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재개봉 영화 <첨밀밀>

전 세계 관객이 ‘홍콩영화’라는 특수한 국적성으로 한 나라의 도상과 그곳의 작품을 기억하는 시기는 20세기 후반에 특정해 있다. 당시 홍콩은 문화대혁명과 공산당의 압제하에 있던 중국 본토와 달리 검열의 무풍지대였다. 쇼브러더스와 골든하베스트가 영화산업의 질적, 양적 팽창을 이끌었고 서구에서 영화를 공부한 작가주의 감독들이 홍콩 뉴웨이브를 주도했다. 오우삼, 서극, 담가명, 허안화 등이 독자적 미학을 실현한 것은 물론 작품마다 사회 전반을 향한 통찰까지 담아낸, 홍콩영화의 화양연화였다.

<첨밀밀>의 재개봉은 여러모로 공교롭다. 30년 전 영화가 포착한 시대의 공기가 2026년 혼란한 지구촌 풍경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소군(여명)과 이요(장만옥)는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고자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이민자다. 두 남녀는 서로에게 젖어들지만, 각자의 꿈과 목표를 위해 연정을 접어둔다. 홍콩 또한 소군과 이요에게 안정적 삶을 허락하지 않자 두 사람은 미국으로 건너가 외국인노동자 혹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표류한다.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불확실한 경제 현실에 고향을 등지는 이들의 분투기는 다양한 사연으로 국경을 넘는 2020년대의 디아스포라와 얼마나 일치할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교차점 위에서 정착에 실패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20세기 청춘의 초상은 2020년 국가보안법 이후의 홍콩의 밀레니얼들, 나아가 신냉전 진영 구도 속에 신음하는 세계 시민들이 체감하는 국가 정체성과 얼마나 다를까. <첨밀밀>은 ‘꿀처럼 달콤하다’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이별과 재회가 잦은 멜로드라마다. 30년 후 관객은 2026년을 더 잘 살기 위해서라도 <첨밀밀> 속에 매설된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은유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