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하는 메이블은 우리 안에 갇힌 교내 동물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거북이, 개구리, 뱀 등을 책가방 안에 욱여넣어서라도 구출하려 하지만 얼마 안돼 선생님의 눈에 띄어 저지당하기 일쑤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서툰 계획. 그러나 실패할지언정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것은 메이블에게 몹시 익숙한 사랑의 방식이다. 유년 시절 많은 것을 함께한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그와의 오랜 추억이 새겨진 연못가는 이제 제리 시장의 도시개발 계획 아래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연못가에서 같이 놀았던 비버, 노루, 오리, 잠자리들도 터전을 잃었다. 제리 시장으로부터 연못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아래 샘 교수를 찾고, 그가 인간의 의식을 동물 로봇에 옮기는 ‘호핑’ 기술을 발명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메이블의 계획은 더욱 선명해졌다. 호핑 기술을 이용해 비버가 되어 실제 동물 세계에 잠입하는 것. 그리고 비버들을 이끌고 연못을 찾아가 아직 이곳에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도시개발 과정에 야생동물들을 배려했다고 홍보한 제리 시장의 대외적 이미지를 활용한 영리한 계략이다.
디즈니·픽사의 서른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호퍼스>는 얼핏 <아바타>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현실을 미화하지 않고 날카롭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차별화된다. 원주민(야생동물) 사이에 가면(비버 로봇)을 쓰고 끼어든 인간이 현실적인 생태 문제에 직면하는 과정을 그리지만 인간 중심적인 사회에서 경청해본 적 없는 동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기후 위기에 직면한 현대인의 시야를 확장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환경을 다룬 애니메이션. 두 키워드를 나란히 열거하고 보면 모두 함께 어울려 잘 살아가자는 디즈니식 ‘해필리 에버 애프터’를 상상하게 되지만 그 과정은 편견을 뒤집듯 무척 거칠고, 야생적이고, 날것이다. 비버 로봇이 된 메이블이 실제 동물들이 살아가는 왕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세 가지 ‘연못법’을 알게 된다.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오는 두 번째 항목. ‘먹어야 할 땐 먹어야 한다.’ 둥글고 앙증맞은 동물 캐릭터들이 사실은 생존을 위해 서로를 잡아먹으며 지냈다는, 애니메이션보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호퍼스>는 이미지적 귀여움보다 환경영화가 진짜 지향해야 하는 목적지를 가리킨다.
무엇보다 블랙코미디를 유연하게 버무렸다는 점에서 최근 디즈니·픽사의 작품들과 결을 달리한다. 현실 세계의 모순과 논쟁을 공포, 그로테스크의 형태로 노골적으로 전환시켜 고차원의 유머를 자아내면서 픽사 특유의 ‘어른들이 보는 동화’다운 깊이가 강화됐다. 특히 빌런을 설정하고 묘사하는 방식이 기존 문법과 달라 사유의 장을 연다. 전작 TV애니메이션 <위 베어 베어스: 곰 브라더스>에서 선보였던 대니얼 총 감독 고유의 어른스러운 유머가 <호퍼스>의 모범적인 서사와 만나 한층 더 빛을 발한다.
close-up
다양한 생명체가 공동의 목표를 이뤄가는 모든 과정이 유쾌하고 인상적이지만, 우리는 마침내 학교를 졸업한 메이블이 호핑 기술을 발명한 샘 교수 밑에 들어가 일하게 된 엔딩을 되새겨봐야 한다. 결국 생태계를 지키고 보호하는 과정엔 그것의 가치를 아는 노동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디즈니·픽사가 궁극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환경운동이 공식적인 사회적 가치로 인정받을 때 더 빠르고 큰 변화를 촉구할 수 있다는 것을 제리 시장의 결말과 함께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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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이 주인공이라고 할 때만 해도 많은 관객은 귀엽고 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예상했다. 정의감에 찬 카우보이, 어여쁜 양치기 소녀, 코믹한 감자 인형과 절대 말 안 통하는 우주 로봇까지. 실로 그래 보였지만 웬걸, 앤디의 옆집 소년 시드가 등장하면서 모든 분위기가 역전되고 만다. 장난감을 기괴하게 조합하는 소년의 고약한 취미는 공포스럽고 그로테스크하다. 아마도 <호퍼스>가 나아가는 문법은 초창기 픽사, 특히 <토이 스토리>첫 번째 시리즈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