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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머리서기 이야기

굳어 있는 사람이 몸을 풀어내다 보면 간혹 눈물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가원에서 땀을 흘리듯 눈물이 나오는 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건데요, 그건 아마 긴장으로 움츠러든 몸이 녹아 거기 저장된 기억들이 눈물로 배어나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몸에서 흐르는 물기들을 닦아내고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 순서인 머리서기를 할 시간이 옵니다. 낑낑거리며 발이라도 올리려 하면 어느새 선생님이 다가와 휘청이는 발목을 힘껏 쥐고 균형을 잡도록 도와주십니다. 그 악력이 나를 붙들고 있다는 걸 느끼면, 다시금 땀에 눈물이 섞이기도 합니다.

시도만 하다 끝나던 머리서기 시간이 지나고 수업은 송장자세로 마무리됩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은 작고 단단한 몸으로 물렁한 저를 꼭 껴안아줍니다. 참 잘했다는 말과 함께요. 그 품에 안기면 저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는 선생님 앞에서 머리서기에 성공하고 싶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예뻐해주는 게 좋아서, 뭔가를 잘하고 싶어질 때가 있지요. 언젠가부터 집에서 홀로 머리서기 연습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면 실전에서 더 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오래 버틸 수는 없지만, 서서히 균형을 잡아가던 날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구부러진 다리가 하늘을 향해 쭉 올라갔을 때 저는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하필 바닥에 넘어지면서 등으로 부딪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습니다. 심상치 않은 통증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했을 뿐인데 왜 벌을 받았지?’

머리만 쓰며 살아가다 보면 몸은 왜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악덕 업자처럼 몸과 마음을 보채다가 아주 조금이라도 그들을 달래보려고 시작한 것이 요가였습니다. 이제 와서 굽은 몸을 살펴보고 닫힌 마음을 두드려보면, 몸과 마음은 이 정도 정성으로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나를 달래는 것도 좋지만 수련해서 멘털이 좋아지면 세상살이가 조금은 덜 힘들어질까 싶었습니다. 어려운 자세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세련된 요가복이 잘 어울리는 몸도 가질 수 있을 거라 상상했지요.

부상을 핑계로 요가를 피해 다니다가, 급해지니 다시 요가를 붙잡았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자신감 있게 서야 하는 일정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 몸이 아니고 다른 몸이어야 제가 원하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밖으로 향해 있던 마음을 내쪽으로 돌려놓아야 외부의 비바람을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필요할 때만 찾아와서 반찬을 가져가는 못된 딸처럼, 절박해지니 어디라도 기도하는 무신론자처럼, 간사하게 요가 매트 위에 엎드립니다.

몸과 마음의 봉사를 고마운 줄 모르고 받아온 저라서 여전히 저는 제가 될 수밖에 없겠죠. 아니, 이제는 나 자신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바닥에 정수리와 팔꿈치를 붙인 채 땅을 차고 올라간 발은 허공을 딛습니다. 몸의 정렬이 완전히 반대로 뒤집히면 아랫배가 쏟아지는 것같이 땅기기도 하고, 발이 저리거나 머리가 무척 아프기도 합니다. 거꾸로 선 몸의 가장 아래에는 거친 숨을 고르고 있는 붉어진 얼굴이 있습니다. 이때 머릿속 생각을 비워내야 합니다. ‘안될 것 같아…’의 ‘ㅇ’이 떠오르기도 전에 몸은 흔들립니다. ‘해내야지’, ‘절대 넘어지지 않아’ 같은 주문보다 저에게 효력이 있었던 건 ‘된다’. 이제껏 무슨 이유가 있었고 어떤 상념이 있었건 그냥 ‘된다’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 입장에서 발의 위치에 놓인다면 지지하는 근육이 다를 테니까 구조적으로 저의 체중을 지지하는 데에 좀더 불편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발은 그걸 평생 해왔잖아요? 그러니까 이 자세는 아주 잠시만 머리가 발의 입장이 되어보는 겁니다. 반대로 가장 더럽고 습한 곳에서 늙어가는 발은 머리가 되어보고요. 제 머리가 발이 될 수 있는 시간은 26년 3월 기준 3분 남짓입니다. 어떤 날은 그 정도도 채우지 못합니다. 이 자세를 해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에게 놓인 구조와 압박, 심리적 어려움은 그 사람만 겪을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연민이 듭니다. 저의 발이 겪고 있는 걸 제 몸도 몰라주는데 우리는 모두 얼마나 혼자일 수밖에 없는지요.

그렇게 벌건 얼굴로 머리서기 자세에서 내려옵니다. 숨을 헐떡입니다. 고작 3분 정도 스스로와 함께 있었을 뿐인데 말이죠. 어쩌면 그날 머리서기를 하던 저를 요가의 신이 넘어뜨린 건, “머리 좀 그만 쓰거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릅니다.