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여성영화인모임이 공동으로 운영해온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하 든든)은 민관이 협력한 거버넌스의 흔치 않은 긍정적 사례다. 영화계 미투 운동을 계기로 피해자 지원 단체의 필요성을 깊이 통감해 설립하게 된 센터로, 지난 7년간 문화예술계에 성폭력, 성희롱 예방 교육은 물론이고 피해자 지원을 꾸준히 해왔다. 센터 이름이기도 한 ‘든든’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영화산업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리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씨네21> 역시 든든의 사례를 소개해왔는데, 든든의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은 인터뷰 당시 영화계 선배에게 피해 사례를 상담했을 때 모두 든든을 추천했다며 피해자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해당 사건 진행에 대한 막연함, 그것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점인데 든든의 상담위원이 피해자 입장에서 상담을 진행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영진위의 피해자 지원사업 파행으로 피해자들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된지도 어느덧 9개월째다. 영진위가 2025년 5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조달청 공개 입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든든이 아닌 일반 영리의 노무법인이 선정돼 사업을 위탁하게 된 것이다. 이에 든든에 대한 영진위 지원 역시 중단되었다. 영진위는 기존 피해자 지원사업을 비롯해 성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 등을 새로운 노무법인에 위탁했으나 든든에서 지원받던 기존 피해자 19명 중 8명만이 노무법인으로 이관했고 11명은 든든에 잔류할 것을 선택했다. 또한 새 노무법인으로 위탁된 이후임에도 2025년 6월부터 신규 피해자들 역시 든든을 찾아오고 있는데, 지난해 8월까지 든든으로 사건 접수한 피해자가 8명, 신규 노무 법인으로 접수한 피해자는 1명이다. 든든에는 현재 총 27명의 피해자가 사건 접수 후 상담 지원을 받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지난해 10월에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영진위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 운영의 문제점이 지적됐으나 해가 바뀐 2월까지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지난 2월3일 종로구에 자리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영화단체 및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문체부와 영진위의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의 시장화 중단과 든든 정상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위 단체들은 모두 피해자 보호와 적절한 지원이 어려워진 현 상황에 대해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자 지원사업의 시장화를 즉각 중단할 것, 문체부는 피해자 지원의 공공성과 비영리성 원칙을 공식적으로 밝힐 것, 문체부와 영진위는 피해자를 방치하는 무책임한 행정편의주의를 멈출 것, 문체 부가 영화계와의 대화를 거부하지 말고 즉각 간담회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왜 꼭 든든이어야 하는가
영진위의 위탁을 받은 노무법인이 있음에도 왜 피해자들은 든든을 찾는 것일까.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은 영화 업계의 특수성과 지난 7년간 든든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우며 쌓아온 전문성과 신뢰를 그 이유로 꼽았다. “영진위 지원 중단으로 든든에서 사건을 진행할시 법률 및 의료 지원에 제약을 받는다고 피해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위탁받은 노무법인으로 접수하면 기존대로 지원받을 수 있다고 안내 해도 든든에 남겠다고 하는 피해자들이 다수다. 영화계는 좁은 네트 워크 중심의 프리랜서 계약이 대부분이고 성폭력 피해로 인한 고용 불이익, 위계에 의한 2차 피해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영화산업 내 사건 처리를 단순히 법률 지원비, 의료 지원비를 받는 차원이 아니라 이후의 과정까지 자신과 함께해줄 마음의 지지대로서 든든을 선택하는 피해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1년 단위의 단기 경쟁 입찰 방식이다. 사건이 1년 내에 끝나지 않았는데 위탁 업체가 바뀌었을 시 피해자가 사건을 이관해가야 하는데, 이는 피해자 정보를 보호할 수 없는 방식이 다.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은 “교육, 상담을 포함한 예방 체계는 신뢰와 경험이 누적될 때 작동하는데 지금처럼 1년 단위 공모를할 시 절대 유지될 수 없다. 영진위가 최저가 입찰로 영리 노무법인을 선정했는데, 매년 운영 주체가 바뀌는 곳에 어떤 영화인이 마음을 열고 교육을 받고 피해사실을 상담할 수 있겠나”라며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비즈니스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전다운 민변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성폭력 피해 지원사업은 고도의 전문성과 지속성, 피해자와의 신뢰 형성이 핵심이다. 이를 입찰경쟁을 통해 경쟁과 효율 중심의 시장논리에 맡기겠다는 것은 책임 회피” 라며 “한국영화성평등센터의 영리화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이라는 국가 책무를 시장화하는 것이며 이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지원업무를 효율성과 비용의 논리로 접근하고 영리 사업으로 추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성폭력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고발로 법 제도가 마련됐지만 동시에 이를 반격하고 무로 돌리려는 시도도 심각한 실태다. 가해자들의 피해자에 대한 무고 위협, 명예훼손을 위시로 한 역고소는 일상”이라며 “피해자들이 피해를 고발하는 용기를 냈다가 끝없는 소송에 휘말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거대 로펌들이 성폭력 가해자들의 감경을 목적으로 하는 패키지 상품을 팔고 있는데, 이는 성폭력 사건의 시장화다. 영리 목적의 법인들이 성폭력 문제 해결 과정을 주도하게 된다면 성폭력은 주장하는 이들간의 사적인 문제로 폄하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지난해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영진위의 든든 운영 문제를 지적하고 빠른 문제 해결을 촉구했던 손솔 진보당 의원도 기자회견장에 자리했다. 손솔 의원은 “문체부는 민관 협력의 가장 좋은 사례를 스스로 만들었음에도 걷어차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문체부가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문제다. 나 역시 그 방법을더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힘을 더할 것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5개의 영화단체들은 위와 같은 국회 부대의견에 따른 간담회 개최 요구 공문을 문체부에 발송하였으니 회신을 받지 못했다.
김선아 여성영화인모임 이사장 인터뷰
- 기자회견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인가.
최란 부소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피해자 지원을 영리적인 사업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공식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영화 단체와 성폭력 상담소의 의견, 법률가들의 의견이 모두 모여 공공성에 기반해 비영리성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다. 문체부나 영진위나 이 사업을 행정의 눈으로만 바라 보는 것 같다.
- 현재 업체를 입찰로 정한 상태인데 든든으로의 이관이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한 일인가.
사실 지금 현재 업체와 계약이 끝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연장 운영을 하면서까지 끌고 있다. 현재 업체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 업무 경험이 없는 곳이다. 국회가 12월 초에 부대의견으로 문제 해결을 해서 안정적인 운영 방안을 만들라고 했음에도 현재 업체를 연장 운영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 가장 시급한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지금의 노무법인이 운영하는 것은 성폭력 방지법의 체계에 맞지 않으니 중단하고 새로운 지원 체계를 마련하라는 것이다. 피해자 지원 업무를 지난 7년간 안정적으로 해왔던 든든이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영화계 전체의 논의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하면 된다. 일단 문체부가 대화를 거부하지 말고 즉각 간담회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