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이면 종종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보컬들의 명곡 듣기’ 게임을 한다. 1989년생 중엔 원더걸스, 소녀시대, 샤이니, 씨엔블루 같은 2세대 아이돌 그룹의 보컬이 많고 신용재, 조현아 같은 발라드 명창들도 포진해 있어서 나는 나름 시간을 잘 때우는 편이다. 하지만 네살 아래인 동생 또한 이 게임의 강자다. 1993년생에겐 루나와 정은지라는 압도적 성량의 기술과 디오와 혁오라는 음색 부문의 치트키가 있으며, 결정적으로 모든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있고, 모든 카드를 방어할 수 있는 아이유라는 조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유의 노래를 대부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게 아이유는 언제나 ‘잘 모르는 가수’처럼 느껴진다. 달리 말하면, 나는 이미 아이유에 입문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BOO>와 <마쉬멜로우>를 부르던 데뷔 시절 아이유는 뒤늦게 사춘기를 겪던 20대의 내가 좋아할 만한 가수는 아니었다. <드림하이>와 <영웅호걸>을 재밌게 보면서도 이 재미가 내 취업에, 나의 실존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뭐 그런 형편없는 고민으로 살아갈 때였으니까. 그건 이민수와 김이나가 설계한 아이유의 초기 ‘마스터피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잔소리> <좋은날> <너랑 나> <분홍신>으로 이어지는 이 시기에 아이유는 문근영과 김연아의 뒤를 잇는 ‘국민 여동생’이 되었다. 아이유는 실로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사랑스러운 것은 사랑해선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국민 여동생’이란 미명 아래 오가던 징그러운 시선과 말을, 나 역시 모두의 여동생이었을 나이에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이러한 태도가 그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지던 아이유에 대한 공포 여론의 토대였을 거라고 짐작한다. 아이유가 직접 프로듀싱한 최초의 앨범 《CHAT-SHIRE》를 향해 쏟아진 말들을 점잖게 정리하자면, 앨범 컨셉이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있으며 그가 그것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검색창에 ‘아이유’를 적으면 ‘로리’가 자동으로 따라붙던 때, 기호나 상징에 둔감한 나조차도 ‘정말 그런가?’ 하며 정성스레 편집된 글들을 찾아 읽던 시절이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와 ‘제제’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모티프인지 절절히 적은 입장문을 시작으로 그는 자주 사과했고, 그 사과엔 늘 ‘영악하다’는 흉이 따라붙었다. 아이유가 자신의 나이를 노래로 연달아 만들기 시작했을 때 관심이 생겼지만, 그땐 이미 내 안에서 아이유의 이미지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그렇게 아이유와 겉돌며 10년이란 시간을 흘려 보냈다. 그러니 “<에잇>으로 아이유에 입덕했어”라는 말을 누가 믿어줄 것인가? <에잇>이 발매된 2020년의 아이유는 어떤 우울한 기분도 5분 만에 바꿀 수 있는 전능한 인간이자 좋아하지만 인지도가 없는 가수를 말하기 위한 밈 ‘박효신, 아이유, 그리고…’ 에서 비교군을 담당하는 장벽 같은 위인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아이유의 노래는 어딘가 진정성이 부족해 보였다. 슈가가 피처링한 <에잇>을 비롯해 혁오와 함께 부른 <사랑이 잘>, 지드래곤과 함께 부른 <팔레트>. 이민수와 김이나라는 정통 입문 루트에서도 한참 비껴나 있으며, 광기의 여론에서 아이유를 함께 보호하던 《CHAT-SHIRE》 시절의 전우애도 찾을 수 없는… 사기꾼 같달까. 왜 또 다 남자 가수랑 듀엣한 노래들만 좋은 건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아이유 자체가 아니라 아이유의 여성성인 건가? 그렇다면 내 마음은 국민 여동생을 좋아하는 남자들과 뭐가 그리 다른 건지….
박준호 감독의 영화 <3670>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 영준(김현목)은 번개를 위해 나간 가라오케에서도 <에잇>을 부르고, 좋아하는 상대인 철준(조유현)과 코인노래방에 가서도 <에잇>을 부르며, 중대한 결심을 한 날에도 노래방 화면이 꽉 차도록 <에잇>을 예약해둔다. 영준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다.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관계를 망치고, 후회를 반복하면서. 하지만 또한 그는 그 미움으로 자신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인정하고, 반성하고, 미련을 정리하면서. 영준이 <에잇>을 좋아하는 것은 짐작건대 그 곡이 바로 그런 ‘미움’을 극복한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에잇>은 자신을 향한 미움과 치열하게 싸웠던 과거에 대한 위로이자, 그 과정을 함께했던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지금은 행복하니, 마침내 행복해졌니? 아이유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은 무한한 공간으로 떠난 동료들을 향한 질문이며, 대답이 없기에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용서다. 넘어진 8이 무한을 뜻한다면 나의 시간을 한곡에 채워 담는 아이유의 스물여덟은 무한한 기도다. 노래로 힘을 얻는다는 말을 믿지 못하던 나는, 자기의 삶 전체를 노래로 내어주는 그 진심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스스로 성찰할 기회조차 주지 않던 커다란 미움과 맞서 마침내 거인이 되어 돌아온 여동생의 세계에서 나는 그림자 없이 춤을 추고 영영 깨고 싶지 않은 꿈을 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