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콘솔 전쟁이 있었다. 바트 심슨의 견해를 빌려오자면 <스타워즈>와 함께 인류에게 딱히 피해를 주지 않은 ‘좋은 전쟁’ 중 하나로 여겨진다. 16비트 시절부터만 얘기하자.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과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가 경쟁했고, 승자는 다들 알다시피 닌텐도였 다. 이때는 유저들이 콘솔이 곧 플랫폼임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다.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 사업을 시작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를 내놓으며 콘솔 시장은 3파전이 되었다. 콘솔 유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플스” 가 우월하네 “엑박”이 더 좋네 하는 ‘팬보이’ 싸움은 커뮤니티 안에서 다투는 수준으로 내려갔고, 제왕 닌텐도는 예나 지금이나 고고한 위치를 유지한다. 그래서 스위치는 마리오/젤다 머신, 엑스박스는 헤일로 머신, 플스는 소니 퍼스트 파티 작품과 그외 모든 게임을 돌리는 스테이션이 되었다. 각 콘솔의 유저는 각자가 갇힌 플랫폼의 경계 안에서 놀며 얼마간은 예전처럼 익숙함에 안도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진짜 승자는 PC 게이밍인지도 몰랐다. “연쇄 할인마” 라고 불리는 스팀은 왜 거기서 비싼 게임 패키지 가격과 멀티플레이 요금까지 매달 따로 지불하는지 물었고, 콘솔 유저들은 PC에서 온갖 사양을 맞추느라 골치 아프게 옵션을 조정하느니 TV를 켜고 소파에 앉아 컨트롤러만 집어들면 되는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팀은 너희가 거실을 떠나기 싫다면 우리가 가겠노라,며 스팀덱에 이어서 작고 아담한 신형 스팀 머신을 발표했다. 콘솔과 플랫폼이 곧 자신의 라이브러리이자 게이밍의 역사인 유저는 고뇌한다. 그런데 이미 이 고뇌를 하나도 의미 없게 만든 분이 있으니, 마이크로소프트 게이밍 CEO 필 스펜서다. 네가 가진 모든 디바이스가 엑스박스라고 주장하는 ‘게임패스’는 게이밍을 넷플릭스 같은 구독 경제로 뒤바꿨다.
게이머 출신 CEO라고 칭송받은 동시에 엑스 박스를 망친 인물로 평가되는 필 스펜서가 지난 2월21일 은퇴를 발표했다. 새 CEO로 선출된 아샤 샤르마는 쿠팡 이사 출신의 마이크로소프트 코어 AI 사장이었던 인물이라고 한다. 즉 게임이랑 아무 관련 없는 AI쪽 인사인데, 취임 첫 메시지가 “게임은 인간이 만드는 예술” 이었고, 지금 부랴부랴 엑스박스 계정을 파고 열심히 게임을 하는 척한다고 전해진다. 나는 ‘진짜 게이머’ 필 스펜서가 은퇴 후 자신의 편리한 게이밍을 위해 플랫폼 경계를 허물고, 구독 모델까지 만든 게 아닐까 의심한다. 게임은 시간 죽이기지만, 기업으로선 플랫폼에서 유저의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콘텐츠’ 취급이 명확하다. 그러니 예술 운운하지 말고 솔직해지자. 게임도 영화와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플랫 폼의 콘텐츠일 뿐이다. 그리고 AI가 학습하겠지. 결론은, 우리는 정들었던 콘솔 시대의 말기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게임이 게임으로 존재하던 시대의 끝이 아니기를, 그 종언이 “게임은 예술”이라는 기업가의 입 발린 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