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격언이지만 최근엔 동의하기 어려운 일만 잔뜩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너무 많은 생각들이 흙탕물처럼 피어나 덮쳐온다. 가만히 보면 딱히 크게 문제가 생긴 건 없는데,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수시로 깬다. 이 상태를 설명할 길이 없어 며칠 끙끙대고 있으니 아내가 옆에서 가만히 말을 건넨다. “속이 시끄러워?” 맞다. 그거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정보들이 넘쳐 마음을 어지럽힌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철학은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일’이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그 말을 약간 비틀자면 인문학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것조차 어떻게든 설명하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체로 실패한다. 영원히 가라앉지 않는 흙탕물처럼.) 반면 과학, 특히 물리학은 말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설명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과학을 바탕에 둔 영화들을 보면 그 명쾌함에 문득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다. 물리학은 공유되는 진리의 범주 안에서 정확하게 작동한다. 입력값과 출력값에 오차가 없는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음이 편해진다. 리처드 파인먼은 말했다. 만약 자석이 왜 끌어당기냐고 묻는다면 ‘자석은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고. 그게 세상의 기본 요소이므로. 물론 중력, 전기력, 자기력 등 온갖 힘들을 계산하여 그 작동 방식을 논증할 수 있겠지만 결국 같은 결론으로 귀결될 것이다. 어쩌면 물리학은 현상의 전제가 되는 기본 요소를 발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련의 방식을 제멋대로 번역하자면, ‘그냥’ 또는 ‘원래 그래’라고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낙담의 단어도, 포기의 말도 아니다.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길이다. 문제는 그다음.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후의 방향 설정이야말로, 드디어 인문학의 일이다.
나는 <마션>(2015)에서 화성에 표류한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보여준 단순명료함에 위로받았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절규하고 한탄할 시간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방법들을 고민하는 명확한 로직은 세상 그 어떤 성찰보다 단단하다. 나는 <돈 룩 업>(2021)에서 지구 종말을 막지 못한 민디 박사(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최후의 순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선택에 위안을 얻었다. 여기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에 대한 논쟁은 없다. 그저 일어난 일, 주어진 일, 닥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과정이 남는다. 순수한 작용과 반작용. 그 순간 ‘나’라는 사건이 발생한다.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의 소설을 또 한번 영화화한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관한 특집기사를 읽으며 한동안 잊고 있던 기대가 되살아났다. 어떤 신기한 볼거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할지도 궁금하지만, 실은 진정 기대가 되는 건 인류 구조 작업 ‘프로젝트 헤일메리’에 투입된 대원들의 태도다.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걸음이 요즘처럼 속 시끄러운 파도에 팔랑팔랑 휘청거리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한편의 인생 우주영화가 극장가에 또 다른 활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 분명 무언가 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