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에게 시간은 어떤 재료일까. 노래방 시간이 끝나는 게 아쉬워 계속해 몸을 구르고(<시간을 달리는 소녀>), 과거의 시간을 엮어 현재의 공간을 탄생시키던(<미래의 미라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은 이번에 현재와 과거를 정면으로 교차시킨다. 그것도 사후 세계에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복수를 결심한 왕녀 스칼렛은 죽음을 맞닥뜨린 이후에도 지리멸렬한 전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현대식 유니폼을 입은 남자 간호사 히지리가 나타난다. <햄릿>의 견고한 세계관을 재해석한 호소다 마모루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경험을 주축 삼아 섬세한 질문을 다시 빚는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간 질문.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 마음을 꾹꾹 눌러쓴 서신과도 같았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답변을 전한다.
- <끝이 없는 스칼렛>은 사후 세계가 메인 무대다. ‘의미 없음’과 ‘허무’의 세계를 주요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세계 분쟁을 둘러싼 보도 속에 반복해서 들은 말이 하나 있다. “전쟁터는 마치 지옥과도 같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전쟁의 비참함 이상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픔은 분노와 보복을 낳는다. 불합리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그렇다면 복수의 고리는 어떻게 끝날까? 역사를 되짚어보면 복수는 언제나 정당한 이유를 수반하여 서술되어왔다. 그 정당성이 쌓일수록 싸움은 복잡해지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끝이 없는 스칼렛>은 그런 현실을 마주하고 나온 작품이다. 분쟁과 폭력을 직접 그리기보다 그 배후에 있는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구조’를 되짚는다. 왜 인간은 복수를 선택하는지, 우리가 그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순간은 어디서 시작되는지. 12살, 10살의 두 아이를 둔 부모로서 다음 세대는 이 불안정한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럼에도 미래는 믿을 만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 복잡하게 얽힌 여러 시간 축이 특징적이다. 중세 군주제 시대의 스칼렛과 현대에서 온 히지리의 시간적 교차는 어떤 의도가 담겼나.
고등학생 때 단테의 <신곡>을 읽었던 경험이 마음속에 계속 남아 있다. 단테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인도를 받으며 지옥, 연옥, 천국에서 다양한 인물을 만나는데 나는 그때 시간을 초월해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종의 타임 리프인 셈이다. 스칼렛은 단테처럼 다양한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삶의 방식을 상대화해간다. 중세 군주제를 살았던 왕녀 스칼렛은 현대에서 온 일본인 간호사 히지리를 만난다. 나는 이 둘의 대비적인 관계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복수자와 간호사, 사람을 죽이려는 자와 사람을 살리려는 자, 왕녀와 필수 노동자, 중세와 현재, 여성과 남성, 그리고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 대조적인 두 사람이 여정을 함께하며 딜레마를 겪는 가운데 각자의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이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을 큰 방향성으로 삼았다.
- 전작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는 타임 리프가, 또 <미래의 미라이>에서는 시간에 관한 혼란이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영상 표현으로써 시간이라는 개념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나.
내게 영상 표현으로써 시간은 SF 설정이나 기믹이라기보다 사람의 마음 상태를 비추는 장치에 가깝다. 전작에서도 시간 자체를 그리기보다는 후회, 불안, 기대가 어떻게 현재를 흔드는지 가시화하고자 했다. 인간은 늘 과거로 끌려가면서도 동시에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 불안정함을 영화에서는 시간의 어긋남으로 표현한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자들의 나라를 경유하면서 타임 리프를 사용하지 않고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는, 지금껏 없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그럼에도 전작과 공통점이 있다. 서로 다른 존재를 만난 주인공이 자기만의 미래를 찾아낸다는 것. 미래에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싶은 많은 젊은 세대를 응원하고 싶다. 앞을 향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살 수 있다.
-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작화나 애니메이션 기법에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작화는 지문과 같다 보니 이 변화가 크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미국 애니메이션은 CG로 만들어지고,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마치 이항대립 개념처럼, 양자가 본질적인 의미로서 서로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끝이 없는 스칼렛>에서는 3D CG의 장점과 일본의 전통적인 수작업 애니메이션 작화의 힘을 고도로 융합해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이는 ‘비주얼 랭귀지’를 완성했다. 극도로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CG를 수작업의 대용품이 아니라 수작업 표현의 연장선상에 있는 툴로써 예술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납득할 수 있는 레벨로 끌어올렸다. 특히 신경 쓴 부분은 더러움이다. 스칼렛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하는지, 말이 아닌 신체나 의복의 상흔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캐릭터의 존재감이나 체온 같은 것들, 온갖 더러움과 주름 하나하나에까지 깃들도록 하고 싶었다.
- <끝이 없는 스칼렛>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기반으로 한다. 죽은 남편의 동생과 재혼한 왕후, 동생의 음모로 살해된 선왕, 복수를 원하는 후계자. 특히 스칼렛은 햄릿을, 히지리는 오필리아를 닮았다. 이러한 성별 역전에는 어떤 기대가 담겨 있나.
예전부터 <햄릿>에 대해 불만이 하나 있다. 오필리아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가혹하다. 그에겐 아무 구원도 없다. 운명에 농락당해 광기 속에 죽어간다. 후일, 회화작품에서는 그 비극을 지나치게 미화한다. 예를 들어 물에 뜬 채 아름다운 요정의 모습으로 죽어가는 오필리아를 밀레이가 그렸고 이것이 전 세대의 아이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내겐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떤 의미에서 여성은 어쩔 수 없다고 수긍하도록 부추기는 면이 있었다. 분명히 말하면 현재까지 이어진 중세 사회의 남성 중심적 발상인 셈이다. 나는 그런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스칼렛 안에 햄릿과 오필리아가 섞여 있다. 단순히 남성을 여성으로 바꾸는 것만이 아닌 새로운 의미를 만들 수 있었고 자연스레 햄릿과 오필리아가 일체화된다고 생각했다. 히지리에게도 오필리아가 있다. 그에겐 호레이쇼와 오필리아가 모두 투영돼 있다. 호레이쇼는 햄릿의 말동무로서 감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이지만 히지리는 스칼렛과 보다 더 깊게 얽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교류한다는 의미에서 오필리아는 강한 존재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