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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너였다가 너였다가 나였다가 우리일 것이다, <메소드연기>

이동휘는 괴롭다. 배우로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만 대중은 그의 코미디 연기만 기억하기 때문이다. 히트작인 영화 ‘알계인’에서 뾰족한 외계인 귀 분장을 한 채 얼굴을 초록빛으로 물들이고 외계어를 내뱉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도 대중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차기작 캐스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참고로 알계인은 ‘알코올중독 외계인’을 뜻하는 영화 속 조어. 가지런하게 일자로 자른 그의 앞머리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스팍을 닮았지만, 발그레해진 채 소주병을 붙들고 술주정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이상이 영화 <메소드연기> 속 이동휘란 캐릭터가 처한 사정이다. 영화 <극한직업>, OTT 시리즈 <카지노> 등에서 활약한 실존 인물 이동휘 배우의 이야기가 아니다. 캐릭터 이름도 이동휘, 그를 연기하는 이도 이동휘지만 헷갈리지 말길. 영화 <메소드연기>는 고차원적인 유머를 구사하는 중이다. 현실과 픽션이 묘하게 겹쳐 있는 극 중 이동휘는 배우 활동도 끊어지다시피 할 때쯤 후배 배우로부터 부름 아닌 부름을 받는다.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남우상을 받고 캐스팅 1순위에 오르내리는 정태민(강찬희)이 아역배우 시절에 이동휘에게 겪은 수모를 복수라도 하듯 그를 임금인 아버지 역할에 직접 캐스팅한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연기하게 된 드라마 ‘경화수월’은 사극이지만, 분장팀은 어느새 ‘알계인’을 떠올리게 하는 외계인 귀를 준비해놓기에 이른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잘나가는 배우 정태민이 작가에게 입김을 불어넣어 작품도 길을 잃고, 대본에 따라 연기를 펼쳐야 하는 배우도 막장 전개를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알계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동휘는 뾰족귀만은 죽어도 싫다고 거부하지만 감독도 스태프도 바쁜 현장에서 그가 군소리 없길 바라는 눈치다. 이동휘는 외롭다.

<메소드연기>는 영화 <극한직업>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OTT 시리즈 <카지노>등에서 코믹스런 연기를 펼친 이동휘 배우가 기획, 제작, 출연한 작품이다. 실제로 코미디영화에 많이 출연한 배우의 이야기와 긴밀히 얽혀 있기에 그의 필모그래피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웃음을 터트릴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동휘 배우는 <극한직업>에서 선보인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과 특유의 호흡으로 영화 현장의 혼란에서 웃음을 끌어내고, 원하는 것과 가진 것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을 불쑥불쑥 내보이며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다정다감하고 수다스러운 가족, 어머니 정복자(김금순)와 형 이동태(윤경호)가 옆자리를 차지하며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신기한 점은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가족의 드라마가 진해지고 극 중 이동휘의 연기도 점점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순도 높은 코미디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선다면 현실과 픽션이 뒤섞인 묘한 유머, 생각보다 진한 가족 서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관객에 따라선 그 방법이 새롭고 반가울 것이다.

close-up

상투를 풀고 하얗게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붉은 곤룡포를 입은 ‘경화수월’ 임금 역의 이동휘가 성큼성큼 걸어가면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뒷모습을 쫓는다. 드라마 촬영 마지막 순간 그는 임금 역에 빙의한 듯 대본에도 없는 대사를 열정적으로 쏟아낸다. 분노했다가 울었다가 포효할 때, 이동휘는 그가 이전에 보여주지 않은 성격파 배우로서의 면모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배우에 대한 영화, 연기에 대한 영화인 만큼 감명 깊은 연기를 보여주리란 기대를 품고 있는 관객에게도 꽤 인상적인 순간으로 기억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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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메소드연기> 감독 이기혁, 2020

<메소드연기>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다. 이동휘 배우와 동갑내기 20년지기 친구 사이인 이기혁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러닝타임 30분 분량의 단편영화가 그 뿌리이다. 장편영화가 극 중 이동휘가 잘나가던 시절, ‘알계인’ 밈으로 고통받는 시간 등 한 배우의 긴 시간을 다룬다면, 단편영화는 촬영 현장에서의 하루를 간결하게 그린다. 하지만 그에게 가해지는 수난과 모멸감은 장편영화 못지않게 맵고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