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귀엽지 않아서 귀한, 미래의 늠름한 주인들, <아르코>

인간이 구름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서기 2932년. 소년 아르코(오스카 트레사니니)는 날고 싶다. 12살이 되기 전까지는 비행할 수 없대도 말이다. 자신을 뺀 온 가족이 하늘을 누비는 게 부러웠던 그는 모두가 잠든 사이 누나의 날개와 다름없는 무지갯빛 망토를 슬쩍해 창공을 가른다. 얼떨결에 착륙한 땅은 잿빛 기류가 자욱한 2075년의 지구. 부모 대신 어린 동생을 로봇과 공동육아하는 소녀 아이리스(마고 린가드 올드라)가 아르코를 발견하면서부터 둘 사이에 우정이 싹트는데, 수상한 선글라스를 낀 세 남자가 이들을 주시하며 거리를 좁혀온다.

시간 여행, 첨단기술, 기후 재난의 상상력을 친숙한 화법으로 풀어낸 애니메이션 <아르코>는 어린이를 ‘귀엽게’ 그리는 일에 관심이 없다. 보호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때로는 어른들이 내뿜는 위협마저 느끼면서 문제를 대면하는 이들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정체성을 자신하듯 늠름하다. 잇따른 이별의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14살에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애니메이터를 꿈꾸기 시작했다는 우고 비엔베누 감독은 생태 위기에 빠진 세계를 비관하다가도 인간성을 낙관하는 이 작품으로 성공적인 장편 데뷔를 이뤄냈다. <아르코>는 2025년 제78회 칸영화제 특별 상영 부문에서 최초 상영 후 제49회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장편 작품상을 받았으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토피아 2> <리틀 아멜리> <엘리오>와 함께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올랐다. 배우 겸 감독 내털리 포트먼도 제작과 영어판 더빙에 참여해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