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이야기를 좋아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이야기 속 인물들이나 그걸 창조하고 연출하고 연기하는 이들에게 열광하지는 않았다. 이야기가 당연히도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현실을 진단하고 바꾸는 힘은 허구에 기댈 것이 아니라 철저히 현실에 근거를 둔 분석과 대안에서 나와야 한다고 믿었다. 내 소싯적 가치관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나를 불러 소설을 한번 써보라고 말씀하셨다. 작문 숙제로 낸 수학여행의 기행문을 읽어보시고 내게 ‘스토리 텔러’적인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셨던가 보다. 지금의 학급 학생 수에 비해 적어도 두배에서 세배까지는 되었으니 그걸 다 읽어보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을 거다. 그중에 자질이 있어 보이는 아이를 골라, 따로 불러 무언가를 시도한다는 게 어지간한 애정과 소명의식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지금도 여긴다. 아니 그 선생님의 당시 나이보다 훨씬 더 먹은 지금의 나이기에 더욱더 감사한 마음이 크다. 당연히 그때도 감사했다. 그래서 입시 준비를 하면서도 단편소설 한편을 써서 가져갔다. 선생님은 내가 가져간 그 안에서 부족한 무언가를 더 채워주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는데, 나는 그 부족함을 실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람이 있었다고 여겼다. 그래서 “저는 사회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 말뜻이 무언지를 알아채신 선생님은 “훌륭한 사회과학자도 물론 좋지만, 한편의 논문보다 한편의 소설에 사회를 바꾸는 더 큰 힘이 있다”고 답하셨다. 나 역시 동의했지만, 좀더 솔직히 말씀드렸다. “사회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혹 기회가 생긴다면 해보고는 싶습니다.” 배곯을 가능성이 높은 일을 제1 직업으로 선택할 용기는 없다는 답에 선생님은 안타까움과 가르침을 동시에 담아 말씀하셨다. “작가란 건 다른 거 하다가 심심해지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선생님 말씀이 옳았다. 세상을 바꾸는 데에는, 한편의 논문보다 한편의 소설이 더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작가란 건 ‘안정된 직장’을 먼저 확보한 후에 심심풀이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이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훌륭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자질보다는 그저 그런 사회과학자로의 자질에 더 가까운 듯하니 말이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선생님 말씀이 매우 옳다는 걸 지지난해 12월3일 이후로 더 분명히 느낀다. 적어도 우리라는 존재 일반에게는 이야기가 논문보다 훨씬 더 소중하며, 그 우리 존재들이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가기 위해서는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더 많이 나와주어야 한다고 말이다. 지지난해 12월3일 이후로, 선생님이 내게 그 소중한 말씀을 주셨던 날로부터 거의 40년 만에, 나는 결심했다. 이제 와서 소설가가 될 수도 없고, 대단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보다 더 훌륭한 이들이 만들 수 있는 좋은 이야기의 재료가 될 논문이나 책은 써야겠다고. 또 나보다 더 훌륭한 이들이 생산한 논문이나 책을, 나보다 더 훌륭한 작가들이나 나처럼 평범한 이들이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봐야겠다고.
[정준희의 클로징] 12월3일이 바꿔놓은 나, 그 세 번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