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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체제만큼 교묘한 부조리극의 지배 아래 서서히 얼어붙는 숨, <두 검사>

감옥의 쇠문이 한번 열리고 다시 닫히기까지, 약 118분 동안 <두 검사>는 한 청년의 선의가 체제라는 거대한 위장 속에서 무자비하게 소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37년, 스탈린 대숙청의 한복판. 브랸스크 교도소에서 불태워지는 수천통의 탄원서 가운데 기적처럼 한통이 살아남아 신임 지방 검사 알렉산드르 코르네프(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의 책상 위에 도착한다. 혈서의 주인은, 스탈린 체제를 지탱하던 비밀경찰 기구 내무인민위원부(NKVD)의 공작으로 억울하게 수감된 원로 법학자 스텝냐크(알렉산드르 필리펜코)다. 고문에 시달린 지식인의 진실을 알게 된 검사 알렉산드르는 이를 상부에 알리기 위해 모스크바행 열차에 오른다. 부패한 중간관리자 대신 체제의 최상층이 정의를 바로잡아줄 것이라는 지극히 볼셰비키적인 신념을 품은 채.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영화는 그러나 그 신념이 얼마나 순진한 것인지를, 단 한마디의 직접적 비판도 없이 신랄하게 증명해 보인다. <두 검사>의 서사는 두개의 공간으로 양분된다. 전반부의 교도소와 후반부의 검찰총장 관저. 두 장소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교도소의 쇠창살과 어두운 복도는 모스크바 관청의 계단과 대기실로 치환될 뿐, 알렉산드르가 겪는 경험의 본질은 동일하다. 끝없는 대기. 무표정한 관료들의 책임 떠넘기기. 의미 없는 접견의 지속과 공허한 약속. 로즈니차는 우화적이고 구조적인 대칭을 설계해 전체주의 체제의 민낯을 노출한다. 전반부 교도소와 후반부 관저를 잇는 열차 장면에서 외다리 참전용사(알렉산드로 필리펜코의 놀라운 1인2역)가 레닌에게 직접 청원하러 갔던 일화를 길게 늘어놓는데, 인물 숭배의 메커니즘이 시대를 초월해 반복되고 있음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이 시퀀스에서 영화는 카프카적 부조리극의 매력을 한껏 빛낸다. 올레그 무투의 카메라는 이 세계를 아카데미 비율(1.37:1)의 좁은 프레임 안에 가둔다. 1905년에 건축된 리가의 실제 폐교도소에서 촬영된 화면의 정적인 구도는 체제의 경직성을 프레임에 각인한다. 크리스티안 문지우의 <4개월, 3주… 그리고 2일> 등에서 원근법을 활용한 독특한 공간 연출을 선보였던 무투는 이번에서 거리감을 조율해 관객의 인지를 교란한다. 예컨대 작은 대기실이라 여겼던 공간이 컷 전환과 함께 거대하고 텅 빈 홀로 드러나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소름 끼치는 여운을 남긴다.

<두 검사>는 강제 노동 수용소인 굴라그의 생존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1908~1987)가 쓴 소설에서 출발했다. 디미트로프가 1969년부터 집필한 이 자전 소설은 19 80년 KGB에 압수되었다가 2009년에야 비로소 출간되었다. 로즈니차는 이 소설을 “러시아 고전 동화의 구조로 재구성했다”고 말한다. 1937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가 2025년에 만들어져 지금 극장에서 유효히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전체주의의 유혹이 아직도 완벽한 면역을 갖지 못했다는 방증이자 경고가 아닐까.

CLOSE-UP

편지의 주인인 스텝냐크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고문의 상흔이 새겨진 몸을 이끌고알렉산드르 앞에 나타나지만, 눈빛만은 꺼지지 않은 채 체제의 굴레를 논리적으로 설파한다.그런데 스텝냐크는 이 모든 부패를 ‘사보타주’라 칭한다. NKVD의 조직적 폭력이 체제 자체의본질이 아니라 일부 불순분자들이 일으킨 부패라 믿는 것이다. 아마도 <두 검사>에서 가장서늘한 장면이다. 세르게이 로즈니차는 이 긴 대화 장면을 단일숏으로 처리하며 긴 시간의무게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초로의 배우 알렉산드로 필리펜코가 열차 속 참전용사까지1인2역을 소화할 때 과거의 어리석음과 현재의 고통이 하나의 육체 위에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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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크리처>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 2017

수감된 남편에게 보낸 소포가 이유 없이 반송되자 시베리아의 교도소 마을로 향하는 이름 없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 역시 관료제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는 개인의 오디세이를 카프카적 문법으로 풀어낸다. 올레그 무투가 촬영하고 도스토옙스키의 동명 단편에서 제목을 빌려왔으며, 현대 러시아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두 검사>와 시차를 둔 거울상을 이룬다. 시대가 달라도 억압의 문법은 동일하다는 세르히 로즈니차의 일관된 명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