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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듣는 존재

“워낙 조곤조곤 말씀하셔서 저도 덩달아 목소리가 낮아졌네요.” <왕과 사는 남자>에서 유배지를 자처한 마을의 촌장 엄흥도 역할을 맡은 유해진 배우를 인터뷰했다. 끝나자마자 마치 조용한 도서관에서 나서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커진 그를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숨 쉬듯 너무 자연스러워 눈치채지 못했지만 인터뷰 내내 나의 페이스와 톤에 맞춰주고 있었다는 걸. 보통 이런 건 기자의 몫인데, 잠시 부끄러웠다가 이내 경탄했다. 생각해보니 영화 속 배우 유해진의 모습이 딱 그랬다.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는 순식간에 장면을 장악한다. 편한 상대 앞에서는 능청을 떨다가, 주눅 든 상대 앞에서는 분위기를 띄우더니, 진중한 상대 앞에서는 한치 밀리지 않고 에너지를 뿜어낸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팔색조 그 자체다.

한국영화 속 중견배우들에 대한 피로감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거칠게 요약하면 소수의 배우들이 다수의 작품에 반복해서 출연하는 통에 이미지 소모가 심해져 지겹다는 의견이다. 연기력이 검증되고 안정감 있는 배우에게 작품이 몰리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다만 일정 편수를 넘어 기시감으로 이어지면 시장 전체에 문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개별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전체 개봉 가능한 작품 편수에 따른 피로감에 가까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와중에도 논란을 피해가는 배우들이 있다. 유해진 배우도 그중 한명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와 특유의 입담 덕분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웬일인지 이미지 소모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유야 찾으려면 얼마든지 있겠지만 직접 만나 분명한 비결 한 가지를 실감했다. 그는 자신을 잘 포장하고 말하기보다는 잘 듣는 쪽의 사람이다.

듣는다는 건 귀한 재능이다. 아니 재능이라는 쉬운 말로 포장하는 건 실례다.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그만한 에너지가 든다. 타고난 기질도 작동하겠지만 노력으로 쌓아올린 태도에 가깝다. 사회생활 20년차에 구르고 치이며 배운 유일한 확신은 대체로 유익한 것들은 그만한 수고가 들고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말하고 싶어 할 때, 자신을 발산하고 드러내고 싶을 때 먼저 상대의 기분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미덕. 타인에게 귀를 기울이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누군가는 애정에 기반하여 듣고, 누군가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듣는다. 동기와 동력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그제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해진다.

편집장의 일의 절반은 읽는 거다. 읽는 것과 듣는 것은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듣는 것은 상대의 호흡에 맞출 줄 알아야 하고, 읽는 것은 그걸 내쪽으로 끌고 올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의 말과 생각을 내쪽으로 끌어당긴다는 건 꽤 재밌고 동시에 피곤한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내가 세상을, 상대를,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을 자각할 때가 있다. 이번주 커버를 장식한 스트레이 키즈의 인터뷰를 읽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졌다. 잡지 편집장의 고역은 영화를 글로 먼저 본다는 건데, 종종 좋은 점도 있다. 읽다 보면 듣고 싶어지고 때론 끝내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린다. 욕망에 불을 지피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 부디 독자 여러분도 그러하길 바라며, 이번주도 최대한 다양한 목소리의 불쏘시개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