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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봄이 오면

봄이네. 늦은 저녁 도시락 사러 가는 길, 내리는 비를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말이 입 밖으로 나왔는지, 혼자 속으로 삼켰는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봄을 맞이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언제부터가 봄인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선이 있다. 입춘의 절기도, 따뜻해진 기온도, 달력의 날짜도 아니다. 비가 내릴 때 땅에서 알싸한 봄 내음이 올라오면 비로소 봄의 한가운데 당도했음을 실감한다. 논리나 이론, 숫자가 아니라 감각으로 맞이하는 계절의 변화.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유독 비에 젖은 흙냄새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흙 속 미생물과 물이 만났을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의 냄새를 맡는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물가를 쉽게 찾아 생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솔직히 딱히 궁금하지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흙냄새가 주는 안정감이 그저 땅의 기운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봄의 흙냄새에는 겨우내 오래 묵은 온기가 함께 묻어난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더 포근하고, 서둘러 나오느라 살짝 설익은 계절의 냄새라서 좋다. 그래야 봄 같다.

봄은 왔는데 뉴스엔 온통 마음까지 얼어붙을 만큼 혹독한 소식뿐이다. 끊임없는 전쟁과 학살에 전 세계가 요동친다. 20세기 내내 쌓아올린 가치, 예를 들면 민주주의나 자유, 국제규범 같은 것들이 이토록 손쉽게 무너지는 꼴을 보면서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믿음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으로 성취된 것인지 자각한다. 약육강식을 숭상하는 최강대국의 수괴를 그저 미친놈으로 치부하면 속이야 편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태어날 때부터 응당 주어진 것이라 믿고 방심한 사이 소중한 가치들을 지키지 못했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먼 곳의 전쟁은 종종 숫자와 효율 같은 이성의 언어로만 기억된다. 초등학교에 미사일을 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도덕 따위를 입에 올릴 자격도 없는 학살이지만 너무 많은 정보의 파도 속에 쉽게 묻혀버리는 것 같아 두렵다. 진정 두려운 건 참혹한 비극보다 한국 증시의 숫자가 더 피부에 와닿는 자신을 발견할 때다. 물론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크다. 크고 거창한 것, 하늘 위의 별들만 쳐다보면 정작 길가의 작은 꽃, 발밑의 진실들을 보지 못한다. 우리에겐 좀더 많은 실감이 필요하다. 속 편한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나는 영화가 그 실감의 도구라고 평생 믿어왔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는 개인의 욕망을 수렴하고, 묶어내고, 토론하고 쟁의하는 과정이다. 개별의 욕망을 방만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과 절충하여 각각 자유의 거리를 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그리하여 우리가 듣고, 보고, 말하는 모든 행위가 모여 사회의 방향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논리나 이론, 숫자가 아니라 실감하는 삶으로서의 정치에는 언제나 좋은 이야기, 예상 밖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게 이 시국에, 얼핏 한가로워 보일지 몰라도 더 치열하게 영화를 찾아 보는 이유다. 이번주 이자연 기자의 <호퍼스> 비평을 읽으며, 새삼 이 일의 쓸모를 실감했다. 논지가 다소 거칠지만 일독할 만하다. 자세히 봐야 보인다. 오래 보면 사랑스럽다. 봄을 기다리며, 이번주도 영화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