서 나아가는 길이다. 기술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만 있다면 부천영화제는 기꺼이 AI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감정을 읽는 AI, 공간을 움직이는 XR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주한프랑스대사관이 함께 기획한 은 AI와 XR이라는 언어로 감각과 감정의 경계를 실험하고, ‘보는 예술’이 아닌 ‘경험하는 예술’로서 영화에 접근했다. AI 필름 은 달에서 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감정이 몰려들지를 물었고, AI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이 그리워하는 인물의 형상을 되살린 는 기술이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지 않고 확장한다고 보는 이유는 AI와 XR이 인간의 감각을 대신하는 주체가 아닌 인간의 인지 범위를 넓혀주는 보조적 매개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존 감각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을 기술은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신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